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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기준금리 3.5% 동결, 물가·환율 관리 허점 없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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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은행이 최근 경기 둔화 흐름과 가팔랐던 금리 인상의 효과를 지켜보기 위해 1년 만에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의 한 은행에 걸린 금리 안내문. [뉴스1]

한국은행이 최근 경기 둔화 흐름과 가팔랐던 금리 인상의 효과를 지켜보기 위해 1년 만에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의 한 은행에 걸린 금리 안내문. [뉴스1]

금리 인상 기조 끝난 것 아니라지만

시장에 헛갈리는 신호 줄 우려 있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어제 열린 통화정책 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3.5%로 동결했다. 이로써 2021년 8월 이후 약 1년 반 동안 이어진 기준금리 인상 행진이 멈췄다. 이번 금리 동결은 일종의 ‘숨 고르기’라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해 4월 이후 매 금통위 회의마다 기준금리를 인상하다가 이번에 동결한 것은 어느 때보다 높은 불확실성을 고려한 결정”이라며 “이번 동결을 금리 인상 기조가 끝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차를 운전하는데 안개가 가득하면 세우고 안개가 사라질 때를 기다린 다음에 갈지, 말지 봐야 하지 않느냐”는 말도 덧붙였다.

한은 총재의 설명에서 금통위의 고민을 읽을 수 있다. 기준금리 동결이 자칫 시장에 혼란스러운 신호를 던져줄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금통위가 물가 관리보다 경기 침체 방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얘기다. 시장의 반응은 금리 인상 중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한은 총재의 설명과는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 등은 ‘이번 금리 동결로 사실상 긴축은 끝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지난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여전히 5.2%를 기록했다. 앞으로 1년간의 소비자 물가 전망을 보여주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다시 4% 선을 돌파했다. 아직 안심할 때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전기·가스·교통 등 공공요금의 인상도 서비스 요금 전반에 걸쳐 연쇄 효과를 낳고 있다.

그간 우리나라는 환율 상승과 자본 이탈, 물가 인상 같은 부작용을 고려해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을 힘겹게 따라갔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와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는 최고 1.25%포인트에 달한다. 22년 만에 가장 큰 차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 기조는 당분간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최근 공개한 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의사록에 따르면 Fed는 지속적인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오는 3월과 5월 기준금리를 연달아 0.25%포인트씩 올려 최종 고점을 5.25%까지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금리와 물가는 반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물가와 경기,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번 기준금리 동결로 정부와 금융당국의 물가 관리 의지가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 매주 일요일이면 경제부총리와 한은 총재 등 국내 경제·금융 분야 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 교환한다고 한다. 주요 기관의 수장 간 대화가 바람직한 모습이긴 하지만, 경제 운용의 대원칙이 경제 외적 요인으로 흔들려선 안 된다. 이번 기준금리 동결로 물가와 환율이 흔들리지 않도록 세심하게 챙길 것을 주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