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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홀구 전세사기 주택, 오늘부터 경매·매각 즉각 중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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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 거주 주택에 대한 경매·매각을 중지하기로 했다. 전세사기 피해자의 극단적 선택 등이 이어지자 내놓은 긴급 처방이다.

정부는 19일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전세사기 피해지원 범부처 태스크포스(TF)’ 1차 회의를 열고, 전세사기 피해 주택에 대한 경매 유예 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 정부는 우선 인천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로 확인된 2479가구 가운데 은행, 저축은행, 신협·농협·새마을금고 등 금융회사 대출분에 대해 20일부터 즉시 경매를 유예하기로 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다만 금융감독원은 유예기간을 ‘6개월 이상’으로 밝혔는데,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유예기간을 확정적으로 못박지는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향후 정부는 경매 유예 대상 주택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할 방침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단순히 전세금을 떼이거나, 집주인과 분쟁이 있는 경우까지 지원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명확히 전세사기로 규정된 경우에 한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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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에게선 “늦게라도 지원책이 나와서 다행”이라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 전세사기 피해자 박모(41)씨는 “그래도 경매 중단을 한다니 시간은 번 것 아니냐”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박씨는 지난해 9월 자택이 법원 임의경매에 넘겨진다는 통보를 받았다. 2021년 전세금 7800만원에 재계약을 맺은 그는 주택 낙찰자가 나오더라도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최우선변제금 2700만원만 돌려받을 수 있다. 올해 9월 계약기간 만료를 앞둔 그는 그간 전세금을 잃고 거리에 나앉게 될 수 있다는 불안감 속에 지내왔다고 했다.

급한 불은 끌 수 있지만, 한계도 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 경기 부진 여파를 빌라와 같은 다세대주택은 아파트보다 더욱 크게 겪고 있어 향후 빌라 가격은 더 내려갈 수 있다. 이러면 향후 경매 때 낙찰가가 더 낮아질 수 있다. 피해자의 회수액은 당장 경매를 할 때보다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법적으로 강제할 길도 없다. 현행법상 정부가 임의경매(근저당권 등 담보권을 실행하는 경매) 절차를 중지할 수 있는 방안은 경매에 참여하는 채권자인 금융기관들이 경매 신청을 철회 또는 유예하는 방법뿐이다. 민사집행법상 경매는 채권자의 동의를 받아 관련 서류를 제출한 경우에만 중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토부는 전세사기 피해 매물에 대해 선순위 근저당권을 확보한 뒤 경매를 신청한 금융기관에 ‘일정 기간 매각 기일을 연기해 달라’는 의사를 타진했다. 국토부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현실적으로 채권자에게 채권 회수를 하지 말라고 할 순 없지만 기일 변경을 통해 경매 절차를 연기하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금융회사의 부실화도 문제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미추홀구 전세사기 관련 금융회사가 131개”라며 “은행이 2개, 나머지는 전부 제2금융권”이라고 전했다. 제2금융권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 등으로 건전성에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매 유예가 제2금융권의 연체율 증가와 부실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회와 시민단체 일각에선 공공부문이 세입자의 보증금 채권을 일괄 인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원희룡 장관은 “검토를 못 해 볼 이유는 없다”면서도 “미추홀구 피해 주택의 경우 선순위 담보 설정이 최대한도로 돼 있어 공공이 매입해도 피해자에게 갈 돈이 한 푼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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