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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이재명 공약 '희토류·스마트팜'…쌍방울 대북사업 판박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쌍방울그룹이 2018년 12월 작성한 대북사업 청사진 ‘N프로젝트’가 지난해 대선 주자로 나섰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평화 안보' 분야 정책 공약과 ‘판박이’인 것으로 확인됐다.

해외 도피생활 중 태국에서 체포된 쌍방울 그룹의 실소유주 김성태 전 회장이 1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압송되고 있다.

해외 도피생활 중 태국에서 체포된 쌍방울 그룹의 실소유주 김성태 전 회장이 1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압송되고 있다.

5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수원지검 형사6부(부장 김영남)는 쌍방울그룹 계열사인 나노스가 2018년 12월 작성한 그룹 'N프로젝트' ‘북남협력제안서’, 2019년 5월 북측과 체결한 경제협력사업 합의서 등과 지난해 2월22일 더불어민주당이 공개한 ‘제20대 대통령선거 정책공약집’의 평화 안보 분야 항목이 상당 부분 겹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앞서 쌍방울그룹은 2018년 12월 ‘북남협력제안서’를 작성한 뒤 2019년 1월 북측과 광물자원 개발 사업 관련 협약을 맺고, 2019년 5월 ▶지하자원개발 ▶농축수산 협력 ▶관광지 및 도시개발 ▶철도 건설 관련 ▶자연에네르기 조성 ▶물류유통 등 6개 사업 분야에 대해 경제협력을 합의했다. 희토류 사업권에 국한됐던 1월 합의가 5월 경제협력 전반에 대한 합의로 확대된 것이다.

쌍방울그룹의 대북 사업은 20대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 대표의 대북 정책 공약과 흡사하다. 특히 '희토류 등 광물자원 개발'과 '스마트팜(스마트 농장)'은 정확히 겹치는 대목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 대표를 대선 주자로 내세운 민주당은 ‘4차 산업혁명 시대 남북협력으로 한반도 평화경제 체제를 수립하겠습니다’는 문구와 함께 평화번영 분야 7개 공약을 내걸었다. 공약집 344쪽을 보면 글로벌 공급망 남북협력 추진의 세부 항목으로 ▶희토류 등 광물자원 개발 관련 과학기술 교류, 남북 공동 사전조사 ▶지하자원 협력 남북 당국자 간 회담 재개 등이 명시돼 있다.

해당 공약은 쌍방울그룹 계열사인 나노스(현 SBW생명과학) 투자유치(IR) 자료에 담긴 내용과 닮았다. 나노스는 2019년 1월17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조선아태위)와 희토류 등 광물채굴 사업에 합의했다. 합의서엔 쌍방울그룹이 북측에 1월 중 200만달러, 2월 중 300만달러 등 총 500만달러를 이행보증 계약금으로 납부한다고 썼다. 아울러 대북제재가 해제되면 즉시 효력을 발휘하고, 사업을 개시하는 시점에 나노스가 북측에 1억달러를 지급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202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낸 대선공약집의 대북 정책. 대선 공약집 화면 캡처

202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낸 대선공약집의 대북 정책. 대선 공약집 화면 캡처

경기도·쌍방울 ‘스마트팜’, 대선 공약엔 ‘스마트 농장’

공약집엔 ‘스마트 농장 시범단지 조성 및 양묘장 및 양식장 현대화’라는 항목이 있다. 검찰은 이 사업이 경기도지사 시절 추진하다 불발된 ‘스마트팜’ 사업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2018년 10월 방북 당시 약속하고, 같은해 11월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가 이종혁 조선아태위 부위원장 등 북측 인사들에게 경기도농업기술원을 보여주며 소개한 정책이 바로 스마트팜 사업이라는 진술도 확보했다.

쌍방울그룹의 북남협력사업제안서와 경제협력 합의서엔 ‘협동농장 지원’, ‘농축수산 협력사업’ 등으로 표현돼 있다. 2018년 12월 작성된 ‘N프로젝트 사업 제안서’엔 단계적으로 협동농장에 미화 300만~500만달러를 지원하겠다고 했고, 2019년 5월 김성태 전 회장이 중국 단둥에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맺은 경제협력합의서엔 ‘농축수산 협력사업’으로 표기했다.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이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 등이 지난 2018년 11월15일 오후 경기도농업기술원을 방문해 첨단온실 등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경기도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이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 등이 지난 2018년 11월15일 오후 경기도농업기술원을 방문해 첨단온실 등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경기도

김 전 회장 측은 경기도가 북한에 부담해야 할 비용을 대신 책임졌다가 손실만 떠안은 ‘피해자’라고 읍소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의 최측근인 A씨는 최근 중앙일보와 만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 세상에 다 밝혀질 것”이라며 “회장님(김성태)은 경기도의 사업 제안을 받고 투자를 했다가 이득 없이 몽땅 빼앗겼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관광·철도·탄소중립 등 쌍방울 사업계획=이재명 대선공약

북한과 접경지의 도로,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개발, 호텔·리조트 등 관광지 개발 등도 대북 사업을 통한 재벌 도약을 꿈꾼 김 전 회장과 대권을 노린 이 대표의 공통 관심사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쌍방울그룹의 ‘자연 에네르기 조성사업’과 대선 공약 ‘한반도 탄소중립을 위한 남북 녹색협력’도 유사했다.

검찰은 쌍방울-경기도의 대북 사업 방향과 이 전 대표의 대선 정책 공약의 유사성을 ’쌍방울그룹의 대북송금=제3자뇌물’이라는 등식을 뒷받침하는 정황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검사 출신 변호사는 “대선 공약이 대북 사업에 대한 쌍방울 그룹의 구체적 기대를 이 대표가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정황 증거로 평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김 전 회장은 “‘이 지사(이재명)가 대통령이 되면 쌍방울도 대기업이 될 수 있다. 500만달러가 아니라 5000만달러라도 베팅해야 한다. (500만달러가) 5조, 10조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는 이 전 부지사의 말을 믿고 대북송금에 나섰다”는 취지로 검찰에 진술했다. 김 전 회장이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의 여파로 남북 관계가 경색되고 있다는 점을 걱정하면서도 이 전 부지사 등의 설득 때문에 이 대표의 대선 승리에 희망을 걸었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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