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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세상](51) "감옥을 이용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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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이 쌓여 숨길 수 없고, 죄가 크니 용서할 수 없는 자다.
惡積而不可掩, 罪大而不可解者也

주역 계사전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 자(者)는 이 말에 가슴이 뜨끔할 것이다. 온갖 비행을 저질러 놓고도 뻔뻔하게 얼굴 쳐들고 다니는 놈 말이다. 모든 범죄자에 대한 경고다.

오늘 주역 공부, 단도직입(單刀直入) 하자. 21번째 '화뢰서합(火雷噬嗑)'괘다. 하늘에서 불(離, ☲)이 번쩍이고, 우레(震, ☳)가 치는 형상이다.

주역은 믿음과 도덕, 포용을 강조한다. 화합을 중시한다. 그런 주역이 '서합'괘에 이르러서는 잔뜩 화가 났다. 사회를 좀먹는 범죄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단을 강조하고 나섰다. 인정사정없는 처벌이다. 그래서 '형벌의 괘'로 통한다.

'충치가 몇 개냐. 나 전당포 한다. 금이빨은 받아. 금이빨 빼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

영화 〈아저씨〉

영화 〈아저씨〉

영화 아저씨의 한 장면이다. 주인공 아저씨(원빈 역)가 악의 무리와 맞서면서 한 말이다. 그는 현란한 싸움 실력으로, 말 그대로 악의 세력을 모조리 씹어먹었다.

'서합' 괘의 스토리가 그렇다. 악의 무리를 모조리 씹어 없애라고 강조한다. '씹다'라는 뜻의 噬(서)와 '합한다'라는 의미의 '嗑(합)'으로 만들어졌다. '씹어 합한다'라는 뜻이다.

입에 씹히지 않는 물질이 있다면 이빨은 위아래로 합치할 수 없다. 잘게 씹어야 한다. 씹히지 않는 음식, 그게 바로 악의 세력, 범죄자다.

주역 21번째 괘 '화뢰서합' [바이두]

주역 21번째 괘 '화뢰서합' [바이두]

전체 괘를 모양을 보자. 입(口) 속을 형상화했다. 위아래에 양효(─)는 잇몸을 상징한다. 그 잇몸에 이빨(음효,--)이 붙어있다. 위에서 세 번째 양효가 바로 씹히지 않는 음식이다.

송(宋) 대 주역 해석의 대가 정이천(程伊川)은 이렇게 해석한다.

'입에 씹히지 않은 음식이 있으면 이빨은 합치하지 못한다. 사람 사는 세상도 그렇다. 간사한 자가 가로막고 있으면 화합할 수 없다.'

사회 통합을 위해 간사한 범죄자를 척결해야 한다는 얘기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하나다.

[사진 바이두]

[사진 바이두]

利用獄
감옥을 이용하라!

'서합'괘 괘사는 이렇게 심플하다. 죄 있는 자, 옥에 처넣으라는 얘기다. 군말이 필요 없다.

범죄자에 유연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과감하게 척결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사회는 밝아진다(亨)고 괘사는 얘기하고 있다.

범죄 초동단계에서 확실하게 바로잡아야 한다. 첫 효사(爻辭)는 이렇다.

履校滅趾, 無咎
/족쇄를 채워 발을 묶으니 허물이 없다.

여기 '校(교)'는 형벌 도구를 통칭한다. 목에 채우는 것을 '枷(가)', 손에 채우는 것을 '梏(곡)', 발에 채우는 것을 '桎(질)'이라 했다. 한자 질곡(桎梏)이 여기서 왔다.

범죄 초기에 엄격한 처벌로 죄의식을 심어주라는 게 이 효사의 뜻이다. 바늘 도둑 때 엄격히 다스려야 소도둑 되는 걸 막을 수 있다. 법무부가 촉법소년(觸法少年) 연령을 한 살 낮추기로 한 것과 맥락이 닿아있다.

악의 세력은 반발한다. 교묘한 말로 법을 비웃고, 법망을 피해 간다. 수괴를 중심으로 '악의 똬리'를 틀어 조직적으로 덤비기도 한다. 세 번째 효사는 이렇게 묘사한다.

噬腊肉, 遇毒
/마른 고기(포)를 씹다가 독을 만났다.

독(毒)은 악의 세력이다. 범인은 죄를 짓고도 법망을 빠져나가는데 이력이 나 있다. 심지어 세력을 규합해 덤비기도 한다.

그렇다고 결코 물러서면 안 된다고 '서합' 괘는 일관되게 강조한다.

噬膚滅鼻, 無咎
/코가 푹 빠질 정도로 피부를 깨물어라. 그래야 허물이 없다.

피부를 물어뜯는 것은 죄인을 과감히 처단하는 것을 뜻한다. 코를 들이박는다는 건 범죄 척결에 온 정신을 쏟는다는 의미다. 수사의 모든 역량을 발휘해 범죄 사실을 밝히고, 범인을 반드시 감방에 처넣어야 한다는 통렬한 표현이다.

정당한 법 집행이라면 허물이 있을 리 없다. 정이천은 '유연한 자세를 보이는 것은 범죄를 다스리는 합당한 태도가 아니다(用柔, 非治獄之宜也)'라고 주석을 달기도 했다.

악의 세력에는 분명 수괴(首魁)가 있는 법이다. 그자를 가려 엄격히 다스려야 한다. 법의 위엄을 보여야 한다. 마지막 효사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何校滅耳, 凶
/나무 형틀을 목에 차고 있으니 귀가 보이지 않는다. 흉하다.

죄행이 극한으로 간 상황이다. 초범의 경우에는 족쇄를 채우는 것으로 교정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목에 형틀을 채워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고도의 지능범으로 자랐기 때문이다. 어찌 흉하지 않겠는가.

누구를 거론하는 걸까. 바로 이 대목에서 계사전은 말한다.

惡積而不可掩, 罪大而不可解之者
악이 쌓이고 쌓여 숨길 수 없고,
죄가 크고 크니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자다.

바로 그놈이 범죄의 수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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