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주역 세상](49) 3000년 전 섹스는 어땠을까?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차이나랩’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도대체 저곳에서는 뭘 팔까…?

그곳을 지나면 항상 드는 생각이다. 시내 뒷골목 2층에, 국도 길가에 가끔 보이는 성인용품 가게다. '언젠가 꼭 한 번 들러 봐야지...' 하면서도 아직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필자에게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오늘 주역 공부는 3000년 전 '섹스(sex)' 이야기다.

야동은 없었다. 포르노 잡지도 없다. 물론 성인용품 가게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남자와 여자가 만나 합(合)하는 성행위의 짜릿함과 즐거움이 없었을까? 그때라고 다르지 않았을 터다. 3000년 전에도 '썸타기'의 설렘은 있었고, 청춘 남녀는 하룻밤의 낭만을 즐겼을 거다. 남의 여인을 뺏고, 남의 남자를 가로채는 일도 없지 않았다.

一陰一陽之謂道
음양의 조화를 일컬어 도(道)라 한다.

음과 양이 만나 만물을 키워 낸다고 생각하던 시기였다. 음양의 조화에서 사람의 길(道)을 찾았고, 군자의 바른 삶을 유추해 내던 때였다. 남녀 사랑은 그 음양 조화의 결정체다. 주역이 이를 간과할 리 없다. 분명 언급했을 것이다.

찾아보자. 주역의 시대, 그들은 섹스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들여다보자.

남자가 위에서 강하게 움직이고 있고, 여자는 아래에서 기쁨으로 출렁이고 있다. 그게 귀매(歸妹)괘의 전체 형상이다. 바이두

남자가 위에서 강하게 움직이고 있고, 여자는 아래에서 기쁨으로 출렁이고 있다. 그게 귀매(歸妹)괘의 전체 형상이다. 바이두

하늘에서 구름이 일고, 이내 번개가 번쩍인다. 강력한 움직임이 위에서 출렁인다. 그 아래에 호수가 있다. 우레의 움직임에 호수 물결이 인다. 호수는 점점 기쁨으로 충만해지고 있다. 우레와 호수는 혼연일체(渾然一體), 하나가 된다.

이것이 상징하는 게 무엇일까.

섹스다. 주역 54번째 '뢰택귀매(雷澤歸妹)' 괘의 형상이 그렇다.

우레로 표현되는 진(震, ☳)이 위에, 연못으로 상징되는 태(兌,☱)가 아래에 놓여있다. 위 진(☳)이 움직임, 나이 지긋한 남성(長男)을 상징한다면 아래 태(☱)는 기쁨, 젊은 여인(少女)으로 표현된다.

남자가 위에서 강하게 움직이고 있고, 여자는 아래에서 기쁨으로 출렁이고 있다. 그게 귀매(歸妹)괘의 전체 형상이다. '섹스의 괘'로 표현한 이유다.

당시 '성행위'를 지칭하는 말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주역은 이 괘 형상을 '귀매(歸妹)'로 이름 지었다. '여인이 시집간다'라는 뜻이다. 여인이 시집을 간다는 것은 곧 신랑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일 아니던가. 그러기에 '귀매'는 성행위를 뜻하는 다른 말이다. 누구도 제기하지 않은 필자만의 생각이지만 말이다.

주역은 성행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괘사를 설명한 단전(彖傳)에 그대로 표현된다.

歸妹, 天地之大義也
여자가 시집가는 일이란 천지의 가장 바른 일이다.

왜 아니겠는가. 남자와 여자가 짝을 이뤄 합하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과업이다. 자연의 조화가 음양의 교합에서 시작되듯, 인간 사회의 구성이 남녀 사랑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가족이 탄생하고, 사회가 구성된다. 고결하고, 거룩한 일이다.

단전은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를 읊는다.

天地不交而萬物不興, 歸妹, 人之終始也
하늘과 땅이 교류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흥하지 않으니, 시집가는 일은 인간사의 끝이요 시작이다.

태양의 기운과 땅의 풍요로움이 없으면 만물은 태어날 수 없다. 남성과 여성의 교합이 있으니 또 다른 시작이 있고, 삶은 이어진다. 그러니 신성하다.

하늘과 땅이 교류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흥하지 않으니, 시집가는 일은 인간사의 끝이요 시작이다. 바이두

하늘과 땅이 교류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흥하지 않으니, 시집가는 일은 인간사의 끝이요 시작이다. 바이두

그러나 '귀매' 괘는 섹스가 흉하다고 했다. 반전이다. 괘의 전체 뜻을 말하고 있는 괘사(卦辭)는 간결하다.

歸妹, 征凶, 無攸利
여자가 시집가는 것은 흉하다. 이로울 게 없다.

성행위야말로 사회 구성의 시작이요 끝인데도 흉하다고 했다. 왜? 질문이 아니 나올 수 없다.

주역에는 남녀 관계를 다룬 괘가 몇 있다. 대표적인 게 31번째 '택산함(澤山咸)', 32번째 뇌풍항(雷風恒), 그리고 53번째 '풍산점(風山漸)', 지금 읽고 있는 '귀매'괘 등이다.

'함(咸)'괘는 남자와 여자의 감응을 다뤘다. 남자가 자신을 낮춰 여자에게 다가가니 두 기운이 자극하고 반응한다. 바로 그다음 괘인 '항(恒)'괘는 성인 부부를 다뤘다. 평생 해로(偕老)하는 관계다. '점(漸)'괘는 복잡한 혼례 절차를 강조했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여인의 이미지는 수동적이고 순종적이다. '함(咸)'괘의 여인은 멈춤(止)을 아는 여자였다. 항(恒)괘는 항상 아래로 임하는 겸손의 자세를, '점(漸)'괘는 절차에 순종하는 여성이었다.

'귀매'괘의 여인은 다르다. 여자가 동(動)하여 먼저 움직인다고 본다(說而動). 적당한 선에서 멈추는 것도 아니고, 겸손하지도 순종하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음란한 여자'다. 그러니 흉하다고 본 것이다.

徇情肆欲, 唯說是動, 則夫婦淫亂
욕정에 사로잡혀 오로지 기쁨만으로 움직이면 부부는 음란해진다.

송(宋)대 주역 철학자 정이천(程伊川)은 괘를 해석하며 이렇게 말한다. 성행위의 쾌락만 좇는다면 부부 사이의 질서가 혼란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주역은 남녀 섹스가 쾌락으로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는 게 정이천의 해석이다.

성행위는 소중히 여겨야 할 대의(大義)다. 그러나 쾌락 빠진 섹스라면 그 끝은 처참할 수 있다. 그게 주역의 시대 성 인식이었다. 바이두

성행위는 소중히 여겨야 할 대의(大義)다. 그러나 쾌락 빠진 섹스라면 그 끝은 처참할 수 있다. 그게 주역의 시대 성 인식이었다. 바이두

'귀매' 괘 6개 효사에 그대로 나타난다. 비정상적인 결합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언니가 결혼할 때 동생이 첩으로 가는가 하면(첫째 효), 애꾸눈으로 세상을 보기도 한다(둘째). 첩으로 들어가고(셋째), 혼기를 놓치고(넷째), 본처가 첩보다 이쁘지 못하다(다섯째). 마지막 여섯 번째는 여자가 시집갈 때 광주리를 가져갔으나 담긴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 이로울 리 없다.

괘 전체 모습과 의미를 요약한 대상(大象)은 이를 분명히 했다.

澤上有雷歸妹, 君子以永終知敝
연못 위에 우레가 있으니 귀매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끝을 오래 지속시키되, 모두 훼손될 수 있다는 폐단을 알아야 한다.

성행위는 인간 사회를 종속시키는 거룩한 일이다. 마땅히 소중히 여겨야 할 대의(大義)다. 그러나 쾌락 빠진 섹스라면 그 끝은 처참할 수 있다. 몸도 상하고, 마음도 다친다(傷身敗德). 건전한 성관계라야 남녀 관계도 오래간다. 그게 주역의 시대 성 인식이었다.

쾌락만 추구하는 싸구려 섹스가 거리에 넘쳐나는 지금, 주역 '귀매' 괘는 오늘 우리에게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저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양평에서 여주로 넘어가는 도로변 성인용품 가게를 지나며 필자는 중얼댄다. 옆 좌석에 앉은 여인이 댓말을 단다.

'그럴 용기도 없으면서… 성에 대한 너의 생각은 3000년 전 사람들과 별로 달라진 게 없어. 그냥 운전이나 해…'

필자는 언제쯤 저 문을 밀치고 들어갈 수 있을까….

한우덕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