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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우의 밀리터리 차이나] 사상 최초 美 전략원잠 승함… 한반도 수시 전개, 정말 가능할까?(上)

중앙일보

입력

세상에 공짜는 없다. 특히 국제관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ain’t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라는 말은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경제학을 여덟 단어로 표현하면(Economics in Eight Words)〉이라는 기고문에서 인용한 명언이지만 국제정치학에서도 통용되는 말이다.

필자는 최근 여러 매체 기고문과 방송을 통해 지난달 한미정상회담에서 발표한 〈워싱턴선언〉을 실패로 규정했다. 미국의 반중 동맹에 입으로만 참여하는 한국을 위해 미국이 본토 안보를 포기하면서까지 전략원잠을 한반도에 상시 배치해 주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워싱턴선언〉은 한국 외교의 참사라는 필자의 주장에 여권 지지자들은 성공한 외교를 폄훼한다는 비난을 쏟아냈다.

미국은 5월 4일, 한·미·일 3국 잠수함 지휘관들이 사상 최초로 미 전략원잠에 승함한 사진을 공개했다. 괌에 입항한 미 해군 전략원잠 ‘메인(USS Maine, SSBN-741)’에 릭 시프 미 해군 제7잠수함전단장, 이수열 한국해군 잠수함사령관, 다와라 다테키 잠수함대 사령관이 승선한 사진을 공개한 것이다.

지난달 18일 미국 괌 미군 기지를 방문한 한국 해군 잠수함사령관 이수열(왼쪽부터) 소장과 일본 해상자위대 잠수함함대사령관 다와라 다테키 중장, 미 7잠수함전단장 릭 시프 준장이 전략핵잠수함(SSBN) ‘메인함’에 승함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18일 미국 괌 미군 기지를 방문한 한국 해군 잠수함사령관 이수열(왼쪽부터) 소장과 일본 해상자위대 잠수함함대사령관 다와라 다테키 중장, 미 7잠수함전단장 릭 시프 준장이 전략핵잠수함(SSBN) ‘메인함’에 승함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이 사진에서 미 해군은 “이번 승함은 한국·일본과의 특별한 관계와 각 동맹에 대한 미국의 철통 같은 약속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고, 정상회담 이후 나온 이 같은 사진은 전략원잠 한반도 수시 전개 약속을 받아낸 우리 정부의 성과라는 언론 보도도 쏟아졌다. 정말 그럴까?

우리는 사람들과의 인사치레로 “나중에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을 자주 쓴다. 누구나 알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인사치레’이지 언제, 어디서 만나서 어떤 음식을 먹자는 약속이 아니다.

국제관계도 마찬가지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외교적 수사(Diplomatic rhetoric)’라는 말이 있듯 국제관계에서는 구속력 있는 조약이나 협정 형태로 육하원칙에 따라 상호 간의 의무를 규정짓지 않는 약속은 그저 인사치레에 불과하다. 그런 인사치레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지난번에 밥 한번 먹자고 해놓고 왜 밥을 같이 먹지 않느냐”며 따지는 사람을 일반적인 사람들이 뭐라고 부르는지 생각해 보자.

나폴레옹 시대를 전후로 프랑스의 외교 컨트롤타워로 맹활약하며 빈 체제를 이끌어낸 전설적 외교관 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Charles Maurice de Talleyrand-Périgord), 통칭 ‘탈레랑’ 전 프랑스 외무장관은 “외교관이 그렇다고 말하면 그건 고려해 보겠다는 뜻이고, 고려해 보겠다고 말하면 그건 안 된다는 말이다. 다만 안 된다고 말하는 자는 외교관이 아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즉, 외교 석상에서 구두로 오가는 덕담이나 약속은 그저 예의상 오가는 공언(空言)이라는 말이다.

5월 4일 공개된 한·미·일 잠수함 지휘관 미 전략원잠 공동 승함은 서태평양 전략 초계 임무 중 승조원 휴식과 보급을 위해 괌에 ‘계획된 입항’을 했던 메인함에 3국이 공동으로 조율해 정상회담 훨씬 전인 4월 18일에 진행한 행사다. 지난 3월부터 조율된 이 행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구두로 약속한 전략원잠 한반도 수시 전개와는 관련이 없는 단순 이벤트에 불과했다.

이수열 해군 잠수함사령관(소장·왼쪽)과 릭 시프 미 7잠수함전단장(준장)이 지난달 18일 괌 기지에서 작전 중인 미국의 전략핵잠수함(SSBN) 메인함에 승함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미 국방부 국방영상정보배포서비스(DVIDS)

이수열 해군 잠수함사령관(소장·왼쪽)과 릭 시프 미 7잠수함전단장(준장)이 지난달 18일 괌 기지에서 작전 중인 미국의 전략핵잠수함(SSBN) 메인함에 승함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미 국방부 국방영상정보배포서비스(DVIDS)

한국에서 전략원잠 한반도 수시 전개 보도가 쏟아지고 대통령실에서도 미 전략원잠 한반도 수시 전개 약속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고위 관계자 발언들이 쏟아지자 미국에서는 예상했던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5월 5일(현지시각) “미 잠수함의 노출이 잦아지고 있는데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US Submarines Are Popping Up More Often and It's Not Clear Why)”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필자의 지적과 일맥상통하는 미국 전문가들의 분석과 비판을 보도했다.

전미과학자연맹 핵정보프로젝트국장 한스 크리스텐슨(Hans M. Kristensen)은 “핵잠수함의 공개 기항은 발각되지 말아야 할 잠수함의 핵심 임무와 모순된다”고 지적했고, 로널드 오로크(Ronald O'rourke) 미 의회 조사국 수석 해군분석관은 “전략원잠의 이번 한국 방문이 새로운 공개전략의 일환인지, 한반도 안보 상황을 고려한 일회성 결정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허드슨연구소 브라이언 클라크(Bryan Clark) 선임연구원은 “핵잠수함의 공개 활동은 미국 잠수함 전력이 감소했고, 준비 태세에 문제가 있다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우려했고, 헤리티지재단의 브렌트 새들러(Brent D. Sadler) 선임연구원 역시 “전략원잠의 한국 방문은 북한이나 중국의 감시에 포착돼 향후 잠수함 초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에 불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의 지적은 필자가 주장했던 내용과 같다. 핵심은 전략원잠 한반도 수시 전개는 미국의 국익에 대단히 불리하고 위험한 것이며, 미국이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미국은 전략원잠의 한국 기항을 약속했지만 언제, 어떻게 올 것인지 확약한 적은 없다. 국내 언론들만 오는 5월 19일에서 21일 사이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 맞춰 한국에 올 것이란 ‘추측’만 내놓고 있을 뿐이다.

미 전략원잠이 5월 방한하더라도 이는 워싱턴선언에 따른 일회성 방문에서 그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이 전략원잠을 한반도 주변에 배치하는 것에서 발생하는 불이익이 전략원잠 전진 배치로 얻을 이익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한미일 3국이 4월 3~4일 제주 남방 공해상에서 대잠전 훈련 및 수색구조 훈련을 실시했다. 해군

한미일 3국이 4월 3~4일 제주 남방 공해상에서 대잠전 훈련 및 수색구조 훈련을 실시했다. 해군

실제로 한·미 정상회담에서 전략원잠 한반도 수시전개 언급이 나오자마자 중국은 함대를 꾸려 한반도 주변 해역을 에워쌌다. 동중국해와 서해, 남해 일대의 중국해군 초계 범위가 확장됐고, 초계작전을 수행하는 군함의 숫자도 증가했다. 4월 29일과 4월 30일에는 역대 최대 규모의 함대가 장기 작전 태세를 갖추고 동해에 진입하기도 했다.

일본 통합막료감부 정보에 따르면 워싱턴선언 사흘 후인 4월 29일, 함번 ‘796’을 사용하는 중국군 정보수집함이 대한해협을 통과해 동해로 진입했다. 이튿날인 4월 30일 전투함 4척과 군수보급함 1척도 동해로 진입한 것이 확인된다. 일본 해상자위대가 식별한 ‘796’이라는 함번의 군함은 중국 북해함대 소속의 815A형 전자정찰함 ‘카이양싱(開陽星)’이다.

중국 북해함대 소속의 815A형 전자정찰함 ‘카이양싱(開陽星)’. 일본 방위성

중국 북해함대 소속의 815A형 전자정찰함 ‘카이양싱(開陽星)’. 일본 방위성

이 군함은 적의 레이더·통신 전파를 수집하는 것은 물론, 통신 감청, 미사일과 항공기의 항적 추적도 가능한 6000톤급의 고성능 함정이다. 예인 소나와 무인 수중정을 이용한 수중 음향 정보 수집과 해저지형 조사도 가능하다. 한·미가 한반도 주변에 전략원잠을 배치한다는 발언을 한 직후 중국이 전략원잠을 탐지·추적할 수 있는 고성능 스파이 군함을 한반도 주변에 배치한 것이다.

카이양싱과 함께 들어온 중국 함대는 최신형 구축함인 055형 ‘라싸(拉薩)’, 052D형 방공구축함 ‘구이양(貴陽)’과 ‘치치하얼(齊齊哈爾)’, 054A형 호위함 ‘징저우(荊州)’, 903A형 군수보급함 ‘타이허(太湖)’다. 라싸와 치치하얼, 타이허는 북해함대 소속이고 구이양과 징저우는 동해함대 소속으로 중국이 북해·동해함대 연합전력으로 이 정도 규모의 전단을 꾸려 동해에 투입한 것은 이번이 사상 최초다.

미국은 중국의 카이양싱과 라싸가 버티고 있는 한, 한반도 근해에 전략원잠을 배치하는 일을 주저할 것이다. 카이양싱은 미 전략원잠이 통신용 부이(Buoy)를 이용해 다른 미군 자산과 주고받는 통신 전파를 탐지·수집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미 전략원잠 이동이 예상되는 해역에 선배열 소나를 깔아 미 잠수함의 음향 정보를 수집하려 할 것이다. 055형 구축함 라싸 역시 현존하는 구축함 가운데 제원상으로는 최정상급 대잠 센서들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라싸는 예인식 가변심도 소나와 수동 선배열 소나를 탑재하고 있어 잠수함 탐지 능력이 중국해군 현용 전투함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일본군이 촬영한 중국의 055형 ‘라싸(拉薩)’와 중국 미사일 호위함. 일본 방위성

일본군이 촬영한 중국의 055형 ‘라싸(拉薩)’와 중국 미사일 호위함. 일본 방위성

중국이 미 전략원잠 전개가 예고된 해역에 정보수집함과 전투함을 배치한 것은 “올 테면 와보라”는 경고다. 이들 전력이 대잠 센서를 모두 투입해 수중 감시망을 쳐놓은 곳에 미 잠수함이 들어갈 경우 미 전략원잠은 고유의 음향정보를 중국 측에 노출하게 된다. 모든 선박은 형상·동력장치·추진기 등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고유의 음향 특성을 가지고 있다. 대잠전은 상대 군함의 음향 특성을 사전에 정확히 파악해 유사시 수중의 수많은 잡음을 걸러내고 찾고자 하는 적함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싸움이다.

앞서 미 전문가들의 지적대로 은밀성이 생명인 전략원잠의 동선을 노출하는 것도 기막힌데 음향정보 노출까지 감수하면서까지 한반도에 전략원잠을 들이미는 것은 미국에 대단히 치명적인 전략적 위협이 될 수 있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 빅토리어스급 (Victorious class) 4척 전부와 임페커블급(Impeccable)급 1척 등 무려 5척의 해양조사선을 7함대에 배치하고 남중국해에 상시 배치해 하이난다오 싼야(三亞)에 거점을 둔 중국 전략원잠들의 발을 묶었던 적이 있었다. 이 해양조사선들은 고성능 소나를 탑재하고 해저 지형 탐사와 수중 음향 정보 수집 임무를 수행하는데, 일반적인 군함들보다 훨씬 고가의 전문 대잠 장비인 SURTASS(Surveillance Towed Array Sensor System)를 탑재한다. 이 시스템은 수동·능동 모듈을 모두 갖추고 있는 고성능 예인식 소나로 장거리에서 적 잠수함의 음향 정보를 수집할 수도 있고, 강력한 저주파 핑(Ping)을 쏴서 수중 물체를 탐지할 수도 있다.

이런 장비를 탑재한 해양조사선들이 앞마당에 진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은 전략원잠을 밖으로 내보낼 수 없었다. 나가는 순간 전략원잠의 음향정보가 미국 측에 고스란히 노출되기 때문이다.

입장을 바꿔 중국 해양조사선과 고성능 전투함들이 진을 치고 있는 해역에 미국이 전략원잠을 보내려 할까? 중국 함대가 한반도 동남 해역에 진을 치고 있는 한, 미 전략원잠이 그곳에 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내일 (下)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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