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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스티밍’을 기다린 건 아닌데 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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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정책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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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이 칼럼에서 ‘도어스티밍’이라는 조어(造語)를 한 적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출근길 문답, ‘도어스테핑’에서 화를 냈을 때다. 박순애 전 교육부총리 인선이 실패라는 지적에 윤 대통령은 “다른 정권 때하고 한 번 비교를 해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만남과 소통에 대한 기대가 담긴 ‘스테핑(stepping)’ 대신 ‘스티밍(steaming·몹시 화가 난)’을 써보니 준비 안 된 소통이 부른 아이러니한 상황에 적합해 보였다. 좋은 취지는 몰라 주고 매번 비판만 하니 결국 ‘스팀’만 받는 식이다. 대통령도 화를 낼 순 있지만, 권력자의 분노는 ‘열린 소통’과는 상극이라는 게 문제였다.

그로부터 4개월여 지난 지금, 이번엔 기자와 대통령실의 도어스티밍이 논란이다. “악의적인 보도”라는 대통령의 비난에 해당 언론사의 기자가 “뭐가 악의적이라는 얘기냐”며 항의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도어스테핑은 중단됐고 대통령의 출근 모습이 노출되지 않게 하려는 가벽까지 설치됐다. 지난 20일 용산에는 그 공사를 하는 망치질 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한다.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각 언론사의 기자들과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을 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뒷모습. [사진 대통령실]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각 언론사의 기자들과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을 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뒷모습. [사진 대통령실]

해당 방송사는 대선을 전후해 윤 대통령에게 불리한 보도에 치중했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그 배경과 구도가 정치 진영과 연결돼 있다는 의혹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공정해야 할 언론이 정치권 ‘저격수’처럼 대통령 부부의 일거수일투족을 물고 늘어지니 당사자들은 기가 막히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적 공감은 거기까지다. 대통령이 해당 방송 기자들에게 전용기 취재 배제 등의 조치를 하면서부터는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악의적으로 동맹 관계를 이간질하는 보도에 대한 헌법 수호 책임의 일환”이라는 명분은 “표현의 자유 침해” “언론 탄압” 등 헌법적 반격에 직면했다. “슬리퍼를 신은 채 샤우팅 하는 게 언론의 자유냐”는 지적도 있지만, 그걸 인내하지 못하고 응징하려는 권력의 태도가 헌법 가치에 더 위협적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또 다른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는 오해로도 이어질 수 있기에 견문발검(見蚊拔劍·모기를 보고 칼을 뺌)의 오류를 벗어나기 어렵다.

이는 윤석열 정부에서 나타나는 유사한 패턴이다. 청와대를 떠나겠다는 전격적인 발표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내려놓는 방식이 제왕적이다”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헌법 가치를 지키려는 윤 대통령의 고차원적인 노력은 기대만큼 화답 받지 못하고 있다. ‘야심작’이었던 도어스테핑은 가림막에 가려졌고 그 너머 용산 집무실은 자칫 청와대보다 더 멀게 느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런 아이러니의 근본 원인을 서둘러 점검하는 게 헌법 수호의 일환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