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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안보 굳건한 지지" 중·러 공동성명…北 감싸며 美 비난도

중앙일보

입력

21일 모스크바 크렘린 궁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과 건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1일 모스크바 크렘린 궁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과 건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국가주석 3연임 확정 후 첫 해외 순방국으로 러시아를 택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 후 양국의 전략적·경제적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2건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양국은 각자의 핵심이익을 지키고, 주권·영토보전·안보·발전문제에서 굳건한 지지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혀 미국 중심의 기존 국제질서에 반대하는 ‘항미(抗美)’ 연대를 굳건히 했다.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 궁에서 약 3시간에 걸쳐 공식 회담을 한 뒤 중국어로 9500여자 분량의 ‘새로운 시대 전면적인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심화에 관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서 양국 정상은 “‘민주와 권위주의의 대결’이라는 허위에 반대하고, 민주와 자유를 타국을 압박하는 구실과 정치 도구로 삼는 데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이란 이름만 거론하지 않았을 뿐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민주주의 ‘가치 동맹’을 정조준했다. 또 주권·영토보전·안보·발전 문제에 관한 상호 지지를 밝힘으로써 중국은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러시아를, 러시아는 대만 문제에서 중국을 돕겠다는 공조를 약속했다.

미국이 실명으로 거론된 건 북한 문제를 언급하면서다. 두 정상은 “미국은 실제 행동으로 북한의 정당하고 합리적인 우려에 호응해 대화를 재개할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북한을 두둔했고 “제재와 압박은 취해서는 안 되며 통하지도 않고, 대화와 협상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출로”라고 강조했다. 지난 2017년 7월 모스크바 공동성명이 “북한은 유엔 회원국으로 유엔 안보리 관련 결의를 착실히 준수할 의무가 있다”고 적시했던 것과 달라졌다. 2019년 6월 “각 측의 우려를 종합·균형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기계적 균형을 밝혔던 데서도 한발 물러섰다.

이와 함께 동북아 지역에서 외부의 군사력이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는 데 반대한다고 밝혔다. “역외 군사 역량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는 데 반대하며 유관 국가는 냉전 사고와 이데올로기 편견을 버리고, 자제를 유지하며, 지역의 안보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을 취하지 말 것을 호소한다”고 적시하면서다. 대만을 포함한 동북아에서 중·러의 군사적 밀착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 문제를 고리로 전략적 협력 의지를 다진 중·러 양국은 경제적 밀착관계를 다지는 청사진도 공개했다. ‘2030년 이전 중·러 경제 협력의 중점 방향과 발전 계획에 관한 공동성명’을 별도로 내면서다. 특히 제3항에서 “양자 무역·투자·차관·기타 경제무역 왕래에서 시장 수요에 적응해 본국 화폐 결산 비중을 점진적으로 늘린다”고 못 박아 ‘미국 달러 배척’ 의지를 드러냈다. 

크렘린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정상회담 모두 발언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자국 통화가 상호 무역에서 더욱 많이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미 무역액의 3분의 2가 루블(러시아 통화)과 위안(중국 통화)으로 결제되고 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어 “우리는 러시아 연방이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의 파트너와 결제하는 데 중국 위안화 사용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시 주석은 지난해 12월 사우디아라비아 순방에서 원유 수입을 위안화로 결제하는 ‘페트로 위안’ 구상을 내비쳤고, 친강(秦剛) 외교부장은 지난 7일 전인대 기자회견에서 “글로벌 화폐는 일방적인 제재의 치명적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었다. 이 같은 중국의 탈(脫)달러 기조에 푸틴 대통령이 적극 호응한 것으로 해석된다.

시 주석은 이에 대한 화답으로 러시아의 자금줄인 에너지 분야 협력을 약속했다. 이미 중국은 지난해까지 주로 의존했던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올해부터 러시아에서 가장 많은 원유를 수입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2030년까지 러시아 가스 최소 980억㎥와 1억 톤의 액화천연가스를 공급하겠다”며 “몽골을 통과하는 ‘시베리아의 힘-2’ 가스 파이프라인 프로젝트를 논의했다”고 소개했다.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통해 500억㎥ 가스를 공급할 예정이다.

21일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이 공동성명에 서명 후 악수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21일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이 공동성명에 서명 후 악수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협력에 금지영역 없다” 문구 1년 만에 사라져

그러나 공동성명과 양국 정상 발언에서 수위를 조절한 대목도 눈에 띄었다. 특히 러시아에 대한 무기 지원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서방 여론을 의식하는 듯한 중국의 고민이 묻어났다. 지난해 2월 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앞두고 서명한 베이징 공동성명에 포함됐던 “양국의 우호에 한계가 없으며, 협력에 금지영역은 없다”는 문구가 자취를 감췄다. 당시 서명을 주도했던 중국 외교부 내 러시아통 러위청(樂玉成) 부부장도 이미 한직으로 좌천됐다. 중국의 러시아 무기 지원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국제사회 여론을 감안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를 포함해 우크라이나 문제 관련해 눈에 띄는 진전도 없었다. 성명은 “러시아는 가능한 한 빨리 평화 회담을 재개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고 중국은 이를 높이 평가했다”고 명기하는 데 그쳤다. 또 “러시아는 중국이 정치와 외교 경로를 통해 우크라이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할 의향을 환영한다”고 적었다.

한반도 문제 관련해선 그간 중국이 주장했던 ‘쌍중단’(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지와 한·미 군사훈련 중단) 제안이 빠진 점이 주목된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중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손을 놓겠다는 취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우려된다”며 “동북아 역외 군사력 반대를 언급한 것은 한·미·일 군사협력은 물론 한국과 일본 내 미군 주둔에 반대하면서 러시아와 동북아에서 군사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21일 크렘린 궁 성조지 홀에서 열린 공식 환영행사에 배석한 러시아와 중국 고위 관리 들. 러시아 측이 16명에 비해 중국은 8명에 그쳤다. 중국 측 오른쪽부터 차이치 중앙판공청 주임, 왕이 중앙외사공작위원회판공실 주임, 친강 외교부장, 장진취안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정산제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 왕원타오 상무부장, 마자오쉬 외교부 부부장, 장한후이 주러 중국대사. 타스=연합뉴스

21일 크렘린 궁 성조지 홀에서 열린 공식 환영행사에 배석한 러시아와 중국 고위 관리 들. 러시아 측이 16명에 비해 중국은 8명에 그쳤다. 중국 측 오른쪽부터 차이치 중앙판공청 주임, 왕이 중앙외사공작위원회판공실 주임, 친강 외교부장, 장진취안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정산제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 왕원타오 상무부장, 마자오쉬 외교부 부부장, 장한후이 주러 중국대사. 타스=연합뉴스

시진핑, 젤렌스키 대통령 회담 없이 귀국길

시진핑 주석은 22일 오전 러시아 국빈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다고 중국중앙방송(CC-TV)가 보도했다. 일부 외신이 보도했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화상 회담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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