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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정년 연장 논의 더 이상 늦출 수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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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조영태 서울대교수·인구학

조영태 서울대교수·인구학

프랑스 파리의 상징 에펠 타워는 현재 휴장 중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예방하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휴장의 이유다. 그런데 에펠 타워는 코로나가 전파되기 전인 작년 12월에도 문을 닫고 있었다. 이유가 뭐였을까. 마크롱 정부가 낸 정년 및 연금 개혁안(현행 62세를 64세로 올리려는)에 반대하여 대규모 시위가 한 달 내내 계속 되었기 때문이다. 올해 초, 격해진 노동계의 반발에 못이긴 프랑스 정부는 조건부로 정년 연장 계획을 접었고, 연금 재정 전망은 더 어두워졌다. 이처럼 정년을 연장하고 연금제도를 바꾸는 일은 매우 어렵다. 아무리 당위성이 높아도 관련된 조직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당장 연금을 받아야할 인구가 많으면 개혁은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정년연장이 선택 아닌 필수라면 #하루빨리 논의 시작해 결론을 #언제, 얼마나 연장될지 알아야 #국민과 기업이 대비할 수 있어

지난 해 6월,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생산가능인구가 빠르게 줄어들기 때문에 정년 연장을 집중 논의하겠다고 발표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 문제도 있었겠지만, 연금제도 유지 문제도 고려했을 것이다. 2018년 정부가 추계하여 발표한 국민연금 장기재정 전망은 기금 소진 시기를 2057년이라고는 하였지만, 이미 정부 관계자들은 이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작년 9월 국회예산정책처는 3년 앞당겨진 2054년 적립금이 고갈되고 2040년부터는 재정수지 적자가 시작될 것으로 전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2040년부터 적자가 시작된다는 이야기는 그 때부터는 국민연금에 내는 돈은 쌓이지 않고 바로바로 소진되어 없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내는 기여분이 기금을 운용 할 만큼 적립되지도 않고 사라지는 상황을 아는 국민들에게 연금제도에 대한 신뢰를 간청하긴 어렵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은 연금이 고갈되면 세금으로 충당할 수 있다고 한다. 생산가능인구 감소의 의미는 연금뿐만 아니라 세금을 내 줄 인구도 함께 줄어든다는 의미이니, 믿음이 가지 않는다. 홍남기 부총리의 정년 연장 발언은 각계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받았고 그 후 동력을 받지 못해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런데 논의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더 커진다. 그저께 통계청은 3월까지의 인구동향을 발표했는데, 예상대로 출생아 수는 전년도에 비해 더 줄었다. 앞으로 출생아 수는 크게 반등하기 어렵다. 반면 수명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외국인 근로자에게 국민연금이나 국민건강보험 재정 기여를 기대할 수도 없다. 국민연금은 물론이고 공무원, 사학 등 모든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이 지금의 예측보다 더 악화될 것은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각종 연금 재정 상황이 근본적으로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은 연금에 기여하는 기간을 늘리고 받는 기간을 줄이는 것일 텐데, 기여하는 기간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은 정년 연장 이외에 뚜렷한 것이 없다. 물론 기업 입장에서 정년 연장은 감당하기 매우 힘든 부담이다. 근로자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직장이 좋아서 다니는 것이라면 모를까 나이가 60을 넘어가며 노화는 확실한데 회사와 후배들에게 눈칫밥 먹어가며 그들과 경쟁해야 하는 게 달가울 리 없다. 청년은 그렇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일자리가 부족한데 많은 윗세대가 여전히 앉아 있어 내 차례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열심히 일하고 싶은 의욕이 저하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년은 연장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연령 구조가 그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역삼각형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년이 현재처럼 유지된다고 근로자, 기업, 그리고 청년들의 상황이 좋아질 수 없다. 게다가 연금제도가 무너지게 되면 국가의 미래도 나의 미래도 위협받는다. 정년 연장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면, 하루 빨리 논의하고 결론을 내어 주는 선택이 오히려 국민들과 기업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언제부터 정년이 몇 살로 연장이 될 것인지를 알려준다면, 국민들과 기업은 그것에 맞춰 미래를 조정하고 설계할 길을 찾는 시간을 벌 수 있다. 지금처럼 논의조차 반대한다면 국민 개개인과 기업의 미래는 더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혹자는 생산인구 감소 문제는 4차 산업혁명이 어느 정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그렇게 되면 정년 연장과 같은 제도적 측면으로 연금 문제가 해결되기 보다는 생산성 향상으로 가능 할 것으로 본다는 입장이다. 필자 역시 공감하고 그렇게 되길 희망한다. 문제는 그 시점이 언제고 얼마나 해결해 줄 수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은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일인데 오히려 불확실한 것을 준거로 삼을 수는 없다. 정년 연장과 연금 개혁의 길은 원래부터 고난이고 지난(持難)하다. 모든 이해관계자의 희생도 요구된다. 우리보다 훨씬 안정적인 인구구조를 가진 프랑스도 저렇게 난리다. 당장 힘들다고 논의조차 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우리나라는 프랑스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사회적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마침 21대 국회가 시작되니 그들의 성찰을 기대해 본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