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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겠다”…애도기간 끝나고 조심스레 일상 일으키는 시민들

중앙일보

입력

‘11월 5일 애도 기간까지 휴점합니다’란 문구가 써진 종이가 상점문에서 떼어내 졌다. 문 앞에 쌓인 낙엽들을 쓸어내는 빗질 소리가 이태원 길거리를 채웠다.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가 한산하다. 이날 이 골목의 대부분 상점은 낮 영업을 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가 한산하다. 이날 이 골목의 대부분 상점은 낮 영업을 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6일 오전 10시쯤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대로변 가게 내부에 하나둘씩 불이 켜졌다. 지난달 29일 이태원에서 벌어진 압사 참사에 대한 국가 애도 기간이 지난 5일 끝나면서 휴점을 했던 상인들이 돌아오면서다. 원래 개점시간보다 한두 시간 일찍 문을 연 상인들은 한 손에는 걸레, 다른 손엔 물이 가득 찬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나와 청소를 시작했다. 먼지 낀 창문을 닦아내고, 업소 인근에 버려진 쓰레기를 봉투에 채워 내다 버렸다. 가게가 문을 연 것을 확인한 손님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참사 현장에서 2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옷가게 점주는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문을 연다”며 “우리도 이번 참사에 마음이 아주 아프고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고, 우리도 힘을 내야 하기에 영업을 재개했다”고 말했다. 매장 청소를 하고 있던 가방가게 점주에게 매출이 줄어 힘들겠다고 하자 “당장 손해를 얘기할 상황은 아니다”라면서도 “이태원은 관광지다 보니 코로나19로 이미 상권이 약해져 있어 손해는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날 이태원을 찾는 인파는 평소 주말보다 적은 편이었다. 이태원 퀴논길 인근 카페 종업원 이모씨는 “평소 주말에 오는 인파와 비교했을 때 십 분의 일 정도에 그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참사 사고 골목 뒤편의 이태원세계음식거리에선 인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애도 기간은 끝났지만, 추모의 목소리는 계속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희생자 추모 공간을 찾은 추모객이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희생자 추모 공간을 찾은 추모객이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 애도 기간이 끝나면서 대다수의 합동분향소가 철거됐지만,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희생자 추모 공간은 유지되고 있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시민이 자발적으로 만든 공간이기 때문이다. 용산구는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오는 12일까지 연장 운영하기로 했다. 아내와 11살 딸과 함께 합동 분향소를 찾은 김모(41·서울 서대문구)씨는 “용산구 분향소는 운영되고 있다고 해서 일부러 가족과 같이 찾았다”며 “세상의 밝은 면만 보여줄 수는 없다고 생각해 딸에게 참사에 대해서 대략 설명했다”고 말했다.

참사가 일어난 골목길 주변에 대한 경찰의 통제는 이날도 이어졌지만, 추모 공간부터 사고 현장 앞 길가엔 추모객이 사온 국화꽃과 간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최모(27)씨는 “월요일 출근 전에 잊지 않겠다고, 기억하겠다고 약속하려 찾았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 박길선(65)씨는 “추모 공간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곳이고, 찾아오는 사람도 많아 한동안 이 공간은 유지될 것 같다”며 “야외다 보니 비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라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도 합동분향소를 연장 운영한다. 경기도와 수원시는 합동분향소를 오는 9일까지 연다. 이번 참사로 사망한 경기도민은 38명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도민 피해가 큰 데다, 아직 조문하지 못한 도민도 있어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말했다.

용산구 다목적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유실물 보관소도 당초 6일까지만 열기로 했다가 오는 13일까지 연장 운영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이날도 체육관에는 본인의 유실물이나 고인의 유품을 찾으려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계속됐다.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보관소를 나선 한 유가족은 “조카의 가방을 찾았다”고 말했다.

6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전날 용산구는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12일까지 연장 운영한다고 밝혔다. 연장운영 기간인 6일부터 12일까지 합동분향소는 오전 8시부터 밤 10시까지 운영된다. 연합뉴스

6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전날 용산구는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12일까지 연장 운영한다고 밝혔다. 연장운영 기간인 6일부터 12일까지 합동분향소는 오전 8시부터 밤 10시까지 운영된다. 연합뉴스

전문가 “‘10.29 참사’ 명칭이 트라우마 극복에 도움”

한편 정신건강 전문가 사이에선 참사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이태원 참사’ 대신 ‘10.29 참사’라는 표현을 쓰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등은 참사 이후 ‘이태원’이라는 지명이 들어간 표현을 쓰는 것이 트라우마 증상을 더 자극하고 지역에 대한 편견을 가질 수 있다고 보고 10.29 참사와 같은 대안 명칭을 논의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01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가 발생한 이후 '뉴욕 테러' '쌍둥이 빌딩 테러' 등으로 표현하다가 이후 지명과 장소를 뺀 '9.11 테러'로 용어를 통일했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회장인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기억할 때 명칭에 있어서 편견이나 차별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는 취지”라며 “재난 극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이어 “사고 명칭과 관련해서 유가족이나 부상자의 의견도 고려해야 해 논의 후 이사회를 통해 발표할 예정”이라며 “결정하면 변경된 안을 사용하도록 정부에도 제안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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