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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초기 목표 실패, 전쟁 장기화 불가피…변수는 내년 11월" [우크라이나전쟁 1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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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출구전략 보이지 않는 전쟁" 우크라전 1년을 말하다

오는 24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두 진영에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긴 이번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물론 세계 안보 지형을 재편하는 전환점이 되고 있다. 중앙일보는 우크라이나 전쟁 1주년을 앞두고 이석배 전 주러시아 대사와 권기창 전 주우크라이나 대사에게 이 전쟁의 ‘종착 시나리오’를 물었다. 최근까지 각국에서 현장을 생생하게 지켜본 두 대사는 공통적으로 “전쟁의 출구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누가 오래 버티느냐의 게임”이라는 진단을 내놨다.

권기창 전 우크라이나 대사 제공

권기창 전 우크라이나 대사 제공

권기창(62) 전 우크라이나(이하 우크라) 대사는 2019년 5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우크라에 재직했다. 귀임 직전까지 벨라루스에서 러시아군의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이 전개되는 등 전운이 감돌았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권 전 대사는 우크라 전쟁 1주년을 맞아 지난 19~21일 중앙일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한국 전쟁 때와 유사하게 러시아·우크라 양측의 자원이 모두 소진될까지 전쟁을 끌고 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권기창 전 우크라이나 대사 인터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2월 개전 당시 밝혔던 전쟁(일명 ‘특별군사작전’) 목표를 얼마나 이뤘다고 보나. 
“우크라의 탈나치화, 비군사화라는 목표는 결국 친서방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부의 전복을 의미한다. 푸틴이 초반에 밝혔던 전쟁 목표에 비하면 달성에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다만 우크라 내 친러 지역 4개주를 점령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러시아가 일부 목적은 이뤘다고 볼 여지도 있다.”
이번 전쟁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모든 전쟁은 결국 평화 협상이라는 외교적 해결로 끝날 수 밖에 없다. 내년이든 3년 뒤든,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평화협정 없이 그 당시 교전이 중지된 상태를 사실상 국경으로 삼아 종료될 가능성이 있다. 모든 협상은 기브앤테이크로 일정 부분 주고 받아야 하는데, 지금은 양측의 접점이 전혀 없다. 러시아는 우크라 4개 지역, 마리우폴·멜리토폴·헤르손·크림반도 등 ‘육로 회랑(land bridge)’이라 부르는 땅을 확실하게 가져가게 되면 성공이라 주장할 것이다. 반면 우크라는 돈바스 수복은 물론 (2014년 러시아가 점령한)크림반도 반환과 전쟁 배상까지 요구하고 있다. 내년 하반기쯤 가면 양측의 인적·물적 피해가 엄청날 것이다. 장기화할 수록 미국·유럽 내 피로도가 상승해 우크라와 러시아 양쪽에 평화 협상을 하라는 압력이 높아질 거로 본다.”
향후 우크라가 돈바스 지역의 일부라도 포기하는 평화 협상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 상황이 오려면 서방, 결국 미국의 지원이 끊기는 상황까지 가야한다. 어느 시점에서 미국 내 전쟁에 대한 피로감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면 우크라에 협상을 종용할 수 있다. 러시아를 포함한 당사국 양쪽을 움직일 레버리지를 갖고 있는 나라는 미국 밖에 없다. 우크라 입장에선 영토를 내주는 사태만큼은 피하고 싶겠지만, 돈바스 일부를 떼어주는 대신 러시아군이 전원 철수하고 우크라에 대한 안전보장을 확약 받는 식은 가능할 수 있다. 다만 현재까진 우크라가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깜짝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났다.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깜짝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났다. AFP=연합뉴스

전황 변화 등에 따라 러시아 측이 돈바스를 포기할 순 있을까.
“2024년 3월 러시아 대선이 하나의 변수는 될 수 있다고 본다. 러시아가 극적으로 패퇴하게 되면 푸틴이 스스로 사임하거나, 재집권하지 못 할 가능성을 서방은 기대하고 있다. 새로운 지도자는 전쟁을 시작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멈출 명분이 있어서다. 그러나 만약 내년 대선 무렵 전황이 지금처럼 누구도 압도하지 못 하는 교착 상태라면 푸틴은 무난히 재집권할 것이다. 그를 둘러싼 건강 이상설, 쿠데타설 등은 확인 되지 않았거나 실현 가능성이 낮다. 우크라의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처럼 대통령이 탄핵될 가능성도 러시아에선 높지 않다고 본다.”
내년엔 미국도 대선(2024년 11월) 국면으로 접어든다.
“중요한 변수다. 역대 미 대통령 선거에서 주로 경제가 대선 결과를 좌우했는데, 만약 우크라가 미 대선 가까운 시점에 승리한다면 바이든 대통령이나 민주당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거다. ‘전세계에서 미국의 리더십과 위상 회복’이라는 바이든의 공약을 지킨 게 된다. 그러나 이대로 교착상태가 계속되는 상황이라면 예산·전쟁 물자 퍼주기 상황을 공화당 후보가 물고 늘어질 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든 다른 공화당 인사가 당선되면 우크라에 대한 지원은 대폭 축소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바이든 미 대통령의 우크라 수도 키이우 깜짝 방문의 효과는.
“러시아에 사전 통보하고 전쟁터로 들어간 것은 미국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당당함을 보여준 것이다. 전쟁 1주년이라는 중요한 분기점에 바이든 대통령이 위험을 무릅쓰고 키이우로 들어간 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을 단합시키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특히 나토 내에서도 머뭇거리고 있는 프랑스·독일에 적극 동참해 달라는 의사를 밝힌 것이라고 해석된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뉴스타트(New START·신전략무기감축협정)’ 중단을 선언했다. 전쟁이 미·러의 핵군축 문제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신냉전 양상이 뚜렷해지는 점은 우려할 만한 지점이다. 푸틴의 뉴스타트 중단 선언은 왕이(王毅)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위원이 모스크바를 방문하기 직전에 이뤄진 것이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3월 모스크바 방문을 협의하는 차원으로 보인다. 만약 시 주석의 방러가 성사되고, 중국이 러 측에 무기를 지원하기로 결정한다면 이번 전쟁은 완전한 신냉전 국면으로 전환될 거다. 미국·서방 대 중·러 구도로 확전되게 된다. 물론 현재 시점에서 중국이 서방의 경제 제재를 부를 수 있는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지켜볼 일이다.”
이달 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를 폭격해 최소 3명이 사망했다. AFP=연합뉴스

이달 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를 폭격해 최소 3명이 사망했다. AFP=연합뉴스

이번 전쟁으로 우크라가 유럽연합(EU)에 이어 나토에도 가입하게 될까.
“EU 가입과 나토 가입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 러시아도 우크라의 EU 가입은 나토만큼 반발하지 않았다. 경제 블록 차원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 집단 안보 체제인 나토는 다르다. 2008년 나토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와 조지아의 나토 가입 염원’이 언급됐지만, 프랑스와 독일이 반대해 못 들어갔다. 전쟁으로 이들의 입장이 바뀐 건 없다. 나토 국가들이 별도의 협정으로 우크라에 전후 안전보장을 해주는 간접 형태는 가능할 수 있겠다.”
우크라의 전후 재건 비용이 3490억 달러(약 45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산이 있었다. 
“결국 돈이 나올 곳은 미국, 유럽, 세계은행 등 서방 쪽이다. 우크라인들은 당장 전쟁으로 고통스럽겠지만, 전쟁이 어느 시점에서 마무리 되고 향후 10년 간 서방의 도움을 받아 재건하면 전쟁 전 경제를 뛰어넘는 규모가 될 수도 있다. 그간 우크라는 국제사회에서 부패지수가 높은 나라로 꼽혀 왔다. 전쟁을 계기로 정부가 투명화되고, 디지털화 같은 선진화를 앞당기게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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