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입지… 명예로운 “하야”/대처 사임 배경과 영국 앞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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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주민세 도입… 국민지지 급강하/대 EC정책­미·영관계 등 변화
영국의 집권당인 보수당 당수선거 2차투표를 앞두고 22일 대처 총리가 돌연 후보등록 포기를 선언함으로써 「철의 여인」 11년 신화는 결국 막을 내리게 됐다.
그녀는 이날 당의 결속과 차기총선 승리라는 두가지 대의명분을 사퇴이유로 내세웠다.
이미 알려진대로 지난 20일에 있었던 1차투표에서 당수피선에 실패한 것이 이날 대처 총리가 출마포기를 결심케 된 가장 직접적 이유가 되고 있다.
1차투표에서 그녀는 도전자인 헤슬타인 전국방장관 보다 득표수에서는 크게 앞섰지만 당선에 필요한 만큼의 압도적 지지를 얻는데는 실패했다. 1차투표에서 당선에 실패할 경우 즉각 후보에서 물러날 것이라던 일부 관측과는 달리 그녀는 실패가 확인되기가 무섭게 『2차투표에 참가할 것』이라고 말해 마지막까지도 역시 「철의 여인」다운 면모를 과시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만40시간만에 그녀가 결심을 바꿔 대권경쟁에서 중도하차하게 된 것은 급속히 자신에게서 멀어져가고 있는 당내 여론을 더이상 무시하기가 어렵게 됐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1차투표에서 그녀를 지지했던 의원들이 급속히 헤슬타인쪽으로 등을 돌리고 있고,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기권했던 의원들이 2차투표에서는 헤슬타인에게 표를 몰아주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나오는 등 1차투표 이후 분위기가 그녀에게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또 설사 2차투표에서 그녀가 힘겹게 당선된다 하더라도 이는 당내 지도력이 땅에 떨어질대로 떨어진 상태에서 얻게되는 「상처뿐인 영광」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지적돼 왔다. 헤슬타인의 도전으로 손상된 그녀의 당내 권위는 1차투표에서의 당선실패로 더이상 회복이 어려울 만큼 결정적으로 금이 갔다는 지적이다.
그런 상태로 오는 91년 중반으로 예정된 총선때까지 당을 과연 끌고갈 수 있을지가 의문이며 설사 그렇게 된다하더라도 노동당에 참패할 것이 불보듯 뻔하다는게 대처 총리의 후보사퇴를 요구하는 당내외 여론의 주장이었다. 이렇듯 불리할대로 불리한 상황에서 그녀는 결국 「명예로운 퇴진」의 길을 택한 것이다.
이로써 지난 1일 대처 총리의 가장 충실한 측근 가운데 한명이었던 제프리 하우 부총리가 그녀의 대 유럽 정책에 반발,사표를 던짐으로써 시작된 영국 보수당의 내분도 대처 총리의 총리직 사퇴 결정의 주요인이 되고 있다.
결정적으로 그녀의 인기를 실추시킨 것은 자치세 도입. 엄청난 여론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현대판 인두세를 밀어붙여 보수당의 차기집권 가능성에 결정적인 재를 뿌렸다고 지역구를 걱정하는 보수당의원들은 대처를 비난해 왔다.
그러나 대처가 사임할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녀와 보수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바닥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최근에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 보수당의 인기는 역대 집권당중 최하로 떨어져 야당인 노동당에 15∼20%나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10%가 넘는 인플레와 2백만명을 헤아리는 실업자 등 심각한 경제난에다 주민세까지 가세,국민들의 지지가 급락한 것도 대처의 사임결심을 굳히게 했다.
그러나 대처의 2차투표 출마포기는 영국 집권당이 당수선거 1차투표에서 재선에 실패한 당수는 관례에 따라 2차투표 재출마를 하지 않았던 영국식 전통과 대처의 측근이 이번에 끈질기게 재출마 포기를 종용했던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원인이 되고 있다.
대처의 사임은 내달부터 준비작업이 본격화 되는 EC의 경제 및 정치통합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통합에 강력히 반발해온 그녀의 퇴진은 EC위원회와 프랑스·이탈리아 등 통합추진파의 두통거리가 제거됐음을 의미한다.
아울러 이번 영국 상황을 계기로 유럽 정치균형도 유동적으로 바뀔 전망이다.
이전까지 영국은 경제적으로는 이탈리아에도 밑돌았지만 대처 총리의 강력한 개성과 유럽에서의 미국 대변자 역할 등의 요인으로 정치적 발언권이 컸으나 앞으로는 영국의 EC내 지위저하가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강하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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