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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원→17원 폭락, 8000만원 손실…강남 살인 뒤엔 'P코인 악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강남구에서 벌어진 납치ㆍ살인 사건 피의자 이모(35)씨와 피해자 A씨가 ‘P코인’을 통해 인연을 맺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입건된 4명 중 유일하게 피해자와 면식이 있던 피의자로, A씨를 범행 대상으로 정하고 범행 계획을 세운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암호화폐거래소 뒷돈 상장 혐의로 검찰 수사 대상이 된 P코인이 폭락할 당시 큰 손해를 봤고, 해당 코인 등장 초기부터 코인 홍보 회사를 운영한 A씨와 함께 코인 이권 다툼에서 비롯된 형사 사건에 연루된 적도 있다.

6개월만에 1만원에서 10원대로…폭락 속에 피해자 만나

강남 40대 여성 납치 ㆍ살인 사건 피의자 이모씨가 3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출석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강남 40대 여성 납치 ㆍ살인 사건 피의자 이모씨가 3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출석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씨 변호사와 지인 등에 따르면 이씨는 주변인 소개로 P코인에 투자를 시작하며 A씨를 알게 됐다. P코인은 블록체인을 활용해 청정공기를 관리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운영사인 U사가 지난 2020년 시장에 내놓은 가상화폐다. P코인 백서에는 “실시간 대기질 정보를 P시스템을 통해 신속하게 공유해 인류에게 더 건강한 환경을 만들 수 있다”며 공기질 측정에 대한 보상으로 코인 채굴이 가능하다는 설명이 담겨있다.

P코인은 등장 초기 공공기관과의 협업을 적극적으로 홍보에 활용하며 주목 받았다. 운영사 측은 “공식적으로 지자체와 협력해 왔다”며 미세먼지 저감 제품들을 소개했고 파트너십 기관으로 서울시의회·포스코·KT·서울대 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P코인에 투자해 손해를 본 한 투자자는 “ESG 경영과 관련해 국가와 협력을 한다는 점을 많이 홍보했다. 공공기관들과 계약이 다 돼있고 대기업과도 연결돼 있다고 했다. 국회의원들을 초대해서 연사를 시키기도 했다”며 “투자자들은 당연히 유망한 기업이라고 인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2020년 12월 1만원을 넘어서며 최고가를 경신했던 P코인은 이후 폭락을 거듭하며 6개월만에 17원대로 떨어졌다. 이씨 역시 비슷한 시기 8000만원 가량의 손실을 봤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한 블록체인 컨설팅업체 대표는 “P코인은 코인원 한 군데에만 상장돼 있다. 이런 코인들은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코인이 상장하는 과정에 불법적인 방법이 동원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P코인은 지난달 7일 서울남부지검이 구속기소한 암호화폐 상장 브로커 고모씨가 암호화폐거래소 코인원의 임직원에게 뒷돈을 건네 상장시킨 29개 코인 중 하나다.

피해자들은 P코인이 덩치를 한참 키울 당시 다단계식 지인 영업을 주로 활용했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 P코인 유튜브 채널에는 코인 영업담당자들이 모여 “제 지역에서 열심히 해서 성과를 만들겠다”는 발표를 하는 영상도 게재돼 있다. 이에 대해 P코인 운영사 관계자는 “영업행위는 컨설팅 계약을 맺은 자문사가 진행한 것이고, 피해자인 A씨 역시 코인을 지급한 것 외에 계약 관계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인에게 P코인 투자를 권유 받은 한 투자자는 “‘얼마까지 갈 거니까 무조건 사라’고 권유 하며 구입 방법까지 다 알려줬다. 주변 사람들과 함께 투자했다가 다 합쳐서 4억 정도 손실을 봤다”며 “사례들을 모아보니 사기라고 판단해서 고소를 진행하기 위해서 피해자들이 모이던 차였다”고 말했다.

폭락장에 인연 맺어 돈도 받았지만… 다시 엇갈린 관계

'P코인' 백서에 실린 프로젝트 배경. 2016년 발생한 세계 전체 사망자의 7.6%가 대기오염 때문이라는 WHO 통계를 인용했다. P코인 백서 캡처

'P코인' 백서에 실린 프로젝트 배경. 2016년 발생한 세계 전체 사망자의 7.6%가 대기오염 때문이라는 WHO 통계를 인용했다. P코인 백서 캡처

 이씨와 A씨 관계를 알고 있는 주변인들은 이 같은 폭락 국면 속에서 P코인 초기부터 가족 회사를 통해 투자를 권유했던 A씨도, 투자자였던 이씨도 모두 큰 손해를 봤다고 전했다. 지난 2021년에는 두 사람을 포함한 투자자들이 P코인 운영사 관계자에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주거침입과 감금, 공갈 등을 혐의로 수사를 받기도 했고, 관계자들과 여러 건의 고소·고발을 주고 받는 등 상황이 더 복잡해졌다. 이 과정에서 이씨와 A씨는 관련 상황을 공유하며 처음 인연을 맺었고, 이후엔 이씨가 피해자 회사에서 수개월간 근무한 적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이 시기 A씨로부터 2000만원을 지원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엔 다시 둘 사이가 틀어졌다고 한다. 이씨의 변호인은 “이씨는 주변에 코인 투자로 큰 돈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반면 피해자에 대해서는 ‘큰돈을 벌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를 납치해 살인한 황모(36)씨와 연모(30)씨는 “이씨가 처음부터 코인 등 금품을 빼앗은 뒤 피해자를 살해할 계획을 세웠고, 우리는 금전적 보상을 노리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다.

다만 경찰은 이씨의 범행에 영향을 미친 다른 공범이 있다는 진술도 확보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범행 동기가 더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경찰이 앞서 신청한 황씨와 연씨, 이씨에 대한 구속영장은 3일 오후 모두 발부됐다. 법원은 증거 인멸 및 도주 이유를 구속 사유로 들었다. 구속된 이씨는 군 특수부대 출신으로, A씨의 회사에서 나온 뒤에는 한 법률사무소에서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폭력 조직 활동을 했던 황씨는 특수강도 등 전과 17범인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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