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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가 할 고민을 왜…단톡방 '몰래 퇴장법' 열 올리는 국회 [현장에서]

중앙일보

입력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카카오 판교아지트. [연합뉴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카카오 판교아지트. [연합뉴스]

‘시어머니 몰래 단톡방 나가는 법 없을까요?’ 눈을 씻고 보아도, 이것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발의 보도자료의 첫 문장이다. 지난달 김정호 의원(더불어민주)이 대표발의한 이른바 ‘나의 톡방 탈출을 알리지 마라 법’이다. 단톡방에서 ‘몰래 나가기’ 할 수 있는 기능을 카카오톡 같은 대형 메신저에 의무적으로 넣게 하고, 미이행 시 사업자에게 과태료 2000만원을 물린다는 내용이다.

‘카카오 요금 신고법’도 있다. 같은 당 고민정 의원이 지난해 12월 대표발의한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안이다. 현재 이동통신사(기간통신사업자)가 하듯, 카카오·네이버 같은 대형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부가통신사업자)도 요금·약관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의무적으로 신고하라는 내용. 정부가 보기에 요금이 불공정하면 보완 지시를 내릴 수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올라와 있는 두 법안의 공통 과녁은 카카오다. ‘너무 커진’ 카카오가 ‘너무 적은’ 규제를 받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지난해 10월 카카오 먹통 사건 이후 힘을 받았다. ‘이용자 보호’라는 선의도 담겼다. 김 의원 법안은 ‘카톡 감옥’에서 이용자를 빼 주려 하고, 고 의원 법안은 거대 IT 사업자의 불공정 행위를 방지하려 한다.

동력도 선의도 있는데, 날이 무디다. 익명을 요구한 한 IT업체 임원은 “단톡방 나가기 기능 넣을지는 카카오 기획자가 고민할 사안인데 이걸 국회가…”라며 말을 흐렸다. 법리 쟁점도 있다. ‘카카오 요금 신고법’에 대해 국회 과방위 검토 보고서는 “취지에 공감한다”면서도 “생성·소멸이 잦은 부가통신사업자를 공적 성격이 강한 기간통신과 동일하게 규제하는 것은 과도하다”, “해외 사업자에 대한 정부의 요금 간섭은 한미 FTA 위반 소지가 있다”, “그렇다고 국내 사업자만 규제한다면 역차별이 된다” 등의 의견을 담았다.

이 우려들은 부가통신사업자에 대한 규제법안 발의 때마다 나왔다. 김 의원이 지난 2021년 발의한 ‘사전 동의 없는 단톡 초대 금지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대해 국회 과방위는 “영업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 “실효성에 의문이 있다” 등을 지적했다. 법안은 과방위 문턱을 못 넘었다.

놀랍게도, 고·김 의원의 법안 모두 이 점을 고심한 흔적이 없다. 카카오를 때리는 ‘사이다’는 있지만, 입법 목적을 법리에 맞게 달성하려는 촘촘함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러한 지적이 나올 거라고, 시험 족보를 줬는데 안 풀고 온 격이다. “의원님들은 발의한 법안 통과 안 돼도 이름 알려 좋고, 통과되면 더 좋다”라는 업계의 쓴소리에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 10월 국회 과방위 종합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범수 카카오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이 카카오 장애에 대한 사과를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10월 국회 과방위 종합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범수 카카오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이 카카오 장애에 대한 사과를 하고 있다. [뉴시스]

카카오 사태로 중요성이 부각된 데이터센터에 대해서는, 건축 규제법안(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안)이 지난 1월 발의됐다. 일정 규모 이상 데이터센터를 지으려면 인근 상권·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내용. 대표발의한 박상혁(민주) 의원 지역구(경기 김포 을)에는 현재 데이터센터 건축 관련 분쟁이 있다. 의원실 측은 중앙일보에 “5층 규모 데이터센터가 아파트 단지 옆에 들어서니 주민들이 전자파 유해성을 불안해한다”라며 “쓰레기 소각장 등에 준하는 규제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법안의 목적인 ‘사회적 갈등 조정을 위한 의견 수렴’은 중요하다. 문제는 법안이 논의의 바탕이 돼야 할 과학적 근거, 즉 유해성의 판단 기준과 주체에 대해 침묵한다는 거다. 그저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라’다. 의원실 측은 “데이터센터의 전자파 유해성 입증이 안 되다 보니 의견을 청취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과학적 근거도, 합의된 기준도 없는 의견 수렴은 갈등 해결이 아니라 갈등 증폭이 될 공산이 크다. 사업장 건설은 재산권 행사인데, 근거는 없지만 타인 의견을 들으라면 누가 납득하겠나. 데이터센터 건축 허가를 담당하는 경기도 도시의 한 공무원은 “명확한 사유와 기준이 있으면 좋겠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카카오톡 사건은 초연결 사회와 플랫폼의 책임이라는 화두를 던졌고, 한편으로는 데이터센터 같은 인프라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기술의 구멍을 입법이 보완하는 건 지당하다. 문제는 격이다. 남이 해도 되는 일은 놔두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결하는 모습을 ‘격에 맞는다’라고 한다. 대한민국 IT 법안은 격에 맞게 발의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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