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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만은 허락치 않은 기적...'아름다운 패자' 모로코 빛났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모로코 축구팬들이 15일 열린 카타르월드컵 프랑스와의 4강전 도중 열광하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모로코 축구팬들이 15일 열린 카타르월드컵 프랑스와의 4강전 도중 열광하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가장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를 만든 모로코의 자랑스러운 싸움이 끝났다.”

AP통신은 15일(한국시간) 프랑스의 2-0 승리로 끝난 카타르월드컵 4강전을 이렇게 서술했다. 비록 패했지만, 이번 대회에서 오뚝이 드라마를 써낸 모로코 축구를 재평가하면서였다.

표현 그대로 자랑스러운 싸움이었다. 조별리그 통과조차 장담할 수 없던 나라가 결승행 문턱까지 다다랐기 때문이다.

모로코는 이번 대회에서 크로아티아, 벨기에, 캐나다와 함께 F조로 속했다. 험난한 조편성이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2위 벨기에와 12위 크로아티아가 22위 모로코와 41위 캐나다를 눌러 앉히고 16강으로 향하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모로코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조별리그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크로아티아와 0-0으로 비기더니 벨기에를 2-0으로 잡는 이변을 일으켰고, 캐나다마저 2-1로 이겨 16강 진출을 확정했다.

토너먼트에선 상승세가 더욱 매서웠다. 연장까지 0-0으로 팽팽하게 맞선 스페인을 승부차기에서 꺾었고, 8강에선 역시 우승후보 포르투갈을 1-0으로 제압했다.

모로코 축구팬들이 15일 카타르월드컵 4강전이 끝난 뒤 독일 베를린에서 폭죽을 터뜨리고 있다. AP=연합뉴스

모로코 축구팬들이 15일 카타르월드컵 4강전이 끝난 뒤 독일 베를린에서 폭죽을 터뜨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렇게 모로코가 아프리카 나라 최초로 준결승 무대까지 오르자 유럽 각지로 퍼져있는 이민자들이 가장 먼저 거리로 뛰어나왔다. 이주노동자 그리고 이방인이라는 설움을 안고 있던 이들은 조국이 월드컵 4강행을 확정하는 순간 유럽 대도시에서 광란의 파티를 벌였다.

역사적인 의미도 추가됐다. 토너먼트에서 맞붙은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침략의 역사라는 아픔을 안긴 식민지배국이다. 최대 도시인 카사블랑카는 16세기 포르투갈이 무역 거점으로 삼기 위해 만든 곳이고, 이후 외세의 침략이 계속되던 가운데 스페인은 1860년 불평등조약을 통해 아예 모로코의 나라 지배권을 빼앗기도 했다.

프랑스와의 4강전을 앞두고는 그 열기가 더욱 고조됐다. 프랑스 역시 20세기 초반 모로코를 점령 통치한 식민본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러한 아픔의 역사는 모로코 축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 원동력이기도 했다. 바로 귀화선수다. 모로코는 이번 대회 참가국 중 가장 많은 14명의 귀화선수를 보유했다. 최종엔트리가 26인이 절반 이상이 이중국적자인 셈이다. 대부분은 식민지 시절부터 유럽과 북미로 이주한 조상의 후손들로 이들은 부모 혹은 조부모의 혈통을 따라 모로코 국기를 달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모로코와 프랑스 선수들이 15일 카타르월드컵 4강전에서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 신화통신=연합뉴스

모로코와 프랑스 선수들이 15일 카타르월드컵 4강전에서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 신화통신=연합뉴스

이처럼 역사적인 의의를 깊어지자 국가 차원의 지원도 이어졌다. 영국 BBC는 “모로코축구연맹이 4강전을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을 위해 1만3000장의 무료 티켓을 준비했다. 또, 30여 편의 추가 항공편도 제공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FIFA 그리고 대회 조직위원회와 협력해 얻어낸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카타르 정부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대다수 항공기 운항을 차단하면서 수많은 팬들이 발을 동동 굴려야 했다. BBC는 “항공사는 사과했고, 이미 비행편과 호텔을 예약한 승객에게 배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상황을 전했다.

이처럼 그라운드 안팎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낸 모로코. 비록 결승행 드라마는 완성하지 못했지만, 도전 자체만으로 박수 받아 마땅한 여정이었다. 모로코를 이끄는 왈리드라크라키 감독은 “우리 선수들은 모든 것을 바쳤다. 기적만으로 월드컵 우승은 이뤄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앞으로 계속해서 노력하겠다. 그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고 다음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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