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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서산 부석사→2심 日간논지...뒤바뀐 고려 불상 소유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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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10여년 전 한국 절도범들이 일본 쓰시마(對馬) 사찰에서 훔쳐 한국으로 반입했던 금동관음보살좌상(불상)을 돌려주라는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소유권이 서산 부석사에 있다고 판단한 1심을 뒤집은 선고다.

서산 부석사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금동관음보살좌상 인도 소송 항소심 선고공판이 열린 1일 대전고법 법정 앞에 일본 외신기자들이 방청권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신진호 기자

서산 부석사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금동관음보살좌상 인도 소송 항소심 선고공판이 열린 1일 대전고법 법정 앞에 일본 외신기자들이 방청권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신진호 기자

대전고법 민사1부(박선준 부장판사)는 1일 충남 서산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부석사가 국가(대한민국)를 상대로 낸 유체동산(불상) 인도 청구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극락전 복원 공사 당시 발견된 1938년 상량문 등에 따르면 부석사가 불상 소유권을 취득한 것은 인정된다”며 ’다만 원고(부석사)가 서주(서산의 고려시대 지명) 부석사와 동일한 권리주체라는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전고법 "서산 부석사, 서주 부석사 동일성 인정 못 해" 

대한불교 조계종의 확인, 조선 중기 이후 서선 부석사에 대한 자료, 상량문의 기재 만으로는 1330년대에 존재하던 서주 부석사와 서산 부석사의 동일성·연속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원고의 인도 청구를 기각하는 것과 별도로 피고(대한민국)는 문화재 보호를 위한 국제법적 이념, 문화재 환수에 관한 협약 취지 등을 고려해 불상 반환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전고법이 1일 금동관음보살좌상을 일본으로 돌려줘야 한다고 선고한 직후 서산 부석사 측 법률대리인이 상고하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신진호 기자

대전고법이 1일 금동관음보살좌상을 일본으로 돌려줘야 한다고 선고한 직후 서산 부석사 측 법률대리인이 상고하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신진호 기자

이어 “왜구가 이 불상을 약탈해 일본으로 불법 반출했다고 볼만한 상당한 정황이 있다”며 “다만 국제사법에 따라 피고보조참가인(觀音寺·관음사)이 법인으로 설립된 1953년 1월 16일 이후 20년간 해당 불상을 점유했기 때문에 소유권을 인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항소심 재판부가 1심 판결과 달리 불상을 돌려주라는 판단을 내리자 부석사와 신도들은 반발했다. 항소심 선고가 대법원까지 이어지면 현재 문화재연구소 수장고에 보관 중인 금동관음보살좌상은 일본 대마도 사찰로 돌아가게 된다.

부석사 "대한민국에 용기 있는 판사 없어" 

부석사 주지 원우 스님은 “재판부가 오랜 시간 심사숙고한 것으로 아는데 대한민국에 용기 있는 판사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며 “변호인 등과 논의해 법적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부석사 측 법률 대리인은 “판결문을 받아보고 심층 분석한 뒤 상고 이유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 절도사건 일지. [중앙포토]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 절도사건 일지. [중앙포토]

2012년 절도범들, 대마도에서 불상 등 훔쳐

앞서 2012년 10월 김모씨(당시 70세) 등 문화재 절도단 4명은 쓰시마 관음사(간논지)와 가이진신사(海神)에 침입, 관음보살좌상 등 불상 두 점을 국내로 들여왔다. 이 중 동조여래좌상은 2016년 반환됐다. 금동관음보살좌상은 높이 50.5㎝, 무게 38.6㎏으로 14세기 초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73년 일본에서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서산 부석사는 ‘1330년경 서주에 있는 사찰에 봉안하려고 이 불상을 제작했다’는 불상 결연문을 근거로 왜구에게 약탈당한 불상인 만큼 원소유자인 부석사로 돌려 달라고 요구하며 2016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2013년 1월 대전경찰청에서 일본 국보급 불상인 금동여래입상과 관음보살좌상을 훔쳐 우리나라로 들여온 뒤 몰래 내다 팔려 한 일당을 검거한 뒤 좌상을 공개했다. [중앙포토]

2013년 1월 대전경찰청에서 일본 국보급 불상인 금동여래입상과 관음보살좌상을 훔쳐 우리나라로 들여온 뒤 몰래 내다 팔려 한 일당을 검거한 뒤 좌상을 공개했다. [중앙포토]

2017년 1월 1심 재판부인 대전지법은 “불상을 원래 소유주로 알려진 부석사로 인도하라”며 원고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그동안 진행된 변론과 보관 중인 불상에 대한 현장검증 등을 통해 불상 소유권이 부석사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증여나 매매 등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도난·약탈 등의 방법으로 쓰시마로 운반된 뒤 봉안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2017년 1심 "부석사 소유 추정된다" 선고 

1심 선고 직후 일본 측은 외교라인을 통해 불상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등 한·일간 갈등 양상을 빚기도 했다. 스가 요시히데 당시 일본 관방장관은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극히 유감”이라고 항의했다. 한국 정부를 대신해 소송에 참여한 검찰도 1심 판결에 불복, 항소했다. 검찰은 항소장에서 “불상이 부석사 소유인지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속내는 일본과 마찰을 우려한 조치였다.

1심 재판이 종결된 뒤 항소심 선고가 이뤄지까지 6년 넘게 걸렸다. 그동안 재판부는 원고(부석사)와 피고(대한민국)는 물론 전문가, 일본 간논지 측 관계자들을 증인으로 불러 심리를 진행했다. 지난해 6월 15일 열린 재판에는 간논지 다나카 세쓰료 주지가 보조참가인으로 직접 법정에 출석했다.

지난해 6월 금동관음보살좌상 소유권을 놓고 조계종 부석사와 국가(대한민국)간 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일본 대마도 간논지 다나카 세쓰료 주지가 불상을 되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신진호 기자

지난해 6월 금동관음보살좌상 소유권을 놓고 조계종 부석사와 국가(대한민국)간 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일본 대마도 간논지 다나카 세쓰료 주지가 불상을 되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신진호 기자

다나카 주지는 “본건의 좌상(관음보살좌상)은 1953년 관음사가 설립된 뒤 선의를 가지고 공공연하게 보관하던 것”이라며 “좌상은 관음사뿐만 아니라 쓰시마와 나가사키 자산으로 도난당한 뒤 슬픔을 헤아릴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1527년쯤 일본인인 종간이 관음보살좌상을 쓰시마로 가져와 안치했고 절도 시점까지 보관했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소유권이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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