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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폭력 선동말라” 경고, 트럼프 “판사 딸 민주당 돈 받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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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4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 법정에 출두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4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 법정에 출두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형사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기소인부(認否) 절차를 밟기 위해 4일 오후 1시30분(현지시간)쯤 비밀경호국 요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법원 내부에는 법원 경찰과 함께 비밀경호국 요원들이 배치돼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날 도착해 묵었던 트럼프타워를 나설 땐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들어 보이며 자신감을 과시했지만 법정에 들어설 때는 얼굴이 굳어졌다. 법원 도착에 앞서 소셜미디어엔 “너무나도 초현실적”이라며 “이런 일이 미국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적었다.

이날 법정 내부 상황은 방송 생중계가 금지돼 사전 신청을 통해 법정 참석이 허용된 취재진이 소셜미디어에 게시하는 글을 통해 전해졌다. 마이클 골드 뉴욕타임스(NYT) 기자는 트위터에 “트럼프는 법정에 들어서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며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고 전했다.

재판 개시시점 “내년 1월” vs “내년 봄”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당초 맨해튼 형사법원 도착 전 맨해튼지검에서 머그샷(범인 식별용 얼굴 사진)을 촬영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당국에 의해 취소됐다고 한다. 당국은 머그샷이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을 고려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트럼프 대선 캠페인 측은 트럼프의 머그샷 이미지가 담긴 티셔츠를 인터넷 사이트에서 36달러(약 4만7000원)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1시간가량 진행된 기소인부 절차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건을 심리한 후안 머천 판사가 피고인의 권리를 읽어 주는 과정에서 “이해했느냐”고 질문하자 “네”라고 짧게 답했을 뿐 대체로 침묵을 지켰다고 한다.

이날 공개된 공소장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혐의는 총 34건으로, 기업문서 조작과 관련됐다. 이 중에는 이미 언론에 공개된 포르노 배우 출신 스토미 대니얼스 외에도 성인잡지 플레이보이 모델 캐런 맥두걸에게도 입막음조로 돈을 주며 회사 문서를 조작한 혐의도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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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을 수사한 앨빈 브래그 맨해튼지검장은 “다른 범죄를 은폐하기 위한 34건의 허위 문서 조작이 있었다”고 말했다. NYT에 따르면 기업문서 조작은 뉴욕에서 가장 낮은 단계의 중범죄로 최고 4년형의 E급 범죄에 속한다.

이날 법정에서 머천 판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이례적인 경고를 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폭력을 선동하거나, 시민 불안을 조성하거나, 어떤 개인의 국가나 복지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발언을 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향후 재판 일정과 관련해선 오는 12월 4일 법원에서 다시 검찰과 트럼프 변호팀의 의견을 듣겠다고 했다. 검찰은 재판 개시 시점을 내년 1월로 잡아 달라고 요청한 반면, 트럼프 변호팀은 내년 봄 이후가 더 적당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맨해튼 형사법원 주변에는 트럼프 지지자와 반대자 수백 명이 엇갈린 목소리를 냈다. 한쪽에선 지지자들이 “트럼프가 (지난 대선에서) 이겼다” “바이든을 탄핵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깃발과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다른 쪽에선 “그를 감옥에 가둬라” “트럼프를 체포하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반(反)트럼프 집회를 열었다. 양쪽 시위자들 간에 고성이 오갔지만 물리적인 충돌은 없었다.

기소인부 절차를 마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법원을 나와 곧바로 뉴욕 라과디아 공항으로 이동해 플로리다 마러라고 자택으로 돌아갔다. 그는 자택 연설에서 “우리나라에서 여태껏 본 적이 없는 엄청난 규모의 선거 개입”이라며 “내가 저지른 유일한 범죄는 우리나라를 파괴하려는 자들로부터 두려움 없이 우리나라를 지킨 것뿐”이라고 말했다. 또 이번 수사가 “본 적이 없는 엄청난 선거 개입”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기소 결정한 검사엔 “급진 좌파”

그는 기소를 결정한 브래그 지검장을 “급진 좌파”라고 비꼬았다. 이어 “지난주 그(브래그)는 한 달가량 (기소를) 연기했고 그리고 갑자기 이를 취소하고 터무니없는 기소장을 던졌다”며 비난했다. 오히려 브래그 지검장이 뉴욕 맨해튼 대배심에 관한 정보를 불법 유출했다며 그가 사임하거나 기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독설은 머천 판사에게도 향했다. 그는 “트럼프를 증오하는 판사가 있으며 그의 부인과 가족도 트럼프를 증오하기는 마찬가지”라며 “그의 딸은 카멀라 해리스(부통령)를 위해 일했고 지금은 바이든-해리스 캠프로부터 돈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하루종일 말을 아꼈다. 카린 장피에르 대변인은 이날 트럼프 기소와 관련된 질문에 “진행 중인 사건이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겠다”고만 말했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엇갈린 입장을 냈다. 공화당의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은 트위터에 “검찰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정치적 혐의를 적용해 민주적 절차를 방해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반면에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미국 사법시스템의 절차에서 외부 영향이나 위협이 설 자리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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