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상업화가 만화발전 저해|만화연구가들 격월간지「가나아트」에 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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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만화가「예술로의 발전이냐, 저질 문화로의 전락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우리나라의 만화는 80년대 들어서면서 폭발적인 수요확산에 힘입어 새로운 발전의 기반을 확보했다. 그런데 최근 저속한 내용의 만화가 독버섯처럼 번지기 시작, 점차 중요해질 대중문화로서의 만화발전을 가로막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 같은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의 몇 안되는 만화 연구가들이 격월간지『가나아트』최근호에 만화 발전을 위한 제안을 기고해 일반의 관심을 끌고있다.
하종원씨(외국어대 강사)는「대중매체로서의 만화의 가능성과 방향」이란 글을 통해『기존만화의 세련된 만화 적 매력과 민중만화의 건강한 현실인식의 접합이 만화의 건강성 역동성을 되찾을 수 있는 방안』이라고 제안했다.
하씨는『종래 단순하고 저급한 오락물로 천대받던 만화가 이제는 정보전달과 대중 설득의 효율적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며 만화의 무한한 발전가능성을 낙관했다. 하씨는 만화가 갖는 대중매체로서의 중요성과 발전가능성이 만화의 표현특성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즉 만화는 가장 비사실적이면서도 가장 현실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만화가「단순화」와「과장」이라는 표현기교를 사용, 사물이나 사람의 특징적인 면을 과장함으로써 사진처럼 정확하지는 않지만 묘사 대상을 보다 강하게 표현해 내기 때문이다.
하씨는 그러나 만화의 이 같은 막강한 대중적 포용력이 지나친 상업화로 빠져 오히려 건전한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한다.
만화내용이 대중들의 왜곡된 정서에 편승, 성과 폭력을 중심 소재로 점차 자극적·노골적이며 허황된 인식을 주입시킨다는 것이다.
반면 이 같은 저질 상업만화의 허구성을 깨뜨리고 만화의 건강성을 되찾으려는 시도에서 시작된 것이 민중만화다.
민중만화는 따라서 현실 비판적인 내용으로 민족정서를 반영하는 건전한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민중만화 역시 미숙한 만화기법, 주의·주장에 집착한 사실적 문장·용어 등의 문제점이 지적된다.
하씨는 결론으로『기존만화의 세련된 기법과 민중만화의 건강한 현실 인식이 접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씨는 그 구체적 방안으로 ▲만화가 스스로의 작가의식 고양 ▲표현의 자유확대 ▲서점을 통한 만화유통확대 ▲만화 비평 작업의 활성화 ▲민화 등을 변 용한 우리고유의 화법 개발 등을 제안했다.
미술평론가 최 열 씨는「한국 근·현대만화의 발자취」란 글을 통해 최근 만화문화의 급성장은「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 추세」라고 강조했다.
최씨는『만화 활성화의 기반은 70년대 대중오락 신문·잡지』라고 주장한다. 즉 일간스포츠에 연재된 고우영의『임꺽정』『수호지』등 시리즈와 선데이서울에 연재된 박수동의『고인돌』등은 만화독자를 어린이에서 청소년·성인 층으로 확장해 갔으며 이는 곧 80년대 성인용 대중만화의 팽창을 예고했다.
짜임새 있는 구성, 풍부한 재담과 적절한 성적 호기심의 자극 등은『애들이나 나 보는 만화』라는 통념을 깨뜨렸으며 성인을 대상으로 한 대본 소(만화가게)가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이 같은 통속만화의 성장과 함께 충자·역설·상징을 이용한 비판적 시사만화와 노동자·농민들의 생활상을 그린 민중만화도 급속히 발전하였다.
최씨는 우리 만화 계의 가장 큰 문제는 6·25 피난시절부터 들어오기 시작한 일본만화의 해악이라고 지적한다. 일본만화, 특히 국내에 상당히 퍼져 있는 불법만화의 노골적인 성 묘사 등은 청소년들의 윤리의식을 마비시킬 정도며 일본만화의 모방은 국내 만화 계의 발전을 왜곡·저해시켜 왔다는 것이다.
최씨는 결론적으로『80년대까지 잘못돼 온 만화 문화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예술로서의 만화를 지향하는 만화가의 양성이 관건』이라며 90년대에 기대했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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