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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법기술자의 자녀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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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경희 기자 중앙일보 P디렉터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난 이래도 아무 일이 없고 넌 그래도 아무 일이 없으니까.” 넷플릭스 드라마 ‘더글로리’에서 학교폭력 가해자 연진이가 주인공을 괴롭힌 이유다. 학폭에 아이의 힘만이 아니라 부모 배경까지 권력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사다.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던 정순신(57) 변호사는 아들의 고교 재학시절 학폭 문제가 불거지자 하루 만에 자진 사퇴했다. 그는 사과문에서 "부모로서 피해 회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려고 했지만 미흡한 점이 없었는지 다시 돌이켜 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학 처분을 막기 위해 사건을 대법원까지 가져가면서 1년 넘게 시간을 끌고, 아들이 가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도록 적극 개입했다는 사실이 판결문 등을 통해 알려졌다.

 강도 높은 학교폭력이 생활기록부에 남으면 수시전형으로 명문대에 진학하기 쉽지 않다. 강제 전학은 퇴학 다음으로 높은 징계다. 결국 그의 아들은 수능 100%로만 뽑는 정시로 서울대에 합격했다. 반면 피해자는 고등학교를 중퇴했다고 한다. 정씨가 임명직에서 즉각 사퇴하고도 후폭풍이 계속되는 이유다. 대입에서 수시 비중은 줄고 정시는 확대되는 추세다. 조국 전 장관 가족 등 사회지도층 입시 비리가 불거지면서 공정성이 최고의 가치로 떠올라서다. 그러나 이번 사례는 학교생활을 어떻게 하든 수능 성적만 보고 선발하는 게 과연 공정하고 교육적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tvN 드라마 ‘일타스캔들’의 장서진은 잘 나가는 로펌 변호사다. 아들이 살인 용의자로 긴급체포되자 수사 과정에서 경찰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만 집중 공격한다. 막상 아들에게는 “너는 입 다물고 있어”라며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그는 자식을 바른길로 이끌어야 하는 부모가 아닌, ‘법기술자’로 실력을 발휘한다. 씁쓸하지만 현실에서 더 극적으로 목격되는 장면이다.

 교육기본법 제 1장 제2조에선 교육의 목적을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이라 정의한다. 사회지도층으로 군림하는 법기술자들이 과정이 어떠하든 간판을 획득하는 게 교육의 목적인양 전력질주하는 건 꼴사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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