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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경제 한파 엎친데…수조원 피해 물류파업 덮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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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23일부터 분야별 릴레이 파업에 들어가면서 경제·사회적 충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민주노총 산하 최대 산별노조인 공공운수노조가 이날 서울대병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시작으로 파업에 들어갔고, 24일 화물연대, 25일 학교 등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조, 30일 서울교통공사(서울 지하철) 노조, 12월 2일 전국철도노조 등 물류·교통·교육·의료 등을 망라한 연쇄 파업이 예고돼 있다. 전국철도노조는 파업에 앞서 24일 태업을 예고했다. 이 여파로 24일 무궁화호 등 8편이, 25일부터는 10편이 운행 중단된다.

당장 ‘발등의 불’이 떨어진 곳은 산업계다. 화물연대가 24일 0시부터 집단 운송거부를 예고하면서다. 이들이 운행을 멈추면 물류 차질이 벌어진다. 지난 6월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거부 때는 철강업계 1조1500억원, 석유화학업계 5000억원, 자동차업계 2500억원 등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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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석유화학 등은 산업 파급효과가 큰 만큼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다른 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예컨대 철강제품 출하 차질로 자동차·조선·건설이 마비되는 식이다. 석유화학업체 관계자는 “일주일 이상 출하가 이뤄지지 않으면 공장을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차, SK하이닉스 등 주요 수출기업도 물류대란으로 부품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 공장이 멈추고 제품 공급은 물론 수출이 막힐 수 있다. 정유·시멘트·레미콘 업계에선 비상 수송체계를 점검하고 있다. 시멘트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화물연대가 운송거부에 들어가면 노조원들이 생산 공장을 막아서고, 비(非)노조원에 대한 운행 방해를 해왔다”며 “사실상 시멘트 운송이 마비되는 건데, 건설현장 등으로의 피해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화물파업 장기화 땐 철강·차·조선·건설 줄줄이 마비 우려

식품·유통업계도 긴장 상태다. 당장 24일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예선 첫 경기를 치르는 날이다. 각종 주류와 식음료 소비가 늘어나는 이른바 ‘월드컵 특수’를 놓칠 수 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3~9월 화물연대 소속 화물차주의 운송거부·방해 사태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다만 일반 소비자의 이용이 많은 택배의 경우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운송거부에 참여하는 노조원 대부분이 대형 화물차를 맡고 있어서다.

민주노총의 이른바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 입법 및 건설안전특별법(건안법) 제정 요구도 경영계에 부담을 주는 내용이다. 노란봉투법은 폭력·파괴로 직접 손해를 입은 경우를 제외하면 노조의 단체교섭·쟁의행위에 대해 사측이 노조나 근로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게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경영계는 노란봉투법은 파업을 조장할 우려가 있고, 건안법은 중복 처벌로 기업 활동 위축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한다.

정부는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거부 사태에 대비해 국토교통부·산업통상자원부·경찰청·국방부 등 관계부처 합동 비상수송대책본부를 운영, 경제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국토부는 집단 운송거부 기간 중 정상적으로 운송에 참여하는 차주들에 대해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해 준다. 관세청은 주요 세관에 비상통관체계를 가동한다.

시민 불편도 우려된다. 이날 오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 분회(서울대병원·보라매병원)는 필수인력 확충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노조에 의사직이 없어 아직은 일부 검사 지연 등의 문제만 발생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병원 파업으로 수술 연기 전화를 받았다는 글이 올라왔다. 또 환자와 보호자는 집회·시위로 좁아진 인도를 비집고 병원에 들어가는 불편을 겪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콜센터 노동자들로 구성된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지부 노조도 정규직 전환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고객센터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740명(약 46%)을 중심으로 민원을 응대하고 있다”며 “이미 정규직 채용 시 (노조원에게) 우대사항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MZ세대 중심으로 공정과 상식을 위반한 주장이라고 생각하는 여론이 있다”고 전했다.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학비연대)는 25일 서울 여의대로에서 약 5만여 명이 참여하는 총파업을 벌인다고 예고했다. 학비연대는 학교 급식실 폐암·산재 종합대책 마련, 지방교육재정 감축 반대, 정규직과 차별 없는 임금체계 개편 등을 요구하고 있다. 교육청은 유치원·초등학교 돌봄교실·특수교육 분야는 학교 내 교직원을 최대한 활용해 파업으로 인한 교육활동 공백을 줄일 예정이다. 또 학교 급식은 식단 간소화, 도시락 지참, 빵·우유 같은 대체급식을 제공하도록 안내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사회적 비극을 파업 동력에 이용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공공운수노조가 내건 요구 조건에는 ‘사회적 참사와 중대 재해의 철저한 원인 규명과 근본적 대책 수립’이 포함됐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는 22∼24일 조합원을 대상으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책임자 행정안전부 장관 파면·처벌 등에 대한 정책 찬반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김태기(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은 “문제는 이번 민주노총의 파업이 생업보다는, 세를 과시하고 요구안을 관철하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에서 벌어진다는 것”이라며 “이런 식의 투쟁은 국민의 공감을 얻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대외 경제여건 악화에 국내 경기마저 꺾이는 복합위기 상황에서 벌어지는 이런 대규모 파업은 국가 경제에 큰 부담”이라며 “물류비용 증가로 물가가 더 오르고, 중소기업의 매출은 떨어지며, 한국 수출기업의 경쟁력에도 타격을 주는 만큼 파업을 조속히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6단체는 공동성명서를 통해 “현재 우리 기업이 유례없는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며 “즉각 운송 거부를 철회하고 차주·운송업체·화주 간 상생 협력에 나서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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