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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40명 함께, 피의자 이재명 출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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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사건으로 검찰에 출석해 12시간 동안 조사를 받고 나왔다. 이 대표는 “결국 법정에서 진실이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직 야당 대표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은 건 처음이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10시30분쯤 성남지청 청사 앞에 도착했다. 박홍근 원내대표, 정청래·서영교·박찬대·고민정·장경태 최고위원과 조정식 사무총장, 김성환 정책위의장 등 민주당 지도부 및 의원 40여 명을 대동했다. 이어 600여 명의 지지자 앞에서 미리 준비한 2300자 입장문을 10여 분 읽었다.

그는 입장문에서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 헌정사 초유의 현장 그 자리에 서 있다. 오늘 이 자리는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말문을 뗐다. 그러면서 “오늘의 검찰 소환이 유례없는 탄압인 이유는 헌정 사상 최초의 야당 책임자 소환이라서가 아니다”며 “이미 수년간 수사해 무혐의로 처분된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서 없는 사건을 만드는, 없는 죄를 조작하는 사법 쿠데타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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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장 시절 두산건설·네이버 등 6개 기업으로부터 용도변경 등 부정한 청탁을 들어준 대가로 성남FC 축구단에 160여억원의 후원금을 모집했다는 검찰의 혐의(제3자 뇌물)도 성남시와 무관한 성남FC 차원의 광고 유치였다며 부인했다. “성남FC 직원이 광고를 유치하면 세금을 절감해 성남시, 성남시민에게 이익이 될 뿐이지 개인 주머니로 착복할 수 있는 구조가 전혀 아니다”며 “성남시의 적법한 행정과 성남FC 임직원의 정당한 광고 계약을 관계도 없는데 서로 엮어 부정한 행위처럼 만들고 있다”고 하면서다.

반면에 성남지청 형사3부(부장검사 유민종)는 성남시장의 인허가권을 이용해 두산(부지 용도변경), 네이버(제2사옥 신축 허가), 차병원(용도변경, 용적률 상향) 등 기업 측 현안 해결 대가로 별도 주식회사인 성남FC 후원금을 모집한 것으로 대가성이 있다고 본다.

검찰 “성남FC 후원은 대가성” 이재명 “미르재단과 달라” 

10일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출석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입장문 낭독 전 검지손가락을 입에 대며 “쫄았습니까”라고 한 시민에게 조용히 해달라는 손짓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0일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출석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입장문 낭독 전 검지손가락을 입에 대며 “쫄았습니까”라고 한 시민에게 조용히 해달라는 손짓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수사팀은 두산 측이 “사옥을 짓게 되면 성남FC 후원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성남시에 보낸 공문과 당시 두산건설 대표 진술 등 “증거를 충분히 확보해 대가성 입증을 자신한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또 성남시 인허가와 성남FC 후원금은 별개라는 주장과 달리 이 대표가 당시 최측근인 정진상(구속) 전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을 통해 후원금 모금을 주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곽선우 전 성남FC 대표로부터 “당시 이 시장이  ‘축구를 잘 아는 정진상 성남시 정책실장과 모든 걸 상의하고 결정하라’고 지시했다” “후원금 유치도 정 실장과 당시 마케팅 실장이 다 했다”는 진술도 확보한 상태다.

이 대표는 이에 대해 “성남시 세금으로 운영되는 성남FC를 어떻게 미르재단처럼 사유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라고 반박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가 주도한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기업이 후원하게 한 혐의로 ‘제3자 뇌물죄’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것과 성남FC의 경우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이재명이 성남시에 기업들을 유치해 세수를 확보하고 일자리를 만든 일이, 성남시민구단 직원들이 광고를 유치해 성남시민의 세금을 아낀 일이 과연 비난받을 일이냐”고도 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반면에 검찰은 이 대표가 “이게 문제라면 어느 지자체장이 기업을 유치하고 적극 행정을 하겠나”라고 주장하지만 명백한 특혜 거래라고 보고 있다. 다른 사례와 달리 ▶성남FC를 후원한 기업의 혜택이 사전 협의로 정해져 있었고, ▶이 대표가 시장일 때만 집중적으로 후원이 이뤄진 점 ▶기업들이 이후 더 이상 후원금을 안 낸 점 등을 근거로 일종의 특혜 거래 관계가 성립했다는 것이다.

검찰 안팎에선 160여억원 후원금 전부 대가관계가 인정돼 뇌물죄를 적용할 경우 구속영장 청구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검찰은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해서는 소환조사를 한 번으로 매듭짓고 구속영장 청구 여부 등을 검토해 결정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장외에서 장문의 입장문을 발표한 것과 달리 조사실에선 A4 6장 분량의 서면진술서를 제출한 뒤 검사의 질문에 “더 말할 게 없다”며 상세한 진술은 거부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조사 직전 “검찰은 이미 답을 정해 놓고 있어 진실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답정 기소’”라며 묵비권 행사를 예고하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사실상 진술을 거부하는 상황이다. 검찰에 출석하기 전에 카메라 앞에서 한 말이 훨씬 많다”며 “질문을 하면 ‘왜 의견을 묻냐’고 답하고, 실질적인 답변을 진술서로 갈음하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검찰의 기소를 예상하고 있는 이 대표로선 굳이 방어 논리를 드러내지 않고, 자체적인 법률 검토를 거친 제한적 답변으로 소환조사를 대신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수사 단계가 아닌 재판에서 혐의를 다투겠다는 의미다. 이 대표는 “내가 하는 모든 말이 재판의 증거로 쓰일 수 있다”며 지난달 5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도 취소하는 등 사법리스크에 대한 언급 자체를 회피해 왔다.

안호영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진술 거부는 사실이 아니다”며 “검찰에 제출한 진술서를 바탕으로 조사에 응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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