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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72% 반대에도 마크롱 칼 뺐다…정년 62세→64세 연금개혁 시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파리의 엘리제궁에서 일본과의 정상회담 앞두고 있다. AFP=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파리의 엘리제궁에서 일본과의 정상회담 앞두고 있다. AFP=연합뉴스

저출산·고령화로 연금 재정 위기에 놓인 프랑스가 ‘정년 연장’을 통한 연금 개혁에 나선다. 에마뉘엘 마크롱(45) 대통령이 집권 1기(2017~2022년)부터 드라이브를 걸어온 각종 개혁 공약 가운데 가장 논란의 정책이다. 현행 62세인 정년을 2027년까지 63세, 2030년까지 64세로 늘리는 등 연금 개시 시점을 늦춤으로써 재정은 더 확보하고, 수령자는 줄이는 게 골자다. 엘리자베스 보른 총리가 10일(현지시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연금 개혁안을 발표한다고 프랑스24 등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언론에 나온 개혁 초안에 따르면 1964년 이후 출생자는 지금보다 1년, 1968년 이후 출생자는 2년을 더 일하게 된다. 연금을 전액 받기 위한 근속 기간은 기존 42년에서 2035년까지 점진적으로 43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근무 기간을 늘리는 대신 최소 연금 상한액은 최저임금의 75%(월 1015유로·약 135만원)에서 85%인 월 1200유로(약 160만원)로 인상할 방침이다. 의료ㆍ교육 등 직군별로 42종에 달하는 복잡한 연금 체계의 통폐합, 평균 수급액이 높은 공공 부문 연금의 현실화 등도 포함될 수 있다.

프랑스의 연금 제도는 보험처럼 미리 납부하는 한국의 국민연금(부분 적립식)과 달리, 그해 근로자들이 은퇴자의 연금을 부담하는 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프랑스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85%(2021년)인 초고령 사회다. 합계 출산율은 2021년 기준 1.83명(프랑스 통계청)으로 계속 하락세다. 1990년대까지 프랑스의 현역 근로자 2.1명이 은퇴자 1명을 부양했지만, 2070년에는 1.2명이 1명을 부양해야 한다. 프랑스연금개혁위원회는 지난해 9월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이대로라면 5년 뒤인 2027년에만 연간 120억 유로(약 16조원) 가량 적자가 생기며, 적자폭은 25년 간 계속 확대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막심 스바이히 전 블룸버그통신 연구원은 워싱턴포스트(WP)에 “현재의 연금 시스템 하에선 베이비 부머 세대(1946년부터 1964년 중반 사이 출생)는 승자이고, 전세계에서 가장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프랑스 젊은 세대는 패자”라고 지적했다.

“마크롱 연금 개혁, 세대 간 분배 문제”

유가 인상에 항의하는 ‘노란 조끼’시위대가 2018년 12월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차량을 훼손하는 등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유가 인상에 항의하는 ‘노란 조끼’시위대가 2018년 12월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차량을 훼손하는 등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연금 개혁이 국가 부채 관리 뿐 아니라 세대 간 분배 문제와도 직결되면서 마크롱은 집권 1기 때부터 이것이 공정성의 문제임을 강조했다. 베이비 부머 세대가 아닌 첫 프랑스 대통령으로서 지난해 4월 재선 성공한 그는 올해 신년사에서도 “연금 개혁을 통해 우리 아이들에게 공정하고 견고한 사회 시스템을 물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달 TV인터뷰에서도 “연금 개혁은 반드시 필요한 개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높은 에너지 비용 등 물가 상승에 직면한 국내 여론은 부정적이다. 지난해 11월 기준 프랑스의 식료품 물가 상승률은 역대 최고치(12.2%)를 기록했다. 프랑스 지역 경제의 가늠자인 전국 3만 3000개 빵집이 줄폐업 위기에 놓이는 등 ‘바게트 위기’가 급부상했다. 프랑스의 여론조사 전문기관 엘라브가 뉴스채널 BFMTV의 의뢰로 이달 3~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72%는 정년 연장 등 연금 개혁안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62세를 유지해야 한다(47%)는 물론 더 낮아져야 한다(25%)도 적지 않아 찬성하는 응답은 27%에 그쳤다. 폴리티스·이포프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58%가 반대했고, 외려 정년을 62세→60세로 낮추는 안에 68%가 찬성했다.

프랑스민주노동연합(CFDT)을 비롯한 5대 노조·사회단체는 총파업 및 시위를 예고했다. 지난 달 성명서를 내고 “정부는 향후 사회 분쟁에 대한 모든 책임을 떠맡게 될 것”이라며 “행동에 나서겠다”고 했다. 로랑 베르제 CFDT 위원장은 8일까지 “정부와 합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개혁 앞세운 젊은 대통령 옭아맨 해묵은 과제 

앞서 마크롱 1기 때도 지난 2018년 유류세 인상을 계기로 촉발된 ‘노란조끼 시위’ 이후 철도·교육·의료 등 공공부문 노조가 연금 개혁 반대 등을 내세우며 실력 행사에 나섰다. 2019년 12월부터 고속철도(TGV) 등 공공 부문의 연쇄 파업이 세 달 가까이 이어지며 역대 최장을 기록했다. 2020년 3월 정부가 코로나19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며 연금 개혁 논의는 전면 중단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파리 근교의 코르베유에손시 종합 병원에서 의료부문 근로자들을 앞에 두고 새해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파리 근교의 코르베유에손시 종합 병원에서 의료부문 근로자들을 앞에 두고 새해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 의석(전체 577석 가운데 289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정부안의 의회 통과도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프랑스는 정부 입법안을 의회 표결 없이 통과시키는 헌법 49조 3항(일명 ‘49.3조’)을 두고 있어 정부 차원에서 밀어붙일 수도 있다. 이 경우 의회는 정부 불신임 투표를 요청할 수 있다. 더 타임스는 “불신임 투표가 통과되면 마크롱은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새 총리와 일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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