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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족 71명 "장수 만세"… 충남 서산 홍옥순 할머니 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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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매 주말이 명절이라는 홍옥순 할머니(왼쪽에서 둘째) 가족. 아들.손자.며느리에 증손.고손까지 5대가 충남 서산시 해미면 전원주택에 모여 가족애를 다진다. [서산=김태성 기자]

"하은아, 할미한테 와봐."

18일 오후 충남 서산시 해미면 홍옥순(92)할머니 집. 7개월 된 하은이를 안으려고 고조할머니 홍씨와 증조할머니 김안순(68)씨, 할머니 조광숙(47)씨가 모두 팔을 뻗는다. 홍씨 가족은 요즘 보기 드문 '5대 가족'. 모두 71명에 이른다. 홍 할머니와 아들 선광채(74).김안순씨 부부는 서산에, 손자 선권수(47).조광숙씨 부부는 지난해 결혼한 증손자 선진국(26).황햇님(26)씨 가족과 함께 서울 신림동에, 이렇게 떨어져 살고 있지만 주말마다 서산의 '가족 아지트'에서 만난다. 매 주말과 모든 '빨간 날'은 5대가 모이는 가족 모임의 날이다.

그래서 홍씨 가족은 19일 대한의사협회와 한국노바티스가 '대대손손 건강하고 행복하게'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마련한 '5대 가족 한마당'행사에서 '사이좋은 5대 가족상'을 받았다. 대한의사협회.한국노바티스는 8월 20일부터 두 달여 동안'5대 가족 찾기'캠페인을 벌였다. 그 결과 1세대부터 5세대까지 세대당 한 명 이상 생존해 있는 가족은 모두 26가족이었다.

"7년 전만 해도 모두 35평 아파트에 같이 살았어요. 저희 부부가 한방 쓰고, 부모님이 한방 쓰시고, 할머니가 딸 데리고 한방 쓰시면 방이 안 남죠. 그래서 아들은 거실에서 생활했는데,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고나니까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1남1녀를 두고 있는 3세대 선권수씨의 설명이다. 당시에도 아파트 방 한 칸 늘리는 데 1억원은 있어야 했다. 30대부터 '나이 들면 전원생활을 하겠다'고 꿈꿔왔던 선씨는 아예 그 돈으로 농촌에 땅을 사기로 결정했다. 일단 1, 2세대 어른들이 먼저 내려가신 뒤 3세대 선씨도 퇴직하는 대로 시골생활에 합류한다는 계획이다. 할 일 없는 도시생활을 심심해 하시던 부모님도 반가워하셨다. 고향은 전북 고창이지만, 새 터전은 서울에서 오가기 쉬운 서산으로 정했다. 그림 같은 뾰족 지붕 이층 목조집도 선씨가 직접 인부들을 지휘해가며 지었다. 시골로 내려온 2세대 선광채.김안순씨 부부는 밭일 재미에 흠뻑 빠져 산다. 텃밭에 배추.무.시금치.고추.마늘.도라지.부추.파.머위 등을 심고 4남1녀 자식들에게 무공해 채소를 먹인다는 보람에 건강도 더 좋아졌다. 소.흑염소.토끼.개 등 가축도 키운다.

자녀들도 내려오면 농사일에 매달린다. 낮에 밭에서 야채 뽑고, 고구마 캐고, 부추 포기 나누며 일한 뒤에 저녁에는 마당에서 바비큐를 해 먹는다. 5대가 한 집에서 자는 토요일 밤은 세대가 엉켜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바쁘다. 가족 모임에는 지난 7년 동안 따로 휴가 한번 안 갔을 정도로 재미난 일이 넘쳐났다. "토요일이면 '아, 오늘 애들이 오겠구나'란 생각에 아침부터 설레지." 김안순씨는 "마을 사람들이 우리 애들 같은 자식들은 처음 봤다고 부러워한다"며 흐뭇해 했다.

1년에 한두 번 명절날 가족들이 모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니 '명절 증후군'이니 하며 말이 많은 시대에 1년에 60번을 모이고도 '잡음'없는 비결은 뭘까.

3세대 며느리 조광숙씨는 "시어머니가 '싫은 소리'를 안 하시는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못마땅한 일엔 내색 않고, 작은 칭찬거리도 놓치지 않고. 평생을 그렇게 사신단다. 지난해 며느리를 맞은 조씨는 "시집살이를 안 해봐서 시집살이를 시킬 수도 없다"며 웃었다.

4세대 선진국씨는 "자주 만나는 게 화목한 비결"이라며 "가족들이 자꾸자꾸 만나 부대끼다 보면 서로 더 애틋해지고 유대감도 더 강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가족 모임엔 선권수씨의 여동생 미경(41)씨와 권일(39)씨도 가족들과 함께 참석했다. 초.중학생 아이들 넷이 집 안팎을 뛰어다니며 노는 모습이 분위기를 더욱 흥겹게 한다. 간단하게 가족회의도 했다. 다음 주말에 담그기로 한 김장이 주제다. 자그마치 500포기. 그래도 걱정 없다. 속이 꽉 찬 무공해 배추는 텃밭에서 싱싱하게 자라고 있고, 다음주에도 모두 다 내려올 수 있다니 배추 나르고 씻고 양념 버무리는 일쯤이야 '축제'처럼 해치울 게 분명하다.

서산=이지영 기자<jylee@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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