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우의 밀리터리 차이나] 中, 러시아가 만든 ‘인류 종말의 무기’ 손에 넣을까?(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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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上)편 내용과 이어집니다

러시아는 리상푸(李尚福) 국방부장을 모스크바로 초청한 직후, 대대적인 무력 과시에 나섰다. 러시아 해군 핵전력을 총괄하는 북방함대가 북극해 일대에서 4월 10일부터 대규모 훈련을 시작했고 태평양함대 역시 4월 14일 국방장관이 직접 최고 단계의 전투준비태세를 발령하고 실전에 준하는 고강도 훈련에 돌입했다. 북방함대와 태평양함대의 훈련은 두 함대가 보유하고 있는 핵잠수함들이 대거 동원됐다. 그 규모가 대단한 수준이라 미국과 NATO, 한국과 일본은 북극해와 바렌츠해, 동해 일대에서 러시아의 동향을 면밀히 감시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 국방부장 초청 시기에 맞춰 대대적으로 실시되는 훈련에 대해 미국전쟁연구소(ISW)는 “크렘린은 4월 16일부터 18일까지 모스크바를 방문하는 중국 리상푸 국방부장의 일정에 맞춰 러시아가 중국과 대등한 위치의 방위 파트너(equal defense partner)임을 보여주려 한다”고 평가했다. 중국과 미국이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이 시기에 러시아가 자신들의 강력한 힘을 보여줌으로써 중국이 러시아를 매력적인 파트너로 인식하게 만든다는 게 이번 대규모 훈련의 이유라는 것이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지난 14일(현지시간) 태평양함대에 대한 불시 전투준비태세 점검을 위해 최고 수준의 경계 태세를 발령했다. [러시아 국방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지난 14일(현지시간) 태평양함대에 대한 불시 전투준비태세 점검을 위해 최고 수준의 경계 태세를 발령했다. [러시아 국방부]

실제로 러시아는 북방함대와 태평양함대의 훈련 기간을 오는 5월까지로 밝히고 있다. 5월 19일부터 21일까지 일본에서 열리는 서방선진 7개국 모임, 일명 G7을 겨냥한 조치다. 일부 러시아 소식통들은 이번 북방함대 북극해 훈련에 참여 중인 특수 임무 잠수함이 5월 전후로 태평양함대에 임시 배치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태평양 임시 전개 가능성이 제기된 잠수함은 지난해 취역한 최신형 잠수함인 ‘벨고로드(RFS Belgorod)’다. 벨고로드는 현재 북방함대에 임시 배속 상태로 운영되고 있는 제29잠수함사단 소속으로 2024년 1분기 중 태평양함대 관할구역으로의 정식 배치가 예정돼 있다.

이 잠수함은 또 다른 특수 임무 잠수함인 ‘하바롭스크(RFS Khabarovsk)’와 함께 태평양함대 지역에 배치될 예정이다. 태평양함대 사령부가 있는 블라디보스토크 해군기지와 캄차카 반도 베체빙카(Bechevinka) 기지 두 곳이 이들 전력의 운용 거점으로 지정됐다. 베체빙카 기지는 과거 소련 해군이 잠수함 전진 기지로 운용하다 버려진 군사시설로, 최근 복구·현대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과 가까워 알래스카의 미군 감시정찰 자산의 손바닥 안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이 때문에 벨고로드와 하바롭스크는 다층 방공·대잠 방어 시설이 잘 구축된 블라디보스토크를 모항으로 삼아 운용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 핵추진 잠수함 벨고로드. 선체 위에 있는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엄청난 크기가 짐작된다. [러시아 매체 프라우다 유튜브 캡처]

러시아 핵추진 잠수함 벨고로드. 선체 위에 있는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엄청난 크기가 짐작된다. [러시아 매체 프라우다 유튜브 캡처]

즉, 이들 잠수함의 주 활동 영역은 한반도의 동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벨고로드와 하바롭스크는 서방 언론이 ‘인류 종말의 무기’로 부르는 ‘포세이돈(Poseidon)’ 핵 추진 수중드론을 탑재하기 위해 개발된 특수 임무 잠수함이다. 포세이돈은 길이 24m, 직경 1.6m의 어뢰 형상을 한 수중드론으로 복합 센서와 자율항법장치를 이용해 깊은 바닷속을 스스로 항해하는 수중드론이다. 이 드론의 동력원은 원자로이기 때문에 사실상 무제한의 사정거리를 가지고 있고, 탄두부에는 인류가 만들어낸 최강의 핵무기라 불렸던 ‘차르 봄바(Tsar Bomba)’의 2배에 가까운 100메가톤급 핵탄두가 실려 있다.

이 수중드론은 일단 발사되면 현존하는 그 어떤 수단으로도 대응이 불가능하다고 평가되고 있다. 일반적인 잠수함이나 어뢰가 접근할 수 없는 수심 1000m 아래까지 내려가는 잠항 심도를 가지고 있고, 소음을 거의 내지 않는 저속 모드로 항해하기 때문에 소나로 탐지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 수중드론은 목표 근처까지 스스로 항해한 뒤 해안에서 폭발해 초대형 해일을 만들어 낸다.

시뮬레이션 자료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500m 높이의 해일이 발생해 어지간한 주(州) 하나 정도는 초토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알려졌다. 운용하기에 따라 미국이나 일본 본토에 엄청난 타격을 줄 수도 있고, 미·일 연합함대를 일격에 수장시킬 수도 있는 위력이다.

러시아가 이들 전력을 동해에 배치해 미·일 양국을 위협하면 중국은 대단히 큰 전략적 이익을 얻게 된다. 미국이 최근 일본·필리핀과의 군사적 협력을 크게 강화하고 있는 것은 미국 본토 동부 해안을 공격할 수 있는 중국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탑재 전략원잠들이 서태평양으로 나오는 것을 저지하기 위함이다.

미국 잠수함 전문가 H.I.서튼이 지난 3월 미국 해군매체 네이벌뉴스에 러시아 핵어뢰 포세이돈에 대해 소개하며 공개한 이미지. [네이벌 뉴스 캡처]

미국 잠수함 전문가 H.I.서튼이 지난 3월 미국 해군매체 네이벌뉴스에 러시아 핵어뢰 포세이돈에 대해 소개하며 공개한 이미지. [네이벌 뉴스 캡처]

최근 중국은 전략원잠 전력을 크게 확장하고 SLBM 개발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SLBM은 물리적인 체적의 한계 때문에 사거리와 탄두 탑재량이 반비례할 수밖에 없다. 중국 연안에서 발사해 미국 동부 해안까지 도달 가능한 SLBM은 그만큼 실어 나를 수 있는 중량에 제약이 생겨 동시에 여러 발의 핵탄두를 날릴 수 없다. 반대로 여러 개의 핵탄두를 실은 SLBM은 사거리가 감소해 태평양 중심부까지 전진해서 발사해야 미국 동부를 공격할 수 있다.

중국은 후자를 택했고, 여러 발의 핵탄두를 미 동부 연안 대도시들에 동시 투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대만-필리핀 사이의 바시 해협과 대만-일본 사이의 오키나와 열도 대잠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태평양함대에 벨고로드·하바롭스크를 배치하면 바시해협·오키나와 열도에 집중된 미국·일본의 대잠 전력이 동해와 오호츠크해로 분산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은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일대에서 중국 전략원잠에 대응해야 하는 것은 물론, 동해와 오호츠크해에도 최소 1~2척의 공격원잠을 추가로 배치해 러시아발 수중 전략 위협에 대응해야 하는 압박을 받게 된다.

푸틴 대통령은 리 부장을 크렘린에서 직접 만나 북방함대와 태평양함대가 진행하고 있는 군사훈련에 대해 상세히 소개했다. 그는 “극동과 유럽에서 대규모 합동 훈련이 진행 중이며, 이 훈련에는 육·해·공군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며 훈련의 내용과 의의를 몸소 브리핑했다. ISW의 분석처럼 미·중 패권 경쟁에서 러시아가 얼마나 매력적인 전략적 파트너인지를 중국에 직접 어필한 셈이다. 이를 들은 리 부장은 “양국 관계는 냉전 때 군사·정치적 연합 체제를 능가한다”면서 앞으로 러시아와의 군사적 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을 약속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리상푸(왼쪽) 중국 국방부장과 회담하고 있다. 가운데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 [타스=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리상푸(왼쪽) 중국 국방부장과 회담하고 있다. 가운데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 [타스=연합뉴스]

중국이 러시아에 어떤 수준의 군사적 지원을 제공할지는 미지수다. 러시아는 전차와 장갑차, 야포와 탄약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지만, 중국이 국제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런 중장비를 제공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다만 러시아의 벨고로드·하바롭스크 태평양 조기 배치와 공세적 운용을 통한 미·일 견제 역할을 조건으로 러시아에 제한적인 군사지원을 제공할 가능성은 높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과 국가보안국은 전장에서 발견되는 중국산 군용 장비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은 ‘완성품’을 직접 지원하는 대신, 치장물자로 보관된 전차나 장갑차 등을 러시아가 복원하는 데 필요한 부품을 지원하거나 재고가 바닥난 러시아의 전략 미사일 생산에 반드시 필요한 반도체와 전자부품 공급량을 늘리는 방법으로 러시아를 우회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중국은 러시아가 서방 제재로 구하지 못하는 반도체와 군사용 전자제품의 밀수를 지원하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의 중국 경유 반도체 수입량은 전쟁 이전의 3배 이상 규모로 늘었고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식별된다.

이런 상황이 심해질수록 러시아의 중국 의존도와 중국 예속 현상은 점점 더 심화할 것이다. 러시아는 군사적으로 중국에 손을 벌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중국에 점점 더 의지하기 시작했다. 서방 기업들이 떠난 자리에 중국 기업들이 무혈입성하고 있고, 시장은 점점 ‘Made in China’ 상품들로 잠식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최근 윌리엄 번스 CIA 국장의 경고대로 러시아가 중국의 경제적 식민지가 될 수도 있다.

러시아 경제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그것대로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러시아라는 국가 자체가 중국에 예속되는 상황이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러시아는 국가 전체가 붕괴 수순을 밟고 있다. 현재 실로비키 세력 내의 권력 암투는 내년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 어떤 형태로든 수면 위로 떠오르며 대혼란을 빚어낼 수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이 전쟁을 계속 끌고 가기 위해 중국의 도움을 받으면 받을수록 중국은 러시아에 더 많은 요구를 하게 될 것이고, 이는 러시아 전체의 중국 예속화 현상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러시아군 포격을 위해 엄폐한 우크라이나 아우디이우카 경찰. [AP=연합뉴스]

러시아군 포격을 위해 엄폐한 우크라이나 아우디이우카 경찰. [AP=연합뉴스]

지난 1월 알렉산더 모틸(Alexander Motyl) 러트거스대 교수는 포린폴리시 기고문에서 러시아 연방의 붕괴와 해체 가능성을 경고했다. 러시아가 극심한 혼란 속에 분열되고, 분열된 각 세력 가운데 일부가 벨고로드나 하바롭스크와 같은 전략자산들에 대한 통제권을 쥐고 친중 그룹에 합류한다면, 중국이 러시아의 핵전력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미·중 패권 경쟁의 판을 완전히 엎어버리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포린폴리시에는 지난 2021년 10월, 존스홉킨스대 할 브랜즈(Hal Brands) 석좌교수와 터프츠대 마이클 베클리(Michael Beckley) 교수가 공동 기고한 ‘중국은 쇠퇴하는 강대국이며 그것이 문제다(China Is a Declining Power – and That’s the Problem)’라는 기고문이 실렸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미·중 패권 경쟁에서 중국은 추락하는 상황이었고 패배가 유력시됐지만, 이젠 모든 것이 바뀌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 실패로 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다.  미국의 중동 동맹이 와해하면서 미국 패권의 근간이 됐던 페트로 달러 체제가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쏟아지며 미국과 중국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고 있다.

필자는 2020년 대선 직후 바이든 행정부와 미국 민주당의 도덕적 타락과 사익(私益) 추구가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파괴하고 결과적으로 미국 패권의 쇠퇴를 가져올 것이라고 여러 차례 경고해온 바 있다. 그 경고대로 유럽에서는 전쟁이 발발했고 미국의 중동 동맹은 파괴됐다. 이젠 러시아까지 중국에 정치·경제적으로 예속될지도 모른다는 경고가 나올 지경인, 문자 그대로 사상 초유의 상황들이 펼쳐지고 있다.

2024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이 재집권에 성공한다면 미국 패권의 쇠퇴와 중국의 부상은 더욱 심화할 것이며 미·중 패권 교체 시기가 더욱 앞당겨질 수도 있다. 중국이 러시아가 만든 인류 멸망의 무기에 대한 통제권을 쥐고 흔들며 글로벌 패권을 장악할 수도 있는 미래, 인류에게 이보다 끔찍한 디스토피아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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