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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와 사색] 소금창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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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0호 30면

소금창고
이문재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늦가을 평상에 앉아
바다로 가는 길의 끝에다
지그시 힘을 준다 시린 바람이
옛날 노래가 적힌 악보를 넘기고 있다
바다로 가는 길 따라가던 갈대 마른 꽃들
역광을 받아 한 번 더 피어 있다
눈부시다
소금창고가 있던 곳
오후 세시의 햇빛이 갯벌 위에 수은처럼 굴러다닌다
북북서진하는 기러기떼를 세어보는데
젖은 눈에서 눈물 떨어진다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다
『제국호텔』 (문학동네 2004)

어른들은 왜 툭하면 옛날이야기를 꺼내는 것일까? 어린 시절, 좀처럼 풀리지 않던 저의 궁금증이었습니다. 이제 조금씩 답을 알 것만도 같습니다. 어쩌면 간단합니다. 어제가 오늘보다 더 많아서 그런 것이겠지요. 내가 기억을 떠올리는 것인지 아니면 옛일들이 무작정 찾아와 내 앞에 드러눕는 것인지 구별도 쉽지 않습니다. 사라지는 것과 잊히는 것이 나의 의지가 아니었듯 떠오르고 다시 사무치는 일들 앞에서도 우리는 속절없습니다. 그렇다면 내일은 또 어떤 어제의 기억들이 불쑥 나를 찾아오게 될까요. 부디 마음으로 반길 수 있는 시간과 장면이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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