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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ICBM 도발에, 한·미 연합훈련 연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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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북한이 3일 오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한 발을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두 발과 섞어 발사했다. 전날 휴전 이후 처음으로 북방한계선(NLL) 이남 해상에 미사일을 발사했던 북한은 하루 만에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에 한·미 군 당국이 당초 4일 종료 예정이었던 한·미 연합공중훈련(Vigilant Storm)을 전격 연장하자 북한은 이날 밤 박정천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명의의 위협 담화를 낸 뒤 곧바로 단거리 탄도미사일 세 발을 추가로 발사했다.

군 당국은 이날 오전 발사된 미사일이 ‘화성-17형’(사거리 1만3000㎞ 이상)인 것으로 추정했는데 북한의 ICBM 발사(추정 포함)는 올해만 일곱 번째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한·미 연합공중훈련이 진행 중인 상황인데도 긴장을 높이는 것은 (한·미·일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과 쏠 수 있다는 ‘의지’를 함께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3일 오전 7시40분쯤 평양 순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ICBM 한 발을 발사했다. 이어 오전 8시39분쯤부터 평안남도 개천시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SRBM 두 발을 잇따라 쐈다. 북한이 쏜 ICBM은 약 1920㎞ 고도로 약 760㎞를 비행한 것으로 한·미 군 당국에 포착됐다. 속도는 마하15(음속의 15배) 정도였다. 미사일은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바깥에 떨어졌다. 또 북한이 쏜 SRBM 두 발은 약 70㎞ 고도로 약 330㎞를 날아갔다고 합참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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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당국은 각종 탐지 정보를 토대로 북한이 쏜 화성-17형은 발사에 실패한 것으로 평가했다. 군 소식통은 “미사일 발사 이후 추진체 2단 분리까지 마쳤으나 이후 정상적으로 비행하지 않았다”며 “속도 역시 통상적인 수준(마하20 정도)에 미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마하15는 10월 4일 북한이 발사해 4500㎞를 날아간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 개량형의 최고속도 마하17보다 느린 것이다. 북한은 지난 3월 16일 화성-17형을 발사했으나 고도 20㎞ 미만의 초기 단계에서 폭발하기도 했다.

화성-17형은 2020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처음 공개된 후 서방 전문가들 사이에서 ‘괴물 미사일(monster missile)’로 불렸다.

북, 한·미훈련 연장 비난 뒤 SRBM 또 쏴…핵실험만 남았다

이동식 발사대(TEL)에서 쏠 수 있는 ICBM 중 세계에서 가장 크기 때문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오전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직후 용산청사에서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열린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찾아 관련 상황을 보고받고 “한·미 확장억제 실행력을 더욱 강화시키고, 한·미·일 안보협력도 확대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이 도발 수위를 고조시키고 있는 만큼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한 치의 빈틈이 없도록 한·미 연합방위태세에 만전을 기하라”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이날 페이스북에 “온 국민이 대형 참사로 슬픔에 빠진 시기, 북한의 반인륜적 도발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적었다. 박홍근 원내대표도 “인류애와 민족애를 저버린 패륜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한·미 군 당국은 NSC 직후 이번 한·미 연합공중훈련을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훈련 연장은 한·미 안보협의회(SCM) 참석차 방미 중인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ICBM 관련 보고를 받은 윤 대통령이 직접 지침을 내렸고, 이에 이 장관이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및 마크 밀리 합참의장과의 SCM 만찬 자리에서 제안해 전격적으로 결정됐다고 한다.

이에 북한 군부 1인자인 박정천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선택”이라고 즉각 반발했다. 박 부위원장은 이날 오후 8시38분쯤 조선중앙통신에 공개한 담화에서 “미국과 남조선의 무책임한 결정은 연합군의 도발적 군사행위로 초래된 현 상황을 통제불능의 국면으로 떠밀고 있다”며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러고 나선 1시간 후인 오후 9시35분부터 9시49분까지 황해북도 곡산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 세 발을 추가 발사했다.

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정부와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날 북한이 ICBM을 발사하고 이후 박 부위원장이 내놓은 담화와 추가 미사일 발사 등을 고려할 때 남은 도발 카드인 7차 핵실험이 임박했다고 보고 있다. 앞서 국가정보원은 오는 7일(한국시간은 8일) 미국 중간선거 전까지 북한이 7차 핵실험을 실시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실제로 핵실험을 할 경우 그 뒤 벌어지는 모든 상황의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에 있다”며 “북한의 잇따른 도발이 더욱 강력한 한·미·일 동맹 강화의 구심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도 명심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한·미가 군사훈련을 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ICBM까지 발사한 건 핵 기술을 보유한 자신을 제어할 방법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제 갈 길을 가겠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영태 동양대 석좌교수는 “북한은 미·중 갈등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자신들의 편에 설 수밖에 없는 역학관계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며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한 협상으로 끌고 가기 위한 노골적인 시도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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