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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술값의 절반 넘는 세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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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현주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현주 증권부 기자

최현주 증권부 기자

고려 중기의 풍류객 이규보가 쓴 가전체 설화 『국선생전』엔 이화주·자주·파파주 등 수십 가지 술이 등장한다. 한국의 술 문화는 집에서 담근 가양주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빚는 사람의 솜씨에 따라 맛과 향이 달랐다.

술에 세금이 붙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부터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일본은 직접 술을 제조해 막대한 이익을 얻기 위해 1909년 최초의 ‘주세법’을 제정한다. 주종별(제조장별)로 설비·제조법·원료·수량 등 요건을 갖춰 면허를 받아야 술을 만들 수 있었다. 1916년 가양주 말살을 목표로 ‘주세령’을 반포했다.

‘자가용 술은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판매할 수 없다’ ‘자가용 술의 제조자가 사망했을 경우 상속인은 절대로 주류를 제조할 수 없다’ 등을 명시했다. 조항을 위반하면 2000원 이하 벌금을 물렸다. 당시 쌀 한 가마니(80㎏) 가격이 10원이었다. 1916년 36만 곳이었던 가양주 제조장은 1932년 1곳으로 줄었다. 대신 일본에서 들여온 ‘주정’이라 불리는 에탄올을 희석한 ‘일본식 청주’가 유통됐다.

대한민국 정부는 1949년 일본의 주세법을 이어받은 종량제 기반의 주세법을 제정했고 한국전쟁이 터지며 ‘양곡보호령’을 선포했다. 일본식 청주를 제외한 쌀로 빚은 모든 술은 불법이 됐다. 1967년 11월 과세체계도 종가세로 전환됐는데 술의 양이 아니라 종류에 따라 세금을 매겼다.

현재 국내 주세 제도는 여전히 일본이 만든 주세법이 기반이다. 소주를 비롯해 위스키·브랜디·리큐르 같은 증류주는 출고원가의 72%가 세금이다. 여기에 주세액의 30%를 교육세로, 10%를 부가가치세로 내야 한다. 제조원가가 500원인 소주 한 병의 출고가가 1111원이 되는 이유다. 세계 대부분 국가는 에탄올 함유 비율에 따라 세금을 매긴다. 같은 양이라도 도수가 높은 술일수록 세율이 높다.

정부가 4월부터 주세를 올린다. 소주와 함께 ‘서민술’로 불리는 맥주에 붙는 세금이 3.57% 오른다. 주류업계에서 출고가를 올릴 조짐을 보이자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세금 좀 올랐다고 주류 가격을 그만큼 올려야 하느냐”고 한다. 그런데 의문이다. 주세를 올릴 때 술값이 오를 것을 생각 못 했는지. “어쨌든 내 수익(세금)은 늘어야 하니 너희(주류업체) 수익을 줄여”라는 얘기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