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법알 사건번호 103] 사내 하청 근로자는 모두 불법파견인가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사내 협력업체에 입사한 최병승씨는 현대차 사내 하청 근로자로 일하던 2005년 정규직 전환 투쟁을 벌이다 해고된 뒤 “원청의 지시를 받는 협력업체는 해고할 권한이 없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대법원은 2010년 현대차의 실질적인 업무 지휘를 인정해 최씨를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며 원심을 뒤집었고 이는 2012년 확정됐습니다.
이 대법원 판결 이후 현대차는 물론 기아차 등 관련 업계의 사내 하청 근로자들이 원청인 대기업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줄줄이 집단소송을 제기합니다. 현대·기아차 사내 하청 근로자 430명(현대차 159명, 기아차 271명)이 여섯 건으로 나뉘어 사측을 상대로 근로자 지위확인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도 그 무렵인 2010~2011년입니다.
이들은 ▶원청 사업장에서 정규직 근로자들과 같은 일을 하는 데도 하청업체 비정규직 직원으로 낮은 처우를 받고 있고 ▶파견 근로기간이 2년을 초과했는데도 원청이 파견근로자보호법(파견법)상 고용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불법 파견이며 ▶원청이 직고용시 받을 수 있었던 임금과 실제 수령한 임금의 차액 또는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이 사측과 법정 다툼을 이어가는 사이 법원은 사내 하청 근로자의 원청 직고용 범위를 넓히는 경향의 판결을 잇달아 내놓습니다. 대법원은 2015년 2월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 하청 근로자 7명에 대해 근로자 파견 관계에 있다고 인정하면서 근무 기간 2년을 초과한 4명에 대해 정규직 지위를 인정했습니다.
대법원은 당시 ▶원청의 상당한 지휘·감독 명령이 있는지 ▶원청 직원과 직접 공동작업을 하는지 ▶하청 근루자의 근무 관리 주체가 누구인지 등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기도 했죠. 이에 따라 2020년 3월 현대차 남양연구소 사내 하청 근로자 4명, 지난해 7월 현대위아 사내 하청 근로자 64명에 대해서도 현대차의 근로자라고 인정하는 판결이 확정됐습니다.
여기서 질문
지금까지 대법원에서 근로자 지위를 확인하는 데 중요한 기준 중 하나로 제시됐던 건 자동차공장에서 컨베이어벨트를 활용해 원청 직원들과 똑같은 생산 업무를 하는지였습니다. 그렇다면 단순 부품조달 업무나 수출선적(방청) 업무 등 ‘간접공정’에 투입됐거나, 2차 협력업체 소속으로 생산관리 업무를 맡았던 사내 하청 근로자는 근로기간 2년이 지나도 직접 고용될 수 없는 걸까요?
법원 판단은
1심과 2심은 ‘직접공정’, ‘간접공정’ 구분 없이 이들의 근로자파견관계 성립을 인정해 2년이 넘도록 파견돼 일하고 있는 사내 하청 근로자들에 대해 현대·기아차의 근로자라고 보고 원청인 이들 기업이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들이 직접 고용됐을 경우 받을 수 있었던 약 107억원(현대차 약 57억원, 기아차 약 50억원)을 사측이 지급하라고 판결했죠.
다만, 소송 진행 중 정년이 지난 일부 근로자의 경우 소의 이익이 없다고 보고 청구를 각하 또는 기각했습니다. 사내 협력업체 폐업 후 업무승계 과정에서 근로관계가 종료된 일부 근로자에 대해서도 임금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원고인 사내 하청 근로자들과 피고인 현대·기아차는 이에 불복해 각각 상고했고, 지난 27일 이에 대한 대법원 최종 판단이 나왔습니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와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상고심 진행 중 정년이 지난 일부 근로자의 근로자 지위확인 청구만 각하한 채 나머지 원·피고의 상고를 기각해 원심 대부분을 확정했습니다. 이로써 원청인 현대·기아차에 파견돼 직접 생산 업무 외 간접공정에 참여한 사내 하청 근로자들도 정규직 채용의 길이 열렸습니다. 대법원은 “사내 하청 근로자들에 대한 근로자파견관계 성립 여부 판단이 광범위한 전반적 공정에 관해 이뤄진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차 사건을 심리한 대법원 3부는 일부 쟁점에 대해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는데요. 1차 협력업체인 부품생산회사와 도급계약을 체결한 2차 협력업체 소속으로 생산관리 업무를 담당한 원고 중 일부에 대해선 “대법원 판례가 제시한 근로자 파견의 판단요소에 관한 사정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심리했어야 한다”며 파기환송했습니다. 사내 하도급 자체로 불법 파견 여부를 볼 게 아니라, 업무별 성격 및 원청의 업무 지휘 여부 등을 구체적으로 따져서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대법원 3부는 “파견근로자의 근로 제공 중단이 사용사업주의 책임 있는 사정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경우 일을 계속했다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을 청구할 수 있다”며 일부 근로자들의 임금 청구를 기각한 원심판결도 깼습니다. 대법원은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 사이에 직접고용관계의 성립이 간주된 후 파견근로자가 파견사업주에 대한 관계에서 사직하거나 해고를 당했더라도 이러한 사정은 원칙적으로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 사이의 직접고용 간주와 관련된 법률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시했습니다.
전문가의 분석은
익명을 요청한 국내 대형 법무법인의 노동법 전문 변호사는 간접공정 파견근로자에 대한 정규직 근로자 지위가 인정된 것에 대해 “간접공정의 경우 독립적 단위에 하청을 주고 하청업체가 알아서 했다는 사측 주장과, 실제로는 간접공정도 생산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직접공정과 다르지 않다는 노측 주장 중 노측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며 “앞으로 다른 회사들은 간접공정에 대해 불법 파견이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현대차의 경우와 어떤 점이 다른지를 입증해야 해서 적법한 도급이라고 주장하기 더 어려워졌다”고 분석했습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7월 포스코 사내 하청 근로자 55명에 대한 직고용 판결을 확정하며 “‘생산관리시스템(MES)’을 통한 작업 상황 및 정보 전달은 구속력 있는 업무상 지시”라며 원청의 업무상 지시 기준을 더 넓혔는데요. 이와 관련, 이 변호사는 “MES 판결에 이번 판결이 더해지면서 불법파견의 법리를 엄격하게 적용해 불법파견을 인정, 근로자 지위를 확인하는 게 굉장히 명확해졌다”며 “이번 판결이 재계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판결에 대해 경영계와 노동계는 상반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추광호 경제본부장 명의 입장을 내고 “대법원이 불법파견을 인정한 것에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며 “이번 판결은 제조업에서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는 도급계약을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산업현장의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기아차 비정규직 출신인 양경수 민노총 위원장은 페이스북에 “오늘의 판결이 제조업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독버섯처럼 퍼져 있는 불법파견 간접고용 뿌리 뽑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적었고,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다른 사업장의 소송도 조속히 판결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현대차는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 판결 내용에 따라 각 해당 사업장에 맞게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법알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