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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날의 칼, 윤 대통령 리더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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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허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허진 정치팀 기자

허진 정치팀 기자

최근 우연히 만난 윤석열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후배는 “석열이형은 어떤 문제든 단칼에 해결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그는 “내각에 생동감 있는 장관이 늘고 대통령실이 홍보도 잘하면 분명히 지금보다 잘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을 ‘석열이형’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이처럼 그의 리더십에 신뢰를 보낸다. “이제까지 지켜본” 경험이 그를 믿는 밑바탕이다.

그런데 그 ‘석열이형 경험’은 양날의 칼과 같다. 그를 가까이서 볼 기회가 없던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으니 말이다. 당장 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그렇다. 당내 측근 의원조차 빨라야 ‘윤석열 전 검찰총장’ 시절 경험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손수 라면을 끓이던 윤 대통령에게 “계란 두 개?”라는 ‘심쿵’ 질문을 받거나 삼청동 안가에서 함께 술잔을 기울인 경험이 있는 의원들을 빼고는 다들 ‘석열이형’은 먼 나라 얘기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하는 모습. 김성룡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하는 모습. 김성룡 기자

정치부 기자들은 어떤가. 윤 대통령은 검찰 조직에서 벗어나 1년 만에 초스피드로 대통령이 됐다. 현장 기자 중에 그와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이는 많지 않다. 역대 대통령이 수많은 ‘마크맨’ 기자를 남긴 것과 대비된다. 그러니 윤 대통령이 하는 말은 ‘곧이곧대로’ 기사화된다. 수려한 정치적 해석을 달고 싶어도 그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으니 말이다. 정치권 언저리 사람들도 이럴진대 일반 국민이야 말해 뭐할까.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사적 리더십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MBC 기자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라는 초유의 상황에서도 윤 대통령은 극히 일부 기자를 따로 불러 기내 환담을 했다. ‘형제의 연’이란 평가를 받던 검사 출신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이 석연찮은 이유로 물러나자마자 또다시 검찰 출신을 발탁했다. 여전히 ‘석열이형’다운 모습이다.

윤 대통령이 어떤 진정성을 갖고 있든 지금처럼 그 마음이 외부로 전달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지 않나. 대통령으로서 이태원 참사를 수습하는 것도 그렇다. 그의 심정은 얼마나 비통할까. 그런데도 그는 참사 현장에서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단 말이야”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사시 9수 중에도 삼일장을 챙기고 상여까지 직접 메던 “함께 슬퍼해 주는 석열이형”이라지만 국민 눈에는 “검사처럼 말하던 대통령”으로 기억될 장면이었다.

‘석열이형 리더십’은 이제 잠시 접어둘 때가 됐다. 대통령인 그에게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공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석열이형’ 시절을 모르는 99% 이상의 국민이 ‘석열이형 리더십’에 공감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