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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톤만 불법 아니었다, 그 골목 17곳중 정상 건물 단 3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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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핼러윈 데이 압사 사고가 발생한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에 증축된 해밀턴호텔 주점 테라스(왼쪽)가 눈에 띈다. 이 시설은 불법 증축으로 적발됐다. 연합뉴스

핼러윈 데이 압사 사고가 발생한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에 증축된 해밀턴호텔 주점 테라스(왼쪽)가 눈에 띈다. 이 시설은 불법 증축으로 적발됐다.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골목 일대 건물 대부분이 무단 증축 등 관계 법령을 위반한 적이 있거나 현재 불법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1일 중앙일보가 사고가 난 도로를 중심으로 해밀톤호텔 등 17개 건물의 건축물대장을 확인해본 결과 용산구청으로부터 시정 명령을 한 번도 받지 않았던 정상 건물은 단 3곳에 불과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특히 사고가 일어난 골목에 맞닿아 있는 해밀톤호텔의 경우 본관과 B동, 별관 등 건물 3개 동이 모두 위반건축물로 건축물대장에 기록돼 있다. 호텔 객실과 쇼핑몰이 자리한 본관의 경우 세계음식문화거리 도로변 주점의 테라스를 불법 증축했다. 건축물대장에 따르면 이 테라스는 면적이 17.4m²로 경량철골 및 유리로 제작됐다. 이 불법 건축물로 인해 5m가량의 도로 폭이 4m로 줄어들게 됐다. 커피전문점에 통째로 임대한 B동의 경우 건물 전면 부분(49㎡)이 지난 2017년 불법 증축됐고, 이후 지금까지 증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본관 북쪽에 위치한 해밀톤호텔 별관 주점에서도 참사 당일 약 1m 길이의 행사 부스를 무단 설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세계음식문화거리 일부 구간은 폭이 약 3m까지 줄었다. 특히 해밀톤호텔 별관 건물은 2013년 이후 무단 증축 적발 사례가 4건으로 나타났다. 해밀톤호텔 측의 이런 영업 행태에 대해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도로법이라든지 건축법 등에 저촉을 받거나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심지어 사고가 난 골목에 있는 한 건물은 '무허가 건물'로 확인됐다. 이 건물은 구청의 허가를 받지 않아 건축물대장 자체가 없었다. 법원에 부동산 등기도 하지 않은 건물인 것으로 파악됐다. 1층에는 옷 가게가 있고, 가게 옆에는 간판이 없는 철문이 있다. 옷 가게는 맨눈으로 봐도 도로변 다른 상가에 비해 외부 인테리어 설치물이 도로 쪽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용산구청 측은 이를 뒤늦게 확인한 뒤 서울시에 항공사진을 통해 건물 건축 시기를 판단하는 '항적 의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건축조례에 따르면 1981년 12월 31일 이전에 지어진 무허가 건물에 대해서는 시장이 정하는 바에 따라 단속을 유예하겠다는 항목이 있어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튼호텔 옆 골목에 30일 희생자들이 남긴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김성룡 기자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튼호텔 옆 골목에 30일 희생자들이 남긴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김성룡 기자

통상 지자체에서는 매년 주기적으로 불법 건축물 단속을 한다. 주민 제보와 위성사진 등으로 건축법 위반이 의심되는 건축물을 특정해 현장조사를 진행해 불법 여부를 확인한다. 이태원 일대 불법 건축물 적발 사례 대부분이 무단증축이다. 도로변에 테라스를 설치하거나 옥상 등을 증축하는 사례도 있다.

적발 이후 곧바로 원상 복귀한 가게도 있지만 해밀톤호텔처럼 10년 넘게 이행강제금을 내면서 이를 감수하는 곳도 많다. 현행 건축법 제80조에 따르면 무허가·무신고 건축물에 대해 위반 면적 시가표준총액의 절반에 해당하는 범위 내 일정 비율을 곱해 금액을 산정,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법 시행령 제115조의3에서 '건축조례로 비율을 낮춰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등 경감 장치도 마련돼 있다.

실제 이행강제금이 낮아 불법 건축물 단속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한준호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전국의 위반 건축물 적발 현황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7월까지 총 62만362건이 시정 명령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는데 이중 시정 명령을 이행하지 않아 이행강제금이 부과된 사례는 60만8068건에 달했다. 이행강제금은 9884억원이었다.

건당 평균 부과액을 단순 계산하면 올해 기준 191만원으로 집계된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이태원은 유동인구가 많고 상권이 활성화돼 있어 상인들이 무단 증축을 해서 얻는 수익이 벌금을 내는 비용보다 더 많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불법 건축물 적발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도 성행하고 있다. 사고가 일어난 지점에는 해밀톤호텔 측에서 설치한 폭 1m, 길이 10m가량의 가벽(假壁)이 있는데, 이 시설물은 천장(지붕)을 없애 불법 증축 단속을 피했다. 익명을 요구한 모 대학 건축과 교수는 "구청 측에서는 해밀톤호텔 등이 옛날에 지어진 건물이기 때문에 최근에 만든 도시계획과 다를 수 있다고 하지만 건축 관련 법령 등은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일지라도 현행 건축법에 부합하도록 관리할 의무를 행정기관에 지우고 있다"며 "법에서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정한 최소 도로 넓이(4m)가 불법 또는 편법 건축행위로 줄어든 경우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행정지도를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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