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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신 세네갈 택한 이민자 소년, 20년 만의 16강 진출 이끌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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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전 결승골을 터뜨린 세네갈 주장 쿨리발리. AFP=연합뉴스

에콰도르전 결승골을 터뜨린 세네갈 주장 쿨리발리. AFP=연합뉴스

아프리카의 복병 세네갈이 극적으로 2022 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에 진출했다.

세네갈은 30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조별리그 A조 3차전에서 에콰도르를 2-1로 눌렀다. 세네갈(승점 6)은 2승1패를 기록하며 조 2위로 16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세네갈은 8강까지 올랐던 2002 한·일월드컵 이후 20년 만에 16강 무대를 밟았다. A조 1위는 2승1무의 네덜란드(승점 7)가 차지했다. 에콰도르(승점 4·1승1무1패)로 3위에 그쳐 2006년 독일 대회 이후 16년 만의 16강 진출 꿈이 무산됐다. 개최국 카타르(승점 0)는 3패로 월드컵 개최국 사상 처음으로 승점 1도 얻지 못하고 쓸쓸하게 퇴장했다.

1차전 네덜란드에 0-2로 패했던 세네갈은 2차전에서 개최국 카타르를 3-1로 꺾으며 반등했다. 이때까지도 세네갈이 16강에 오를 거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반드시 승리해야 16강에 오를 수 있었던 세네갈은 에콰도르를 상대로 투혼을 발휘하며 반전 드라마를 썼다. 세네갈의 16강행을 이끈 주역은 주장이자, 중앙 수비수인 칼리두 쿨리발리(31·첼시)다.

득점 후 동료들과 합동 골 세리머니를 펼치는 쿨리발리(오른쪽). AFP=연합뉴스

득점 후 동료들과 합동 골 세리머니를 펼치는 쿨리발리(오른쪽). AFP=연합뉴스

1-1로 맞선 후반 25분, 세네갈 이드리사 게예가 페널티 아크 밖 20m 지점에서 페널티박스 중앙으로 프리킥을 올렸다. 양 팀의 경합 중에 공이 오른쪽으로 흘러나오자, 쿨리발리는 침착하게 오른발 인사이드 킥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쿨리발리는 한국 대표팀 주축 수비수 김민재의 나폴리(이탈리아) 전임자로 한국 팬들에게 알려졌다. 쿨리발리가 첼시(잉글랜드)로 이적한 빈자리를 김민재가 메웠다. 대체자로 김민재는 현재 쿨리발리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네갈의 16강 진출은 쿨리발리에게 의미가 남다르다. 그는 프랑스에서 태생이다. 어린 시절 축구를 시작한 그는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프랑스 20세 이하 대표팀에서도 뛰었다. 워낙 실력이 출중해 프랑스 성인 대표팀 발탁도 유력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 우승 당시 프랑스의 주축 멤버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쿨리발리는 2015년 프랑스 국적을 포기했다. 대신 세네갈 대표팀에 합류했다. 많은 동료가 "프랑스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데, 대체 왜"라고 물었다.

쿨리발리는 카타르월드컵이 개막 전 스포츠선수 기고전문매체인 더 플레이어스 트리뷴을 통해 그 이유를 밝혔다. 쿨리발리의 아버지는 프랑스 이민 자금을 모으고자 5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세네갈의 방직 공장에서 일했다. 2015년 아버지에게 영상 통화로 "세네갈 대표팀에서 뛰겠다"고 말했을 때, 쿨리발리는 아버지의 반짝이는 눈을 봤다고 했다. 쿨리발리는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싶었다. 그는 "쉼 없이 일한 아버지 덕에 나는 부모 세대보다 훨씬 편안한 삶을 살았다"고 떠올렸다. 쿨리발리는 "여전히 '왜 세네갈 대표팀을 택했나. 프랑스 대표로 뛰었다면 월드컵 우승 멤버가 됐을 텐데'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고 밝혔다.

세네갈은 20년 만에 월드컵 16강에 진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세네갈은 20년 만에 월드컵 16강에 진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쿨리발리는 "세네갈을 택한 걸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대신 쿨리발리는 올해 2월 열린 2021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시세 감독과 함께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세네갈은 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이집트를 4-2로 꺾고 우승했다. 그는 "결승전 승부차기 첫 키커가 나였고 성공했다.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우리에게는 프랑스, 독일, 브라질의 월드컵만큼이나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떠올렸다. 세네갈 정부는 축구 대표팀이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첫 우승을 거두자, 다음날을 공휴일로 선포하고 화려한 카퍼레이드를 열었다.

쿨리발리는 "모두가 역사를 바꿀 펜을 쥐고 있다"는 말을 자주 한다. 7년 전, 쿨리발리에게 '세네갈 대표팀 합류'를 제의한 알리우 시세 세네갈 대표팀 감독의 좌우명이다. 쿨리발리는 이제 새 역사에 도전한다. 4년 전 처음 세네갈 유니폼을 입고 출전한 러시아월드컵에선 일본에 페어플레이 포인트에서 밀려 아쉽게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한편 쿨리발리는 이날 주장 완장에 '19'를 새겼다. 세네갈의 축구 영웅 파프 부바 디오프의 사망 2주기라서다. 디오프는 2020년 11월 29일 신경계 관련 희소병인 '샤르코마리투스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19번은 디오프가 생전에 달았던 번호다. 디오프는 한·일월드컵 최대 이변으로 꼽히는 개막전에서 전 대회 우승팀 프랑스를 상대로 결승골을 넣었다. 당시 세네갈은 프랑스를 1-0으로 꺾었다. 이번 월드컵에 출전하며 세네갈 대표팀은 '어게인 2002'를 외쳤다. 한·일월드컵에서 세네갈 주장으로 뛰었던 알리우 시세는 이번 월드컵에서 감독으로 팀을 이끌고 있다. 세네갈은 디오프가 이끌던 황금세대처럼 또다시 돌풍에 도전한다.

쿨리발리는 "2년 전 오늘, 세네갈의 위대한 축구 선수 파프 디오프가 세상을 떠났다. 디오프와 그의 가족에게 플레이어 오브 더 매치(경기 MVP) 트로피를 바친다"며 "디오프와 시세 등 우리 앞세대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이룬 성과를 우리 세대에서 또 이뤄내고 싶다. 아프리카 챔피언의 자존심을 걸고, 16강전에 나서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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