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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32억 날린 엿가락 육교...'아차사고' 악습은 언제 끊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신도림역 인근 도림보도육교가 붕괴돼 통제되고 있다. 뉴시스

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신도림역 인근 도림보도육교가 붕괴돼 통제되고 있다. 뉴시스

‘32억원.’
지난 1월 3일 엿가락처럼 휜 서울 영등포 도림보도육교 건설과 앞으로 부수는데 들어갈 총비용이다. 영등포구 한 해 세입(稅入) 2985억원의 ‘1.1%’에 해당하는 절대 적지 않은 예산이다. 2016년 7월 개통한 지 7년도 안 돼 이렇게 많은 세금을 날리게 됐다.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아직 정확한 붕괴 원인이 밝혀지진 않았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보행교로써 일반적이지 않은 ‘디자인’에 주목하고 있다. 도림보도육교는 길이 104.6m, 폭 2.5m로 도림천 위를 가로질러 설치됐다. 철강재를 삼각형으로 엮은 트러스 구조로 아치 형태다.

이 육교는 중간에 교각이 없다. 이 때문에 양 끝쪽 교량 받침이 상부 구조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결국 육교 전체가 견딜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교량 받침은 상부 구조물을 지지하는 중요 부품이다. 또 육교 등 다리 구조물은 기온이 떨어지면 수축하게 된다. 받침이 이런 온도 변화에 따라 수축과 이완을 하는 등 제기능을 했는지도 의문이다.


조성일 르네방재정책연구원장은 “새롭고 익숙하지 않은 설계나 재료·시공법 등에서 사고가 잘 발생한다”며 “교각을 없앤 트러스 아치 형태 구조물에 맞게 점검하고 관리해야 했다”고 말했다. 조 원장은 “육교 등 구조물이 기온이 떨어졌을 때 수축 등에 따라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이때 지자체는 점검하거나 통행을 제한하는 등 대응 매뉴얼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3일 서울 영등포구 도림동과 신도림역을 잇는 도림보도육교(폭 2.5m, 길이 104.6m) 가 내려앉아 통행이 금지됐다. 뉴스1

3일 서울 영등포구 도림동과 신도림역을 잇는 도림보도육교(폭 2.5m, 길이 104.6m) 가 내려앉아 통행이 금지됐다. 뉴스1

하지만 도림보도육교는 이런 대응 움직임이 없었던 것 같다. 교량 받침 이상 징후가 여러 차례 나타났지만, 점검은 제대로 하지 않았다. 전승관 영등포구의원(사회건설부위원장)이 확보한 영등포구 ‘2022년 하반기 3종 도로시설물 등 정기안전점검 용역 종합보고서’를 보면 (교량 받침 확인 결과) 겨울철에 수축 현상으로 구조물이 움직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도 도림육교는 안전등급 A등급을 받았다.

급기야 시민이 나섰지만 소용없었다. 지난해 12월31일과 올 1월2일 행정안전부 안전신문고에 ‘육교 외형에 변형이 있다. 안전이 우려된다’는 취지의 신고가 2차례 접수됐다. 이에 ‘눈’으로 확인하는 데 그쳤고 하루 뒤 육교는 엿가락처럼 휘어 못쓰게 됐다.

서울시는 뒤늦게 도림보도육교 처럼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구조물을 점검하기로 했다. 그동안 많이 봐 왔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방식이다. 이런 식의 대응으로 낭비된 세금은 천문학적이다. 이런 악습을 끊어내려면 담당 공무원 등 공사 책임자에게 낭비된 세금을 물어내게 하는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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