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안해야 되레 도움된다? 트럼프 기소에 침묵한 푸틴 속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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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8년 7월 16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에 우호적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기소됐지만, 크렘린궁은 관련 말을 아끼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온 다른 극우·포퓰리스트 성향의 스트롱맨들이 공개 지지 의사를 밝힌 것과 대조적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러시아가 이처럼 관련 입장을 자제하는 속내는 '트럼프 감싸기'란 분석이 나온다.

5일(현지시간)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우리는 미국 내정에 어떤 식으로든 간섭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반대로 미국도 러시아 문제에 간섭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페스코프의 이 같은 발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 우호적인 발언을 계속해 온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소 관련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모두 철권 리더십을 앞세운 국제사회의 대표적인 '스트롱맨 리더'다. 트럼프는 재임 기간 푸틴에게 호감을 보이며 친분을 쌓아왔다. 트럼프가 푸틴의 장기 집권을 부러워하며 본인도 독재자처럼 행동하고 싶어했다는 미 중앙정보국(CIA) 전직 국장의 폭로가 나오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을 "천재"라고 표현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러시아의 침묵 이면엔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트럼프 전 대통령을 옹호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단 관측이 나온다. 데이비드 실비 코넬대 역사학과 부교수는 "크렘린궁은 침묵으로 푸틴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 대통령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선호한다는 걸 드러냈다"면서 "크렘린궁은 언급 자체가 미국 사회의 혼란을 야기한 '러시아의 친구' 트럼프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비 부교수는 "전직 대통령의 기소가 '미국에선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는데,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인들에게 이 점을 강조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왼쪽)이 지난해 8월 2일 미국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에 있는 트럼프 대통령 별장에서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를 환영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또 러시아 내정에 미국이 간섭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단 분석도 나온다. 마크 N. 카츠 조지메이슨대 정책·정부대학원 교수는 뉴스위크에 "소련 시절부터 러시아는 미국과 달리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으나, 실제론 아니다"며 "러시아의 침묵에는 '우리도 미국 내정에 간섭하지 않을 테니, 반대로 미국도 그러지 마라'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또 다른 극우·포퓰리스트 성향의 국제 리더들은 공개 지지 의사를 밝혔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지난 3일 트위터에 자신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을 올리며 "대통령님 계속 맞서 싸우세요. 우리는 당신과 함께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도 미국의 민주주의를 비판하며 트럼프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5일 기자회견에서 "저는 그들(미 검찰)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한 행위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선거를 위한 정치적 목적"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4일 미국 전·현직 대통령 최초로 기소돼 형사법원에 섰다. 지난 2016년 대선을 앞두고 포르노 배우 출신 스토미 대니얼스에게 회삿돈을 건넨 후 기업문서를 조작한 의혹을 포함해 총 34건의 혐의가 적용됐다. 트럼프는 모든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