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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에 한반도식 정전협정? 그게 끔찍한 악몽이란 결정적 이유

중앙일보

입력

러시아의 봄 총공세 때 파괴된 러시아 탱크가 우크라이나 동부 하르키우 인근의 밀밭에 버려져있다. AFP=연합뉴스

러시아의 봄 총공세 때 파괴된 러시아 탱크가 우크라이나 동부 하르키우 인근의 밀밭에 버려져있다. AFP=연합뉴스

"한반도식의 정전협정은 끔찍한 결과가 될 것이다. 러시아는 북한과 다르다."
1년을 넘기며 장기화하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두고 한국전쟁 때와 같은 정전협정이 해결책이 되겠느냐는 중앙일보 취재진 질문에 벤 호지스 미국 예비역 준장이 보인 반응이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당시 유럽주둔 미군 사령관이었던 그는 한국전쟁 정전 후엔 북한이 한국을 쳐들어갈 능력이 안 됐기 때문에 평화가 유지된 것일 뿐 우크라이나에선 미국이 관심을 잃는 순간 다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봤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집권 당시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유럽담당 선임국장을 지낸 찰스 쿱찬 조지타운대 국제관계학 교수 역시 정전협정이 가장 현실적인 결론이긴 하지만 한반도에서와 같은 결과를 보긴 힘들 거라고 전망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강조하는 크림반도 탈환에 대해선 의견이 갈렸다. 호지스 장군은 이번 전쟁을 제대로 마무리 짓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지만, 쿱찬 교수는 오히려 러시아의 핵공격을 부를 수 있다며 반대했다.

전쟁 종결 시기에 대해 호지스 장군은 서방의 의지에 따라 올해 안에도 끝날 수 있다고 했지만, 쿱찬 교수는 그 이상을 내다봤다.

러시아의 총공세가 본격화된 올봄 우크라이나 전황에 대해 다소 상반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 두 전문가의 이야기를 동시에 들어봤다.

벤 호지스 전 미 육군 예비역 준장은 지난달 28일 중앙일보와 화상 인터뷰에서 ″한국전쟁과 같은 정전협정은 우크라이나에 끔찍한 결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광조 기자

벤 호지스 전 미 육군 예비역 준장은 지난달 28일 중앙일보와 화상 인터뷰에서 ″한국전쟁과 같은 정전협정은 우크라이나에 끔찍한 결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광조 기자

우크라이나가 봄 총공세를 막을까

호지스 ○=지금 러시아는 제대로 훈련받지도 못한 징집병들을 마치 고기 분쇄기에 밀어넣듯 넓은 전선에 투입하고 있다. 지원 부대도 없이 병참 문제까지 겪으면서 수천 명의 생명을 희생시키고 있는 게 소위 '봄 총공세'의 현실이다.

쿱찬 ○=올봄 러시아는 돈바스 공격에 집중하고, 우크라이나는 돈바스와 크림반도를 잇는 육로를 끊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쪽도 승기를 못 잡고 교착상태가 될 것으로 본다. 올여름부터 가을까지 전황을 지켜봐야 할 텐데, 한쪽이 승리를 선언할 수 있는 위치에 설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탈환할까

호지스 ○=이번 전쟁에서 크림반도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돈바스 탈환도 중요하지만 그게 전쟁 결과를 바꾸진 못한다. 서방의 지원으로 러시아군을 크림반도에서 고립시키면 올여름 안에 통제권을 되찾을 수 있다. 곡물 수출에 의존하는 수백만 명에게도 영향을 준다. 장차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를 재건시킬 유일한 방법이다.

쿱찬 X=크림반도까지 되찾을 충분한 군사력을 확보할 가능성이 작다. 우크라이나가 무력 점령을 시도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핵무기 사용 등 무모한 행동에 나설지 모른다. 3차 세계대전으로 번질 수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주권의 완전한 회복을 위해 그런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없다. 푸틴 시대에는 크림반도를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

전쟁이 올해 안에 끝날까

호지스 △=미국과 서방이 결심만 한다면 올해 안에 끝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백악관은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패배를 원하지 않는' 모습이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그들이 가진 것으로 러시아의 침략을 막았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위해 기꺼이 지원하지 않으면 긴 전쟁이 될 수 있다. 러시아가 바라는 것도 결국 서방이 지치는 것이다.

쿱찬 X=이 전쟁은 몇 년 동안 계속될 것이다. 앞으로 몇 달 동안 격렬한 전투가 이어진 뒤 겨울이 되면 또 교착상태가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서방의 의지인데 전쟁 비용, 난민,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한 소위 '우크라이나 피로감'이 문제다. 미국의 정치 상황을 봐도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우크라이나에 백지수표는 없다"며 지원에 부정적이다. 국내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지난달 6일) 국정연설에서 우크라이나 관련 내용은 단 2분에 불과했다. 전쟁은 길어질 수 있다.

지난 1일 미국 워싱턴의 싱크탱크 외교협회(CFR)에서 만난 찰스 쿱찬 조지타운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군수물자 확보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미국을 지금 한국이 돕는다면 한미관계의 중요한 신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광조 기자

지난 1일 미국 워싱턴의 싱크탱크 외교협회(CFR)에서 만난 찰스 쿱찬 조지타운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군수물자 확보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미국을 지금 한국이 돕는다면 한미관계의 중요한 신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광조 기자

한국전쟁같은 정전협정이 결론이 될까

호지스 X=아니길 바란다. 끔찍한 결과가 될 거다. 한국전쟁 정전 후 세계와 동아시아 지역이 더 안전해졌다고 할 수 없다. 정전 후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은 것은 한국을 점령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세계의 관심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게다가 (돈바스 지역 등을 점령한) 러시아가 전쟁 범죄와 불법 침략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도 나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쿱찬 △=일단 격렬한 전쟁을 끝내고 평화가 정착하게 하는 '동결분쟁(Frozen Conflict)' 가능성이 가장 높다. 지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원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러시아는 북한 같은 '왕따 국가'는 아니기 때문에 장전 후 한반도 같은 모습이 되진 않을 거다. 양국 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더라도 미국은 군비 통제, 에너지, 대북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러시아와 전략적 대화를 재개해야 한다. 러시아가 북한처럼 고립되진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할까

호지스 ○=장기적으로 우크라이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일부가 돼야 한다. 최근 독일·영국·프랑스에선 나토와 우크라이나가 방위협정을 맺는 방안을 제시했는데, 개인적으로 이를 신뢰하지 않는다. 이미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핵 폐기를 받아내며 부다페스트 각서에 서명했지만, 우크라이나를 제대로 지원하지 못했다. 앞으로도 러시아와 무엇을 협의하든 그들이 이를 위반할 것이라고 가정해야 한다.

쿱찬 X=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동맹들 사이에 나토 헌장 5조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철통 같은 방어를 제공하자는 합의가 없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과 나토는 처음부터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방어하는 것을 돕겠지만 이를 위해 싸우지는 않겠다"고 했다. 미국이 3차대전을 감수할 만큼 우크라이나를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은 러시아에 무기 지원을 할까

호지스 X=중국이 무기 지원을 검토한다는 정보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매우 현명했다. 중국이 이를 부인하게 만들어 실제 지원하기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중국은 미국의 실패를 보고 싶어 하고 러시아의 붕괴는 원치 않겠지만, 미국으로부터 받게 될 제재까지 감수하며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할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 볼 것이다.

쿱찬 X=중국은 초기부터 전쟁을 환영했다. 미국의 주의가 분산돼 유럽에서 아시아로 관심을 전환하는 속도가 늦춰졌기 때문이다. 중국에 대한 러시아의 의존도가 높아진 것도 만족스러워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전쟁을 통해 러시아가 세계 경제에서 분리되고 추락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적어도 지금은 러시아의 무장을 지원해 미국과 대결을 격화할 것 같진 않다.

한국은 무기 지원을 해야 할까

호지스 ○=한국인들이 믿는 가치와 그로부터 받은 혜택을 생각하면 우크라이나가 성공하도록 도와야 한다. 한국의 방위산업은 상당히 성장하고 있고, 그곳에는 많은 잠재력이 있다. 사업적 관점에서 볼 때도 러시아를 막지 못하면 다른 유럽 국가에 대한 위협이 계속될 것이다. 한국도 유럽의 안보와 안정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쿱찬 ○=어려운 문제다. 그런데 바이든 정부가 놀란 것 중 하나는 러시아의 침략이 명백한데도 많은 나라가 그저 방관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이 러시아와 협력관계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지금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자신을 병참장교라고 부를 정도로 미국은 군수물자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이 지금 고군분투하는 미국을 도와 우크라이나 지원에 나선다면 한·미관계의 중요한 신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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