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법알 사건번호 102] 집행유예 기간 중 대표 취임한 재벌가 회장
재벌가 얘기입니다. 박찬구(74)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회사 비상장 계열사인 금호P&B화학의 법인 자금을 아들에게 담보 없이 낮은 이율로 빌려주도록 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 등(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으로 기소돼 지난 2018년 12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확정됐습니다.
그는 이듬해인 2019년 3월 금호석유화학의 대표로 취임했는데요. 문제는 그가 ‘집행유예’기간 중이었다는 것입니다. 박 회장은 법무부에 취업 승인을 신청했지만, 법무부는 거절했습니다. 이 경우 법무부 장관 자문기구인 ‘특정경제사범 관리위원회’를 거쳐, 장관이 최종 결정하게 되거든요.
이는 특경가법 때문입니다. 특경가법 14조 1항은 5억원 이상 횡령·배임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취업을 제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 기간은 ▶징역형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않기로 확정된 날부터 5년 ▶징역형의 집행유예 기간이 종료된 날부터 2년 ▶징역형의 선고유예기간으로 정하고 있죠.
박 회장뿐만이 아니라 여러 재벌가 회장과 3‧4세들이 이 규정 때문에 발목이 잡히기도 하고, 규정을 요리조리 피해 승진을 거듭해 논란이 일기도 했죠.
법무부는 특경가법 14조를 ‘집행유예 기간도 취업제한 기간에 포함된다’고 해석해서 2020년 5월 취업 불승인 처분을 내렸습니다. 반면 박 회장은 집행유예 기간이 종료됐을 때부터 2년간 취업 제한이 정해져 있을 뿐이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집행유예 기간에는 취업을 제한하면 안 된다는 취지로 취업 불승인 처분을 뒤집고자 2020년 6월 행정소송을 제기했죠.
여기서 질문
집행유예 기간은 취업 제한 기간에 포함되는 걸까요? 아니면 집행유예 기간이 종료됐을 때부터 취업이 제한되는 걸까요?
법원 판단은
법원 판단은 심급별로 엇갈렸습니다. 1심인 서울행정법원은 취업제한 시기를 ‘유죄판결이 확정된 때부터’라고 봐야 제도의 취지를 살리고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법무부 손을 들어줬습니다.
그러나 2심에서는 “취업제한 기간에 집행유예 기간이 포함된다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취업 불승인 처분’은 권익을 침해하는(침익적) 행정처분이니만큼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대법원 재판부는 다시 항소심 판결을 파기했습니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박 회장이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취업승인 거부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7일 밝혔습니다.
대법원은 “집행유예 기간은 취업제한 기간에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하며 원심판결을 파기했습니다. ‘특경가법이 취업제한 기간의 시작과 끝나는 시점을 모두 정한 것으로 보면, 유죄판결이 확정된 때부터 실형 집행 기간 또는 집행유예 기간이 종료될 때까지 아무런 제한 없이 취업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는 취업제한 제도의 입법 취지를 훼손하고 객관적 타당성이 확보된 해석이 아니다”라고 판시했습니다.
그법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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