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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적女' 이날은 맞다, 男축구팀 경기에 "획기적" 美 들썩 왜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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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카고대 남자 축구팀을 지휘하는 줄리앤 싯치 감독. Julianne Sitch Instagram]

미국 시카고대 남자 축구팀을 지휘하는 줄리앤 싯치 감독. Julianne Sitch Instagram]

‘여적여’,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 동의하시나요? 개인적으로는 강력히 이의를 제기합니다만, 다음 경우엔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 미국시각으로 28일 열리는 뉴욕대와 시카고대의 축구경기입니다. 선수들은 남성이지만, 감독이 두 팀 모두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여성 감독 호적수들인 셈이죠. 말 그대로 ‘여적여’ 경기입니다. 미국 기준으로 봤을 때도 여성 감독이 이끄는 남성 축구단의 경기는 드물죠. 뉴욕타임스(NYT)가 지난 26일 기사에서 “미국 축구뿐 아니라 젠더 이슈에 있어서 획기적인, 최초의 경기”라고 주목한 까닭입니다.

역사를 새로 쓰는 두 여성 감독의 이름은 킴 와이언트(58)와 줄리앤 싯치(39). 미국 대학스포츠(NCAA) 소속 남자축구 팀을 이끄는 여성 수장들이죠. 둘 중 먼저 감독 자리에 오른 건 와이언트입니다. 골키퍼 출신인 그는 미국 최초의 여성 축구 국가대표 선수였습니다. 현역 은퇴 후엔 벤치에서 남녀를 가리지 않고 선수들을 육성해왔고, 명문 뉴욕대(NYU)의 남성 축구팀 사령탑을 맡게 됐습니다. 지난 1월 미국의 유명 스포츠 전문매체,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는 그를 인터뷰하면서 “남자 선수팀을 이끄는 여성 감독이 더 많아져야한다”고 적었죠.

뉴욕대(NYT) 남자 축구팀의 감독, 킴 와이언트. [Kim Wyant Twitter]

뉴욕대(NYT) 남자 축구팀의 감독, 킴 와이언트. [Kim Wyant Twitter]

SI의 지적은 현실이 됐습니다. 싯치 감독이 시카고대학교 남자 축구팀의 수장이 되면서죠. 싯치 감독은 NYT에 “킴 감독이 나의 롤모델이 돼줬다”고 말했습니다. 싯치는 감독직을 제안받고 사실 망설였다고 합니다.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고 하죠. 그때 전화가 왔는데, 발신자가 와이언트였다고 합니다. 통화 뒤 싯치는 용기를 냈고, 감독직을 수락했고, 이제 와이언트와 호적수로 만납니다. 이 두 팀은 28일 그라운드에서 결과를 떠나 경기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길이 기억될 겁니다. 축구계의 유리 천장이 또 한 번 깨지는 날이니까요.

NYT는 “그간 여성 축구팀을 이끄는 남성 감독은 다수 존재했지만, 그 반대는 드물었다”며 “와이언트와 싯치의 존재와, 이번 경기가 의미가 큰 이유”라고 적었습니다. 참고로 이 기사를 쓴 NYT의 데이비드 월드스타인 기자는 남자입니다. NYT가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닙니다. 숫자는 사실을 웅변하죠. 미국 교육 당국의 집계에 따르면 NCAA 산하 남자 선수팀 감독을 여성이 맡고 있는 것은 5%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나마 그 5%도 대부분 스키ㆍ수영과 같이 남녀가 함께 뛰는 팀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미국 여성 축구 국가대표팀. 2019년 여자 월드컵 우승 후 자축하고 있습니다. AP=연합뉴스

미국 여성 축구 국가대표팀. 2019년 여자 월드컵 우승 후 자축하고 있습니다. AP=연합뉴스

선수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여성 감독이라서 남성의 특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거나, 리더십이 부족하다거나, 감정적이라거나, 히스테리를 부린다거나 그런 불만이 있지 않을까요. NYT에 따르면, 감독이 여성이기 때문에 생기는 불만은 없다고 합니다. 미드필더인 NYU 2학년생 벤 트래스크 선수는 이렇게 NYT에 말했습니다. “감독님의 코칭 경력이 풍부한 데다 실력도 뛰어나다. 이 팀에서 뛴다는 건 훌륭한 감독 아래에서 성장한다는 의미가 됐고, 계속 뛰고 싶다.”

물론 어떻게 불만이 하나도 없겠습니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인 만큼 불만과 갈등은 넘칠 겁니다. 그러나 그런 갈등의 원인은 성별에서 오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차이에서 오는 거겠죠. 남녀의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지 않는,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아직도 당연하지 않은 이 사회에서, 28일의 경기는 모두가 이기는 게임입니다. 남녀 갈라치기에 젠더가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한국사회도 돌아보게 되네요. 그런데 말입니다. ‘여적여’라는 말은, 일부 남자가 만든 거 같지 않으신가요. 이 생각이 틀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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