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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우의 밀리터리 차이나] 다음 희생양은 대만? 바이든 행정부는 왜 이럴까(下)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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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上)편 내용과 이어집니다

전차와 전투기 모두 대만 정부와 미 국방부가 계약 당사자이고, 미국 정부가 납기 일정을 정하는 FMS 형태의 거래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무기 공급 지연이 왜 발생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실제로 대만은 2015년에 주문한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과 스팅어 지대공 미사일 후반기 물량을 아직도 받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우크라이나에 우선순위가 밀려 먼저 주문했던 팔라딘 자주포 인수 일정이 연기됐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부터 재블린과 스팅어 납기를 미루면서도 대만에 이들 무기를 더 주문해 게릴라전을 펼치는 쪽으로 방어 전략을 바꾸라고 차이잉원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보병이 휴대하는 재블린과 스팅어가 고가의 전차나 전투기를 격추할 수 있는 ‘비대칭 무기’라며, 중국보다 군사적으로 열세에 있는 대만이 방어전에서 승리하려면 우크라이나와 같이 게릴라전을 펼쳐야 한다는 게 바이든 행정부의 주장이다. 영미권 싱크탱크에서도 우크라이나전의 교훈을 살려 대만군이 시가전과 게릴라전으로 중국군에 맞서야 한다는 주장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2021년 11월 11일 대만과 중국 간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중국군의 침입에 대한 방어를 시뮬레이션하는 군사 훈련의 일환으로 해안 방어 작전 중에 군인들이 순찰하고 있다. NurPhoto

2021년 11월 11일 대만과 중국 간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중국군의 침입에 대한 방어를 시뮬레이션하는 군사 훈련의 일환으로 해안 방어 작전 중에 군인들이 순찰하고 있다. NurPhoto

그러나 대만은 우크라이나가 아니다. 대만인은 우크라이나인이 아니고, 중국인도 러시아인이 아니다. 대만과 우크라이나는 전혀 다른 전장 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만이 우크라이나와 같은 방어전략을 취하면 대만은 필패한다. 대만군에게 우크라이나군의 개전 초기 방어 전략을 그대로 모방하라는 것은 작전 계획 수립의 기본인 METT-TC(Mission, Enemy, Terrain and Weather, Troops and Time Available) 요소를 완전히 무시한 것으로, 병법(兵法)의 ‘ㅂ’자도 모르는 사람이거나 대만이 전쟁에서 패배하길 바라는 ‘간첩’의 입에서나 나올 법한 말이다.

우크라이나는 60만 제곱킬로미터가 넘는 광활한 영토를 가진 나라다. 대만의 16배가 넘는 면적이다. 러시아는 이 엄청난 대지에 고작 1000명 단위로 작전하는 저강도 분쟁 특화형 ‘대대전술단(BTG : Battalion Tactical Group)’ 편제의 부대를 끌고 들어왔다가 보급로가 끊겨 각지에서 각개격파당했다. 애초에 우크라이나는 영토가 매우 넓었기 때문에 공간을 내주고 적을 취하는 전략을 취할 수 있었지만, 영토가 비좁고 그마저도 대부분 산악지형인 대만은 이런 전략을 취할 수가 없다.

병력 자원의 질적 수준도 차이가 크다. 2014년부터 돈바스 전쟁을 겪었던 우크라이나는 징집 연령대 청년들의 전의(戰意)가 매우 높았고, 장병들 역시 미국과 서방세계의 교관단이 제공하는 수준 높은 교육으로 러시아군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숙련도와 전문성을 가진 정예병들이었다.

그러나 대만군은 자신들 스스로를 ‘딸기병(草莓兵)’이라 부르는 오합지졸이다. 딸기병은 일명 딸기족(草莓族)으로 불리는 대만의 2030 세대 중 군에 입대한 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어린 시절 과잉보호를 받고 자라 살짝만 건드려도 물러지는 딸기처럼 외부 스트레스나 자극에 극도로 취약한 젊은 층을 조롱하는 신조어다. 실제로 이 딸기병들은 고작 4개월 의무복무를 하면서 제대로 된 군사 훈련은 거의 받지 않았다. 사격 훈련은 흉내만 내는 수준이고, 훈련 대신 타이어를 나르거나 낙엽을 쓸고 그림 그리기와 전쟁 영화 시청으로 시간을 보내고 전역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2021년 10월 10일 대만 국경일 군사 퍼레이드가 열리고 있다. 셔터스톡

2021년 10월 10일 대만 국경일 군사 퍼레이드가 열리고 있다. 셔터스톡

대만 병사들이 ‘딸기’라면 간부들은 ‘퇴비’다. 썩을 대로 썩었다는 것이다. 위관급 장교부터 장성급에 이르기까지 매년 수십 명씩 간첩 혐의로 잡혀 들어간다. 방산비리도 극심해 중간급 간부들이 빼돌린 장갑차 부품을 사비로 사서 채워 넣다가 신용불량자가 돼 자살한 초급 장교 사례도 부지기수다. 자신의 개인화기도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병사가 태반인 군대에 잘 훈련된 정규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펴라고 하는 것은 어린이들에게 BB탄총을 쥐여주고 군인들과 싸워보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미국은 대만에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을 강요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 정확히는 ‘바이든 행정부’는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2년 전,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뒤 거의 모든 언론과 ‘전문가’들이 “미국이 돌아왔다”는 미국 민주당의 선전을 거의 그대로 받아쓰며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때 망가진 미국의 동맹을 복원하고 국제질서를 안정화할 것이라는 주장을 했을 때, 필자는 완전히 다른 전망을 했었다. 미국의 동맹은 와해·붕괴할 것이고, 중국과 러시아의 기세는 더욱 살아날 것이며, 세계 각국은 분쟁으로 난장판이 되고 유가가 폭등할 것이라는 예측은 지난 2년간 대부분 적중했다.

미국의 패권 유지의 한 축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UAE 등과의 중동 동맹은 실제로 와해했고, 바이든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 Inflation Reduction Act)은 한국·일본 등 핵심 동맹국들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셰일 혁명 이후 저유가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으며 기세가 꺾였던 러시아는 고유가로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운 뒤 그 돈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기회의 창이 닫혀간다던 중국은 미국의 중동 동맹국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며 미·중 경쟁의 판을 완전히 새로 짜고 있다.

주류 언론과 ‘전문가’들의 예측이 틀리고 필자의 예측이 맞았던 것은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진용을 구성하는 핵심 인물들이 과거 오바마 행정부 당시 외교·안보 파트에 있었던 자들이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 당시에도 그랬지만 그들은 ‘미국의 이익’이 아닌 특정 정치·경제 세력의 사익(私益)을 위해 일하기 때문에 세계 평화나 안정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이런 자들이 패권국의 주도권을 장악하면 국제정세는 당연히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사실 우크라이나 전쟁도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던 전쟁이었다. 러시아는 팬데믹 상황으로 글로벌 에너지 소비가 크게 위축됐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자해성 에너지 정책과 실패한 중동 정책 덕분에 급등한 유가에 힘입어 전쟁 전 사상 최대의 에너지 판매 수입을 올려 금고를 두둑하게 채울 수 있었다. 바이든은 집권 직후 자국 내 에너지 기업들을 규제해 유가를 올리더니, 카슈끄지 사건을 끄집어내 사우디아라비아를 자극하고 UAE F-35 판매를 금지하면서 중동 동맹국들과의 관계도 박살 내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OPEC 주요국들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하면서 중동을 이용한 국제유가 조절도 불가능해졌는데, 러시아와 중국이 이 틈을 파고들어 중동 각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면서 에너지 시장의 주도권은 미국에서 러시아·중국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배경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셔터스톡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셔터스톡

바이든의 NATO 확장 정책도 침공의 주요 원인이 됐다. 바이든은 부시·오바마 행정부 때 그랬던 것처럼 NATO 동진 정책을 펴며 발트 3국과 폴란드, 루마니아 지역의 미군 전력을 증강하며 푸틴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에는 미군 교관단을 보내 훈련 캠프를 꾸렸고 지금 미국이 대만에 권유하고 있는 것과 정확히 똑같은 형태의 ‘경보병’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때부터 우크라이나는 전쟁 발발 가능성을 직감하고 미국은 물론 프랑스와도 접촉해 전투기 구매 문제를 논의했지만, 미국은 러시아를 자극할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가 전투기나 장거리 미사일과 같은 고성능 무기를 확보하는 것을 철저하게 차단했다.

러시아는 2021년 12월, 미 국무부에 사실상 최후통첩을 보냈다. 우크라이나와 동유럽,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모든 군사 활동을 중단하고,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신청을 불허하며, 상호 영토 타격권 내 미사일 배치를 금지하자는 타협안이었다. 물론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러시아는 이를 빌미로 2022년 2월 전면 침공을 감행했다.

전쟁 이후에도 미국은 러시아군을 즉각적으로 격퇴하고 전쟁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보다 러시아군을 소모시키는데 중점을 두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했다. 개전 후 1년 동안 우크라이나가 그토록 간청했던 서방제 전투기와 전차 지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막대한 양의 보병 휴대용 대전차·대공 무기가 공급됐고, 우크라이나 ‘알보병’들은 그 무기들을 들고 러시아군 전차 대열 앞을 막아서며 자신들의 목숨과 러시아 기갑차량을 맞바꾸는 희생을 반복해야 했다.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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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설을 흘리던 2021년 6월부터 전투기·방공무기와 중장비를 적극적으로 제공했다면 그 자체로도 미국과 NATO의 우크라이나 수호 의지를 러시아에 확실히 보여줌으로써 러시아의 오판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바이든 세력이 2021년 ‘첫 번째’ 집권 직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여건을 조성하고 러시아의 오판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면, 2024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하고 2025년에 ‘두 번째’ 집권을 시작하게 되면 우크라이나 다음 차례는 대만이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무능 덕분에 우크라이나의 ‘핏빛 승리’로 끝나겠지만, 앞서 강조했듯 대만은 우크라이나가 아니고 중국은 러시아가 아니기 때문에 대만 전쟁은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더 엄청난 국제정치·경제적 파국을 몰고 올 것이다.

과연 미국 유권자들은 2024년 대선에서 ‘민주당 재집권’이라는 재앙을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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