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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아들 학폭' 대서특필 놓쳤다…정순신 부실 검증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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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됐다가 하루만에 임명이 취소된 정순신 변호사. 중앙포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됐다가 하루만에 임명이 취소된 정순신 변호사. 중앙포토

“저희도 원고(정모 군)을 선도하기 위해 노력을 했는데 사실 부모님께서 많이 막고 계신다. (…) 1차로 진술서를 썼는데 바로 부모님께 피드백을 받아서 그렇게 쓰면 안 된다고 해서 다시 교정을 받아온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 임명이 취소된 정순신(57) 변호사의 아들 정모(22)씨의 2018년 6월 학교폭력 사건 학교폭력지역대책위원회(‘대책위’) 회의록에 나오는 대목이다. 정씨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한 교사는 당시 대책위에서 “(정씨의) 부모님이 책임을 인정하는 것을 되게 두려워해서 2차 진술서 같은 경우는 부모님이 전부 코치해서 썼다”며 이처럼 증언했다. 2018년 3월 교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자치위’) 회의록에선 정 변호사와 아내가 “물리적으로 때린 것이 있으면 더 이상 변명할 여지가 없겠지만, 언어적 폭력이니 맥락이 중요할 것”이라며 아들을 변호하는 모습도 나왔다.

이같은 내용은 정씨가 2018년 7월 춘천지법에 제기한 징계 처분 취소 소송 판결문에 담겼다. 정씨는 2017년 5월부터 2018년 초까지 동급생 A군에게 “돼지 XX” “왜 인간이 밥 먹는 곳에 오냐”는 등 1년간 언어폭력을 일삼으며 괴롭혀 2018년 6월 대책위에서 강제전학 등 처분을 받았다. 정씨 측은 ‘A군의 주장이 과장돼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씨 측은 같은해 9월 항소했지만 기각됐고, 2019년 4월 대법원도 재차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 징계 처분이 확정됐다.

인사검증 라인 놓친 학폭 사건…“검증 부실” 책임론

여론이 들끓자 정 변호사는 지난 25일 사의를 표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같은 날 정 변호사의 임명을 취소했다. 대통령실과 경찰은 각각 “공직 후보자 자녀와 관련한 문제다 보니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 “사생활이어서 검증 과정에서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정씨 사건은 2018년 언론에서도 대서특필됐던 만큼 경찰 안팎에선 “검증이 부실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26일 서울 서대문구 국가수사본부 모습. 연합뉴스

26일 서울 서대문구 국가수사본부 모습. 연합뉴스

국수본부장은 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임용후보자 종합심사위원회 등의 검증을 거쳐 임명된다. 경찰 관계자는 “원서를 접수하면 서류 심사를 하고, 신체검사를 한 다음 인사 검증과 신원 조회를 거친다”며 “인사 검증은 검증 및 신원조회 자료를 심사위에 주면 심사위에서 평가를 해 추려내고 경찰청장에 보고한다”고 설명했다. 1차 검증 책임이 경찰에 있다는 취지다.

다만 고위공직자의 경우 통상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과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 검증도 거치는 만큼, 법무부와 대통령실에도 검증 실패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수본부장은 경찰청장 바로 아래 계급인 치안정감 자리다. 법무부는 그러나 이번에 낙마한 정 변호사의 인사 검증과 관련한 모든 질문에 “확인해 줄 수 없다”며 답을 피했다. 정 변호사가 인사정보관리단의 인사 검증 대상이 됐는지도 확인해줄 수 없다는 취지다.

남구준 전 국수본부장 임기가 26일 끝나면서 공석이 된 국수본부장 자리는 김병우 국수본 수사기획조정관이 대행을 맡는다. 경찰은 재공모 및 내부 선발 절차를 통해 차기 국수본부장을 선임하겠다는 계획이다. 외부 인사의 결격 사유를 걸러내지 못했던 만큼, 경찰 내부에선 우종수(55·치안정감) 경기남부경찰청장, 최주원(56·치안감) 경북경찰청장 등이 차기 국수본부장으로 거론된다.

한편 정 변호사의 임명이 취소되면서 그를 국수본부장에 추천했던 윤희근 경찰청장의 리더십에도 빨간 불이 켜지게 됐다. 경찰청의 한 간부는 “윤 청장이 가장 난처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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