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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80년 만에 환국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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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조선시대 대표적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의 희귀작 21점이 화첩형태로 지난해 한국에 돌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독일 남부 오틸리엔 수도원 관계자는 20일 "수도원이 소장하던 정선의 화첩을 지난해 10월 22일 한국 왜관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에 영구임대 형식으로 돌려줬다"고 밝히고 "왜관 수도원은 독일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수도원의 한국 진출 100주년을 맞는 2009년 그림을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반환 조건은 두 가지"라며 "그림이 손상되지 않도록 특수 보관시설을 갖출 것과 한국 측 수도원이 관리하며 한국 정부에 소유권을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예레미야스 슈뢰더 수도원장은 귀중한 문화재가 이곳 수도원에서 잠자고 있는 것보다는 돌려주는 게 낫겠다고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22일 독일 남부 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예레미야스 슈뢰더 수도원장(左)이 정선 화첩을 왜관 수도원 선지훈 신부에게 영구임대 형식으로 반환하고 있다.[수도원 자료사진]

화첩의 한국 반환을 요구해 성사시킨 왜관 수도원의 선지훈 신부는 "우선은 반환 시 약속대로 독일 수도원 측에 작품의 모사본을 제작해 돌려주고, 오틸리엔 수도원의 한국 선교 100주년이 되는 2009년까지 도록 발간 등 관련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화첩은 현재 지방의 모 국립박물관 수장고에 보관 중"이라고 밝혔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사진으로만 봤던 겸재의 작품을 직접 감상할 기회가 생겨 매우 반가운 일"이라며 "실경도.정형산수 등 겸재의 다양한 화풍을 망라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국보.보물급 문화재로 부르기에 큰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은 프랑스 측이 외규장각 문서를 돌려주겠다던 약속을 어긴 채 계속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과는 극히 대조적이다. 독일에서 활동 중인 미술사학자 이정희 박사는 "해외에 반출된 문화재가 이번처럼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되돌려진 사례는 극히 드물다"며 "약탈 문화재가 아닌 이상 독일이 자발적으로 되돌려 준 사례는 거의 없다"고 전했다.

이번에 돌아온 화첩은 1925년 한국을 방문한 노르베르트 베버 당시 오틸리엔 수도원장이 귀국할 때 수집해 간 것이다. 이 화첩의 현지 존재 사실은 알려져 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대구=송의호 기자

◆ 정선(鄭敾.1676~1759)=호는 겸재(謙齋). 사대부 가문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남다른 재주를 보였다. 초기엔 중국화의 영향을 받았으나 북종화와 남종화를 결합시킨 독창적인 진경산수화법으로 자신만의 화풍을 선보였다. 기존의 문인화가 자연과 인물을 관념적인 선과 형태로 표현한 반면 진경산수화는 산천을 사실적인 구도와 필치로 치밀하고 자세하게 표현했다. 주요 작품으로 '금강전도'(국보 217호) '인왕제색도'(국보 216호) '교남명승첩' 등이 있다. 안견.장승업과 더불어 조선 3대 화가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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