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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만원 빌리니, 이자가 130만원? 대부업 흔들리자 생긴 일

중앙일보

입력

8일 서울의 한 거리에 대부업체 대출 광고 전단이 떨어져 있다. 임성빈 기자

8일 서울의 한 거리에 대부업체 대출 광고 전단이 떨어져 있다. 임성빈 기자

신용 평점이 낮아 금융권 대출을 받지 못했던 A씨는 지난해 1월 불법 사금융에 손을 댔다. 일주일에 90만원을 빌리는 조건이었는데, 실제로 손에 넣은 돈은 선이자 33만원을 뗀 57만원뿐이었다. 이후 A씨는 두 달에 걸쳐 총 96만원을 상환했지만, 사채업자는 “96만원은 연체 이자고, 원금은 그대로 남았다”며 어깃장을 놓았다. A씨는 정부에 법률 지원을 신청하고 금융감독원에 수사 의뢰를 한 뒤에야 불법 독촉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대부업이 고사 위기에 처하면서 A씨와 같은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받을 수 있는 대출을 최대한 끌어 쓴 저신용자가 최후 수단으로 찾는 곳이 대부업이다. 하지만 대부업 대출마저 어려워지면서, 저신용자는 곧바로 불법 사금융으로 진입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리고 있다.

9일 금감원 집계를 보면 지난해 정부에 법률 지원을 신청한 불법 사금융 피해자는 총 1238명에 이른다. 정부가 불법 사금융 채무자 대리인 지원 사업을 시작한 2020년(632명)과 비교하면 2배 가까이 늘었다. 반대로 등록 대부업(합법) 이용자는 2020년 상반기 157만5000명에서 지난해 상반기 106만4000명으로 51만1000명 감소했다.

불법 사채 피해가 늘어나는 것은 대부업계가 사실상 영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과 관계가 있다. 대부업계는 대출금리가 연 20%에 이른 이후부터 신규 대출을 중단하는 등 대출 문턱을 높였다. 한국대부금융협회 공시에 따르면 올 1분기 주요 대부업체 28곳의 신규 대출 평균 금리는 연 19.98%를 기록했다. 이중 연 19.64%, 19.78% 금리로 대출을 판매했던 업체 2곳과 신규 대출 건수가 10건 이하인 1곳을 제외하면 모든 업체가 법정 최고금리인 20% 수준에 대출을 공급했다.

실제 대부업계 1위 아프로파이낸셜대부(러시앤캐시)를 비롯해 상위 대부업체 12곳이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대출 영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대부업체의 자금 조달비용, 대손 비용, 광고비, 인건비 등을 합한 원가를 고려하면 법정 최고금리 안에서 대출을 공급하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최근 상황도 별반 차이가 없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올해 신규 대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30~40% 수준에 불과하다”며 “저신용자가 찾는 대부업에서 오히려 저신용자에게는 대출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앞서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NICE신용평가 기준 상위 대부업체 69곳의 올해 1월 신규 대출 금액은 42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3846억원)보다 88.9% 급감했다.

대부업이 무너지면서 각종 정책 상품과 신용카드 현금서비스·카드론 등 받을 수 있는 대출을 끌어 쓴 저신용자는 바로 불법 사금융에 손을 댈 수밖에 없다. 대부금융협회가 접수한 지난해 사채 피해 사례 6712건의 평균 금리는 연 414%에 달했다. 피해 건수와 피해자 금리 모두 전년(2933건, 연 229%)보다 증가했다.

이런 와중에 연 15.9% 금리로 최대 100만원을 대출해주는 소액 생계비 대출은 출시 한 달 만에 총 2만3532명에 143억3000만원이 공급되며 흥행했다. ‘정부가 서민을 상대로 이자 장사를 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그만큼 생계비 대출이 절실한 사람이 많았다는 의미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소액 생계비 대출이 고금리라고 비판받았지만, 수요가 그렇게 컸던 것을 보면 서민 금융으로서 대부업의 역할도 분명히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법정 최고금리 제도가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시장금리 변화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최고금리 제한으로 고금리 시기에 합법 대출 시장이 기능하지 못하고 불법 사금융 시장은 활성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법정 최고금리가 24%에서 2021년 20%로 낮아져서 현재도 적용되고 있는데, 그동안 시장 금리는 오르고 저소득 가구의 대출 수요는 늘었다”며 “금리는 항상 변하기 때문에 이에 맞춰서 규제가 적용돼야 제도권 대출 시장의 가장자리에 있는 서민 금융의 숨통이 트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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