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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식량·강철로 돌아가는 세상…탈탄소 가능할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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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9호 20면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바츨라프 스밀 지음
강주헌 옮김
김영사

과거 수렵·채집 시대에는 한 가족을 부양하려면 숲·초지가 100㎢(서울 면적의 6분의 1) 넘게 필요했지만, 농업 시작 후에는 크게 줄었다. 16세기 유럽에서는 농경지 1㏊(0.01㎢)만으로 3명을 부양할 수 있었다.

식량 생산은 꾸준히 늘었다. 전 세계 영양부족 인구 비율은 1950년 65%에서 2000년에는 15%로 줄었다. 생산성 높은 품종을 도입하고 관개시설을 설치하고 비료를 넉넉히 뿌린 덕분이다. 그렇지만 80억 명을 먹여 살리는 현재의 농업은 농기계·농약 사용과 비닐하우스 난방에서 보듯이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 없이는 버틸 수 없게 됐다.

프랑스 남서부 해질녁 들판에 트랙터와 풍력 터빈이 보인다. 인류를 먹여 살리는 농업은 화석연료·비료·농약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프랑스 남서부 해질녁 들판에 트랙터와 풍력 터빈이 보인다. 인류를 먹여 살리는 농업은 화석연료·비료·농약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인구 증가와 산업 발달로 화석연료 사용은 1800년 이후 1500배 증가했다. 1인당 에너지 공급량도 1800년 0.05 기가줄(gigajoule)에서 2020년 34 기가줄로 680배 증가했다. 화석연료 소비는 온실가스 배출로 이어졌고, 인류는 기후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느라 골몰하고 있다. 2050년 탄소 배출을 제로로 줄이는 ‘탄소 중립’은 지상 과제가 됐다.

미래가 암울할수록 이 세상이 어떻게 진화해왔고, 어떻게 작동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궁금해진다. 현대인의 지식 획득 방식은 스캐너처럼 얕고 넓거나, 아니면 착암기처럼 좁고 깊어서 세상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다. 이 세상을 소개하는 ‘제품 설명서’ 같은 게 하나 있었으면 싶지만 있을 리가 없다.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원제 How the World Really Work)’라는 제목의 이 책이 그 역할을 맡겠다고 나섰다. 등산 지도의 거리 표시처럼 숫자 가득한 이 책은 인류를 위한 미래 안내서이면서, 정보 홍수 시대의 마지막 백과전서가 될 것도 같다.

이 책은 50여 년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방면에 걸쳐 40권의 책을 쓴 저자가 자신의 지식에 과학계의 연구 성과를 더해 인류 사회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총정리한 책이다. 에너지, 식량, 현대문명을 떠받치는 네 가지 물질(혹은 네 가지 기둥인 암모니아·강철·콘크리트·플라스틱), 세계화, 안전, 환경, 미래 등 7개 주제로 나눠 다루고 있다.

사람들은 미래를 전망할 때 어둡게만 보는 재앙론자이거나 밝은 면만 보려는 기술만능주의자이기 쉬운데, 저자는 철저히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치우치지 않고 얘기를 풀어가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모든 것을 의심하라’라는 데카르트 학파의 경구처럼 비판적으로 접근하면서 때로는 환경론자에게, 때로는 기술론자에게 일침을 가한다.

저자는 비닐하우스에서 토마토를 재배할 때 ㎏당 500㎖가 넘는 화석연료(디젤유)가 들어가고, 운송까지 포함하면 125g짜리 토마토 하나에 60~70㎖의 디젤유가 들어간다며 때로는 채식주의가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고 꼬집는다. 많은 이들이 유기농업을 주장하지만, 과거 농사법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비료 없는 유기농업으로는 인류 절반도 제대로 먹이지 못할 것이고, 투입할 노동량도 엄청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술만능주의자 주장대로라면 세계는 이미 원전으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한다. 원전 산업도 한국·중국·인도를 제외하면 장래가 밝지 않다고 했다. 미국에서 소형모듈 원전 얘기가 나온 게 1980년대인데 아직도 상업화되지 못했다.

저자는 특히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인류가 애를 쓰고는 있지만, 탄소 중립 목표가 과연 실현 가능한가 따지는 데 가장 신경 썼다. 우선 재생에너지를 확대해야 하는데, 태양광·풍력이 기상 조건에 따라 전력 생산이 달라지는 간헐성이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전 세계적으로 전체 최종에너지의 18%만 전력이 차지하고 있고, 전력 중에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독일 등 유럽에서 앞서가는 나라도 20~40%에 불과하다.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더라도 전력 저장장치를 확보해야 하고, 대규모 송전선 설치도 필요하다. 2040년에도 화석연료가 전 세계 1차 에너지 수요의 54%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2050년까지 10년 만에 0%로 낮출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또 연간 19억 톤이 새로 생산되는 강철을 비롯해 4가지 물질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5%를 차지하는데, 탈탄소를 위해 이들 물질로부터 가까운 장래에 벗어나는 게 가능하겠느냐고 묻는다. 재생에너지의 상징인 풍력 터빈도 사실은 강철·시멘트·플라스틱이 결합한 화석연료의 ‘화신(化身)’일 뿐이다. 한 마디로 2050년 세계 경제를 완전히 탈탄소로 한다는 시나리오는 비현실적이라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비관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장기 예측은 틀릴 수밖에 없고, 우리는 먼 미래에 대해 불가지론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전 지구적 문제에 정직하고 겸손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음식쓰레기 줄이기 등 우리가 하지 않는 것을 하나씩 찾아내 실천하며, 목표를 집요하게 추구한다면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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