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질서의 출발점에 선 유럽(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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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34개국 수뇌들이 오늘부터 유럽안보협력회의에서 새로운 유럽의 진로를 논의한다. 1년간의 격동 끝에 냉전질서를 청산하고 새 시대의 질서를 모색하기 위한 최초의 정상회담이라는 데서 역사적인 모임이다.
대립과 불신,끊임없는 군비경쟁에서 벗어나기 위해 72년 시작했던 이 회의는 당초 냉전체제 아래서 동서진영이 평화공존을 하기 위해 마련된 안전보장 장치였다. 2차대전 이후 설정된 정치적·지리적 현상을 고정하고 동서 군사동맹의 틀 안에서 공존한다는 원칙에서 출발한 협력체제였다.
그러나 지난 1년간 바르샤바동맹체제가 와해되고 독일이 통일되면서 이 협력체제는 새 질서에 따른 방향을 모색할 단계에 이르렀다. 그동안 유럽안보회의가 추구해온 안전보장,경제 및 기술협력,인권신장 및 자유로운 인적 왕래라는 면에서 보자면 지난 1년간의 변화는 고무적으로 발전해 왔다.
특히 안보협력회의에 앞서 체결될 유럽 재래식무기 감축조약은 두 군사동맹의 병력을 동일한 수준으로 줄이는 역사상에 가장 중요한 군축조약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두 블록은 더이상 적대세력이 아니며 무력사용을 하지 않는다는 상호 불가침선언에 서명하게 된다.
이번 안보회의는 전후 냉전체제의 두 주역이었던 미소의 군사적 양분체제가 후퇴하면서 경제력을 중심으로 지역 결속을 지향하는 새 유럽이 국제정치무대에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다시 확인했다는 데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 작업은 물론 쉽게 결실을 보기는 힘들겠지만 21세기로 나아가는 세계가 지향을 큰 줄기를 보여준 것은 틀림없다.
그 출발점이 유럽을 중심으로 한 다각적인 지역협력체제가 될 것은 물론이다. 그 중에서도 이번 변혁의 기폭제가 되었던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한 경제·기술협력이 중심과제가 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최근의 정치질서가 다원화되어 가는데 비해 경제적으로는 EC를 중심으로 한 유럽·미국·일본 등의 3원화 체제로 이행되어 가는 추세는 특히 우리가 주목할 점이다.
유럽의 변화가 어느 정도 시차는 있었지만 아시아에도 파급되고 있음을 우리는 이미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아 지역의 변화에서 확인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유럽에서는 이미 냉전질서는 와해되고 새 질서를 모색하는 단계에 들어선 데 비해 아시아에서는 이제 구질서의 와해과정에 들어가고 있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도 정치적 변화든 경제적 변화든 유럽의 움직임은 조만간 우리에게 그 영향이 파급돼 온다는 데서 우리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대응태세를 마련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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