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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총보다 강했다…전세계 사로잡은 젤렌스키 32초 연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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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어떤 세력도 물리칠 것입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이기 때문입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AFP=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AFP=연합뉴스

지난해 2월 24일 새벽, 우크라이나 국민은 러시아의 선전포고대로 시작된 공습에 두려움에 떨며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서른여덟 시간 뒤, 페이스북엔 32초 분량의 짧은 영상 한 편이 공유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었다. TV 프로듀서와 코미디언 출신인 젤렌스키가 이미 해외로 도피했을 거라는 소문과는 달리, 그는 정부 청사를 배경으로 스마트폰 카메라에 대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독립을 지켜낼 것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오는 24일 1년을 맞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 기간 우크라이나 국민뿐만 아니라 우크라를 침공한 러시아의 국민, 그리고 전 세계를 향해 100여 차례 연설을 했다.

전 세계인들은 이제 우크라이나를, 젤렌스키를 안다. 외신은 그가 자국민을 비롯해 전 세계로 보낸 메시지를 두고 “이 시대의 게티즈버그 연설” “젤렌스키의 연설은 푸틴의 총보다 강하다” “처칠(영국 전 총리)이 된 채플린(미국 코미디언)”이라고 극찬했다.

너희가 없으면 가스도 없다고? 너희 없이 살겠다. 너희가 없으면 빛도 없다고? 너희 없이 살겠다. 너희가 없으면 물도 없다고? 너희 없이 살겠다. 너희가 없으면 음식도 없다고? 너희 없이 살겠다.

추위, 배고픔, 어둠, 목마름조차 너희가 말하는 ‘우정과 형제애’만큼 무섭고 끔찍하지는 않다.

하지만 역사는 기어코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가스, 빛, 물, 음식을 가질 것이다… 그것도 너희 없이!

Without gas or without you? Without you. Without light or without you? Without you. Without water or without you? Without you. Without food or without you? Without you.

Cold, hunger, darkness and thirst are not as scary and deadly for us as your ‘friendship and brotherhood’.

But history will put everything in its place. And we will be with gas, light, water and food ... and WITHOUT you!

―지난해 9월 11일 텔레그램 연설.

이처럼 우크라이나 침공에 여론을 주목하게 한 젤렌스키의 연설에는 세 가지 매력이 있다. 뛰어난 수사법, 진정성 있는 메시지, 그리고 ‘공감’이다.

젤렌스키 연설문 19편을 실은 책 『우크라이나에서 온 메시지:젤렌스키 대통령 항전 연설문집』을 옮긴 박상현 번역가는 침공 초기 ‘내게 필요한 것은 탈 것이 아닌 탄약’이라는 젤렌스키의 수사적 표현이 강력한 호소력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특히 젤렌스키가 종종 전혀 다른 두 가지를 병치해서 그중 하나를 강조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반복을 통해 효과를 극대화한다고 봤다. 박상현 번역가는 “이런 수사적 장치의 효과적 활용은 연설 대상이 되는 청중과 언론이 그가 말하려는 주제를 어렵지 않게 파악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의 연설문 19편을 수록한 책 『우크라이나에서 온 메시지』. 교보문고 홈페이지 캡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의 연설문 19편을 수록한 책 『우크라이나에서 온 메시지』. 교보문고 홈페이지 캡처

젤렌스키가 던진 메시지의 내용 역시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젤렌스키는 같은 내용의 연설을 ‘재탕’하지 않는다. 대신 “청중을 연구하고 그 청중이 가진 문화적, 역사적 배경에서 현재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넣는다”고 역자는 분석했다. 실제 젤렌스키는 미국 의회 연설에선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연설과 진주만 공습을 언급하고, 독일 의회를 상대로 한 연설에선 나치 독일 시절 아픈 기억을 일깨우며, 진정성있고 절박한 마음을 담아 지원을 호소했다.

‘우리’라는 단어를 대통령인 자신과 국가, 국민을 동일시하는 표현으로 쓰는 것 또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결속하고, 이 전쟁을 바라보는 세계 시민들을 한마음으로 공감하게 만든 요인이다. 러시아 침공 후 처음 공개된 32초짜리 짧은 연설에서 그는 “우리는 강하다. 우리는 모든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우리는 그 어떤 세력도 물리칠 것”이라며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또 2019년 5월 대통령 취임사에서는 “우리 한 명 한 명이 대통령”이라며 “우크라이나를 건설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함께 져야 할 책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런 매력을 가진 젤렌스키의 연설이 보내는 메시지는 간결하고 명확하다. 젤렌스키는 전쟁이 6개월로 접어든 지난해 8월 우크라이나 독립기념일에 “우리는 이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지만, 이 전쟁은 우리가 끝내야 합니다.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합니까?”라며“과거에 우리는 그것을 ‘평화’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승리’라고 말합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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