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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시간 만에 생환한 봉화 광부들, 일상으로…“모든 분들께 감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1일 오전 경북 안동시 안동병원 1층 로비. 2층에서 누군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자 병원 전체에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초록색 점퍼에 청바지를 입은 이는 221시간 동안 무너진 봉화 아연광산 갱도에 갇혀 있다가 기적적으로 구조된 광부 박정하(62)씨였다. 환한 미소로 손을 들어 인사했다.

지난달 26일 오후 6시쯤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 붕괴 사고로 매몰됐다가 221시간 만에 '기적의 생환'을 이뤄낸 광부 2명이 11일 오전 경북 안동병원에서 퇴원한다. 작업반장 박정하씨(62)가 병원 로비에서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6일 오후 6시쯤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 붕괴 사고로 매몰됐다가 221시간 만에 '기적의 생환'을 이뤄낸 광부 2명이 11일 오전 경북 안동병원에서 퇴원한다. 작업반장 박정하씨(62)가 병원 로비에서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뉴스1

'감사 인사' 전하려 기자회견 자청

박씨는 구조 뒤 일주일간 이 병원에서 치료를 마쳤다. 퇴원하기에 앞서 도와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이날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1층 로비에 모인 취재진에게 박씨는 담담하게 그간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했다.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 전국 광부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관련 사회단체와 함께 활동하고 싶다고도 했다.

박씨는 “구조된 후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간 이뤄진 구조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 생명을 구하려는 이들의 진심이 마음 깊은 곳까지 느껴졌다”며 “24시간 구조 활동에 힘써준 동료 광부들과 현장을 직접 찾아와 인적·물적 자원을 적극 지원해준 경북도민 여러분들, 119구조대와 동부광산안전사무소 분들, 시추 작업을 해준 민·군 관계자분들에게도 감사드린다”고 운을 뗐다.

"갓난아기처럼 감회 새로워" 

이어 그는 “오늘 막 태어난 갓난아기처럼 감회가 새롭다. (매몰 당시)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며 “(안전모에 달린 랜턴 배터리가 떨어진) 마지막 순간엔 삶을 포기하기까지 했는데…, 이렇게 새로운 삶이 주어졌으니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아보려 한다”고 말했다.

221시간 만에 무너진 갱도에서 구조된 광부 박정하씨가 11일 오전 경북 안동시 안동병원 로비에서 퇴원을 앞두고 기자회견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221시간 만에 무너진 갱도에서 구조된 광부 박정하씨가 11일 오전 경북 안동시 안동병원 로비에서 퇴원을 앞두고 기자회견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그는 이른 시일 내 전북 남원 부모님 묘소를 찾아간 뒤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박씨는 “갱도 안에서 ‘나에게 시간이 얼마 없구나’ 느끼게 되면서 그동안 제가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들, 소홀했던 것들을 떠올렸다”며 “가족이 내게 가장 소중하다고 느꼈다. 뭘 하든 (이젠) 가족과 항상 함께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열악한 광산 환경 개선 필요”

이어 “지금 광산 환경이 80년대 초나 현재나 변한 게 없다”며 “전국 광산에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작업하는 많은 이들이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그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사회단체와 연계해 활동할 계획”이라고 했다.

박씨의 퇴원을 축하하러 온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이들을 구조해야 한다’는 우리 모두의 마음이 합쳐져 기적이 일어난 것 같다”며 “지금 온 국민이 이태원 참사와 어려운 경제 때문에 힘든데 이런 기적을 대한민국의 희망을 살리는 데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퇴원한 박씨는 지난달 26일 경북 봉화군 소천면 서천리 아연광산에서 보조작업자와 작업하던 중 갱도가 무너지면서 고립됐다.

소방당국은 신고 접수 직후 작업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제2 수직갱도 지하 140m까지 내려간 뒤 수평으로 진입로를 뚫는 작업과 매몰자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땅 위에서 수직으로 시추기를 뚫어 내려가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했다. 이 중 수평으로 진입로를 뚫는 작업이 성공했고, 매몰됐던 작업자들은 지난 4일 오후 11시쯤 갱도 밖으로 다시 나올 수 있었다. 고립 221시간 만이었다.

구조 직후 안동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온 두 작업자는 빠른 속도로 회복해 일주일 만에 퇴원하게 됐다. 갱도에 갇혀 있는 동안 식사 대용으로 먹었던 커피믹스가 건강 유지에 큰 도움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퇴원 기자회견에서 커피믹스 상자를 들고 “이게 식사 대용이 되더라”며 웃어 보이기도 했다.

"신경정신외과 통원치료 예정" 

퇴원한 박씨는 자신의 자택인 강원 정선군에 머물면서 태백시 한 신경정신외과에서 통원 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정신적 외상을 이겨내기 위해서다. 보조작업자 박씨는 서울에서 치료를 받을 것으로 전해졌다.

221시간 만에 무너진 갱도에서 구조된 광부 박정하씨(맨 오른쪽)가 11일 오전 경북 안동시 안동병원 로비에서 갱도 내에서 먹었던 커피믹스를 보며 웃고 있다. 박씨 옆은 이철우 경북도지사. 김정석 기자

221시간 만에 무너진 갱도에서 구조된 광부 박정하씨(맨 오른쪽)가 11일 오전 경북 안동시 안동병원 로비에서 갱도 내에서 먹었던 커피믹스를 보며 웃고 있다. 박씨 옆은 이철우 경북도지사. 김정석 기자

갱도 붕괴 사고 경찰 수사 '속도'  

한편 붕괴 사고와 관련한 경찰 수사에 속도가 붙고 있다. 경북경찰청 봉화 광산 안전사고 전담수사팀은 지난 9일 사고가 난 원·하청업체 2곳에 대한 압수 수색을 벌였다. 이에 앞서 전담수사팀과 경북경찰청 과학수사과, 산업통상자원부 동부광산안전사무소 관계자 등 10여 명은 지난 7일 붕괴 사고 현장에서 합동 감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경찰은 수사를 통해 갱도에 토사가 쏟아져 내린 원인과 제반 규정에 맞게 광산에 안전조치가 이뤄졌는지 등을 밝힐 방침이다. 지난 8월 29일에도 같은 갱도에서 붕괴 사고가 일어나 작업자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친 만큼 앞선 사고와의 연관성도 들여다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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