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 "굳이 안 가도 되는데"…이 제도 없어서, 요양병원 찾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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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재 서울파티마의원 원장이 지난 6월 재택진료를 하기 위해 서울 노원구 환자 집에 들어서고 있다. 중앙포토

장현재 서울파티마의원 원장이 지난 6월 재택진료를 하기 위해 서울 노원구 환자 집에 들어서고 있다. 중앙포토

전이되거나 재발한 암 환자의 절반 이상이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에 있으면 증상 조절, 막연한 불안감 등을 떨칠 수 없어서 입원한다. 의료진이 집으로 찾아가 이런 걸 해결해야 하는데, 그런 제도가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요양병원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집에만 있으면 어딘가 아파도 물어볼 데가 없어요. '(암세포가)전이돼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것일까. 주사라도 맞아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불안감이 제일 큽니다. 적시에 케어를 받지 못하니, 늘 외래진료 갈 때마다 물어봐야 하지요.”

70대 여성 신장암 4기 환자 A씨는 집에 있을 때 늘 이런 불안감을 느껴 요양병원에 입원했다고 호소했다. 서울대병원·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최근 공동 주최한 '진행암 환자를 위한 재택의료 방향' 심포지엄에서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김민선 교수는 진행암 환자들의 고통을 소개했다. 김 교수팀은 전이·재발했거나 3,4기로 판정된 암 환자와 보호자 10명,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 8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또 서울대병원 외래진료 암 환자 200명(보호자 83명 포함)을 면접 조사했다. 요양병원 입원 경험이 있는 환자가 54%, 일반 중소병원(1,2차 병원) 입원이 49.5%였다. 두 군데 다 경험한 환자는 3.5%였다. 이들은 왜 이런 데에 갈까. 증상 조절이 안 되거나(51.5%) 돌봐줄 사람이 없는 경우(36.5%)가 가장 많다. 의료적 처치를 받으려는 경우(22.5%)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심층 인터뷰에 응한 환자는 불안감을 많이 호소했다. 50대 설암 남성 환자는 "실손보험이 있어서 요양병원에서 좀 버텼다"며 "그냥 집에 있으면 불안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환자는 "항암 치료 할 때 식욕저하·통증·무력감을 관리하고, 면역력 강화 등을 위해 요양병원을 찾는다"고 했다. 독신인 환자는 집에 있을 때 식사·청소 등을 해결하기 힘든 점을 호소했다. 40대 폐암 4기 여성환자의 아들은 “24시간 돌봐야 하는데, (어머니를) 맘 놓고 맡길 데를 찾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들의 58%가 입원 중 수면 방해, 입맛에 맞지 않은 식사 등의 불편을 겪었다고 한다. 또 응급상황 발생 걱정, 의료지식 부족, 통증 관리 애로 등을 호소했다. 60% 환자는 "이런 문제가 해결되면 재택의료를 받겠다"라고 응답했다. 그래도 입원하겠다는 환자도 39%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암 환자가 전문적인 재택의료를 받을 길이 없다. 왕진 등의 일부 시범사업이 있지만 중증환자는 거의 다 제외돼 있다. 일본은 우리와 다르다. 서울대병원 심포지엄에서 일본의 재택의료 전문 의료재단 '하루타카카이'의 히로토시 마에다 전문의는 온라인으로 "우리 재단이 9개 지역에서 0~100세 중증환자 3381명을 재택진료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 해 재택의료 환자 220명(성인 200명, 아동 20명)이 가정에서 평안한 죽음을 맞는다. 이 재단에는 의사 39명(18명은 시간제), 직원 180명이 일한다. 약 7년간 튜브 영양 공급 949명, 기관절개 590명, 기계호흡 789명을 담당했다. 입원 병상은 없다. 일본에는 카이 재단 외 1만여개의 재택의료기관이 활동하고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히로토시 전문의는 "17세 백혈병 소년 환자가 병원에서 집으로 옮긴 후 그와 가족들이 웃음을 되찾고, 참을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이 줄었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재택의료 비용이 입원진료비의 3분의 1 또는 절반에 불과하다. 고령화 시대에 의료비 절감에 기여한다"며 "환자의 생의 마지막을 자기 집에서 보낼 수 있는 선택권을 제공해 정서적으로도 이롭다"고 말했다.

5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대한신경과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박건우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과 교수는 '신경과 환자의 재택의료' 강의에서 "치매·파킨슨병 등의 신경계 환자 집으로 재택진료 나가지만 비용을 받을 길이 없다. 대학병원 의사는 봉사활동으로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일본은 대학병원 의사가 재택진료기관 의사에게 재택진료를 의뢰하고, 진료 후 보고를 받는다"며 "우리는 이런 걸 의뢰할 재택진료기관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은 2018년 동네의원을 대상으로 왕진 시범사업을 도입했다. 왕진 진료수가도 이때 처음 만들었다. 일본은 24년 전인 1994년 만들었다. 한국은 2020년 코로나 발발 이후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주로 전화진료)를 허용했다.

박 교수는 "30년 치매·파킨슨병 환자를 진료해 왔는데, 과거에 진료한 환자가 병원으로 오지 않는다. (거동할 수 없어서) 보호자가 대신 온다. 정확한, 제대로 된 진료를 하고 있는지 회의가 든다"며 "환자는 올 수 없고, 나는 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민선 서울대병원 교수는 "간병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게 해결 안 된 상황에서도 집에 있기를 원하는 중증 환자 및 가족이 많다. 하지만 재택의료라는 제도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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