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관의 폴란드(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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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는 25일은 폴란드의 대통령 선거일이다. 요즘 한창 벌어지고 있는 선거전엔 모두 6명의 후보가 나섰다. 하지만 싸움다운 싸움은 바웬사와 마조비예츠키 사이에 벌어지고 있다.
이들은 폴란드 공산독재의 암울한 시대에 자유노조를 주도하며 민주화를 이룩한 영웅들이다. 바웬사는 선봉에서 민주화의 깃발을 든 지도자였고,마조비예츠키는 그의 곁에서 두뇌이자 이론가의 역할을 했다. 서로는 둘도 없는 동지였던 셈이다.
공산정권이 무너진 뒤 바웬사가 마조비예츠키를 자유 폴란드의 첫 총리로 지명한 것은 하나도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바로 그들이 지금은 서로 정적이 되어 정치생명을 걸고 싸우는 사이가 되었다.
바웬사는 마조비예츠키를 두고 『벼룩도 제대로 못 잡을 사람』이라고 혹평하고 있다. 그의 물렁한 지도력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마조비예츠키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바웬사는 세상의 소원은 뭐든지 다 들어주겠다는 수다쟁이고 마술사』라고 비아냥댄다.
이들 논쟁의 초점은 결국 『혼란이냐,안정이냐』로 압축되고 있다. 바웬사는 「보복정치」를 할 사람으로,그가 집권하면 과거의 권력자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며 그때는 세상이 시끄러워질 것이라고 마조비예츠키측은 주장한다. 지금 폴란드 하원의석의 65%는 아직 공산주의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 그 나라의 현실이다.
바웬사 진영은 지금의 폴란드 경제상황을 쟁점으로 내세운다. 극심한 인플레와 임금의 하락,내년이면 15%나 될 실업률 등은 마조비예츠키의 무능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웬사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모든 폴란드 국민들에게 20년 동안 1만달러씩 무이자로 빌려주어 새로운 사업을 할 수 있게 하겠다는 공약도 내놓고 있다.
선거의 향방은 아직 예측할 수 없다. 바웬사가 조금 앞서 있는 것도 같은데 마조비예츠키측은 『거북이와 토끼의 경주가 어떻게 끝났느냐』고 반문한다.
이런 선거풍경은 어디서 많이 듣고 본 일들 같다. 바웬사와 마조비예츠키,두 사람의 정치적 에너지를 모으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들도 권력 앞엔 별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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