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서거…'마지막 황세손'을 기억하라, 이구의 삶과 연인들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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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의 마지막 황세손, 이구(왼쪽)와 당시 부인 줄리아 멀록 여사. [중앙포토]

조선왕조의 마지막 황세손, 이구(왼쪽)와 당시 부인 줄리아 멀록 여사. [중앙포토]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추모하는 전 세계 애도 행렬을 보며, 2004년 5월 2일의 서울 종묘가 떠올랐습니다. 조선의 마지막 황세손, 이구(李玖)를 만난 날입니다. 일본 도쿄에 살고 있던 그는 종묘 제례를 주관하기 위해 일시 귀국한 상황이었습니다. 어렵사리 승낙을 받은 인터뷰 자리였는데, 조건이 있었습니다. 인터뷰는 영어로 할 것, 기사도 영어로만 낼 것.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는 고사해온 그였습니다. 저는 당시 영어신문 코리아중앙데일리에서 일하고 있었고요. 왜 이런 조건을 걸었을까요. 조선 왕조의 마지막 적통이었던 그는 한국어에 능숙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그를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한가운데였던 1931년 태어나, 시대의 조류에 휩쓸려 일본과 미국에서 성장한 그입니다. 광복 후 한국에 뿌리 내리려 했지만 여러 차례, 다양한 이유로 실패했습니다. 2004년 당시 그의 나이는 73세. 목소리가 크지는 않았으나 발음은 또렷했습니다. 차분한 표정으로 이렇게 힘주어 말하던 그의 표정이 생생합니다.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 죽으면 이곳 한국 땅에 묻히고 싶습니다.”

1996년 영구귀국을 선언하며 종묘를 찾을 당시의 이구 황세손. 이후 다시 일본행을 택했습니다. 중앙포토

1996년 영구귀국을 선언하며 종묘를 찾을 당시의 이구 황세손. 이후 다시 일본행을 택했습니다. 중앙포토

인터뷰 이듬해인 2005년 7월 16일,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급서였습니다. 공개된 사인은 심장마비. 처음엔 나가사키(長崎) 호텔에서 사망했다고 알려졌지만, 이후 도쿄 그랜드 프린스 호텔 아카사카라고 정정됐죠. 이 호텔은 이구 황세손에겐 특별한 곳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도쿄에 살던 사택을 개조한 곳입니다. 호텔 이름에 ‘프린스(prince)’가 붙은 것도 그런 연유라는 설이 있습니다. 이구 황세손이 태어난 곳이 바로 그 사택이었고요.

황세손의 지인은 그의 사후 월간중앙에 “사망 얼마 전, 프린스 호텔에 방을 잡아달라고 부탁을 해왔다”고 전했습니다. 생의 마지막을 직감한 것 같았다는 뉘앙스였습니다.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 곡절 많은 삶을 마무리하고 싶어서였을까요. 엘리자베스 2세가 자신이 사랑했던 스코틀랜드 밸모럴 성에서 마지막을 맞은 것처럼 말이죠.

이구 황세손의 상여차 행렬. 서울 종로3가에 멈춰 조선 왕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종묘를 향해 노제(路祭)를 치르고 있는 장면입니다. 중앙포토

이구 황세손의 상여차 행렬. 서울 종로3가에 멈춰 조선 왕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종묘를 향해 노제(路祭)를 치르고 있는 장면입니다. 중앙포토

우린 이구 황세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그의 일생은 개인사를 넘어, 조선의 끝과 대한민국의 시작 사이 역사의 수레바퀴에 얽힌 시대의 비극입니다. 광복 후 한국에 정착하고자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고 합니다. 조선 왕실에 민심을 빼앗길까 우려했던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견제가 있었다는 설이 지배적입니다. 그러다 6ㆍ25 와중인 1953년,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주선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건축을 전공했습니다.

이후 뉴욕의 유명 건축회사인 아이엠페이(IMPEI)에 입사했고, 8세 연상 미국인 여성 줄리아 멀록과 사랑에 빠져 가문 일원들의 반대에도 불구, 결혼식을 올립니다. 그러나 수년이 지나도 아이가 태어나지 않고, 외국인 며느리에 대한 당시의 반감 등이 겹치며 부부관계는 소원해졌다고 하지요.

행복했던 한때. 이구 황세손 내외. 줄리아 여사의 한복 차림이 인상적입니다. 중앙포토

행복했던 한때. 이구 황세손 내외. 줄리아 여사의 한복 차림이 인상적입니다. 중앙포토

이후 이구 황세손은 진화랑의 유위진 회장과 수년에 걸쳐 연인 관계가 됩니다. 유 회장의 아들 유재응 씨가 2010년 중앙일보에 소상히 밝힌 둘의 로맨스(https://www.joongang.co.kr/article/4432747)는 그 자체가 영화입니다. 그러나 결국 이 사랑 역시 이구 황세손이 일본으로 돌연 돌아가며 비극으로 끝나죠. 멀록 여사의 마음은 얼마나 헛헛했을까요. 그는 한국에 남아 의상실 등을 운영하며 근근히 생계를 유지했지만 결국 하와이로 이주했고, 2017년 숨을 거둡니다. 이구 씨의 장례식에도 정식으로 초대받지 못하고 뒤에서 지켜봤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뿐인가요. 이구 황세손의 부모,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인생 역시 비운의 스토리로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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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운동의 유위진 회장이 30년을 살다 떠난 양옥집. 황세손 이구가 직접 설계했다고 합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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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서울에서 치러진 이구 황세손의 장례식은 그래서 더 쓸쓸했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2004년 종묘 인터뷰를 다시 찾아보니 와닿는 부분이 있습니다. 영국이나 일본 왕실에 관한 질문을 했는데 황세손이 잠시 침묵한 뒤 내놓은 답이죠.

“후회는 없습니다(I have no regrets).”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었지만, 그가 진정 하고 싶은 말을 압축한 문장 아니었을까요. 우문현답이었습니다. 그의 입가에 어렸던 희미한 미소가, 다시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구 황세손과 멀록 여사, 시대의 비극에 휩쓸린 모두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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