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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되면 없애겠다" 없앨 곳 이름 까먹은 대선후보의 반전[BOOK]

중앙일보

입력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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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뇌
대니얼 샥터 지음
홍보람 옮김
인물과사상사

우리는 약속‧일‧대화는 물론 점심 메뉴 결정 같은 일상의 대부분을 기억 속 정보에 의존한다. 그런데 인간의 기억은 사실 그리 강하지 않아서, 까맣게 잊기도 하고 심지어 왜곡하기도 한다는 게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인 지은이의 지적이다.

40대 후반 남성 76명에게 고교 입학 첫해에 체벌을 받았는지를 묻고, 이들이 고교 1학년 때 했던 응답과 비교한 연구를 보자. 고교 1학년 때는 “그렇다”는 비율이 90%에 육박했는데, 40대 후반이 되자 33%로 줄었다.

코로나19 회복자 일부는 머릿속에 안개가 낀 듯 멍한 느낌이 계속되면서 기억력‧사고력‧집중력이 떨어지고 피로감‧우울증이 나타나는 ‘브레인 포그’를 겪는다. 12일짜리 파리 휴가 기억이 깡그리 사라진 경우도 있다.

지은이는 기억의 이런 불완전성이 사고가 아니라 일반적인 일이라며, 기억의 기본 오류를 7가지로 제시한다. 기억해야 할 것을 잊는 소멸‧정신없음‧막힘과, 기억의 오작동에 따른 오귀인(誤歸因)‧피암시성(被暗示性)‧편향‧지속성이 그것이다.

소멸은 시간이 지나며 기억이 희미해지는 걸 말한다. 1995년 전직 미식축구스타 O J 심프슨의 부인 살인혐의에 대한 무죄 평결은 격렬한 사회적 반향을 불렀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이 5개월 뒤 조사하니 응답자의 절반만 평결 내용을 기억했다. 3년이 흐르자 비율은 30%로 떨어졌다.

정신없음은 안경‧휴대전화를 둔 곳이나 점심 약속을 잊어버리는 등으로, 주의력 부족이 원인이다. 첼리스트 요요마는 250만 달러짜리 악기를 택시 트렁크에 두고 내린 적 있다. 복면 쓰는 걸 잊어 얼굴이 노출된 건 물론 총을 두고 나와 다시 집에 다녀온 뒤 범행에 나선 뉴질랜드 강도도 있다.

막힘은 사람 이름이나 명사를 떠올리지 못하는 등 기억 속에서 정보 찾기에 실패하는 경우다. 2011년 미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릭 페리 후보는 “당선하면 3개 부처를 없애겠다. 상무부, 교육부…”라며 45초간 끙끙거렸지만 ‘에너지부’를 떠올리지 못했다. 6년 뒤 에너지부 장관에 임명된 그는 “부처 이름도 까먹은 사람”이라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오귀인은 상상을 현실로 착각하거나, 신문에서 본 내용을 친구에게 들은 것으로 여기는 등의 기억 출처 오류다. ‘데자뷔(기시감)’도 포함된다. 2021년 나온 자료에 따르면 DNA 증거로 유죄 선고가 뒤집힌 사례 375건 중 69%가 목격자의 오귀인으로, 사람을 잘못 본 때문으로 나타났으니 보통 일이 아니다.

유도성 질문이나 암시 때문에 엉뚱한 기억이 주입되는 피암시성도 사회적 인식이나 판결에 문제를 부른다. 92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 인근에서 화물기가 엔진 고장으로 추락하자 언론은 이를 반복 보도했다. 10개월 뒤 심리학자들이 대학생 집단에 “텔레비전에서 비행기가 아파트와 충돌하는 영상을 보았습니까”라고 물었더니 55%가 봤다고 했지만, 사실 그런 영상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편향은 현재의 지식‧경험이 과거 기억에 영향을 미치는 것. 장기 기억과 평생 경험까지 왜곡될 수 있어 문제가 크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집권당은 과거를 의도적으로 수정해 국민을 심리적으로 지배한다. 지속성은 지우고 싶은 기억이나 걱정이 반복해서 떠오르는 것으로, 참전 군인들의 트라우마가 해당한다.

지은이는 이러한 기억 오류가 진화 과정에서 나타난 것으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잊을 건 잊고, 실수하지 않게 조심해 살라는 의미다. 원제 The Seven Sins of Memory Updated Edition: How the Mind Forgets and Remembers. 2001년(한국판은 2006년) 처음 나온 책을 새 연구에 맞춰 2021년 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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