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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리스크 덮친 시장…美증시서 中기업 시총 106조 증발

중앙일보

입력

지난 17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일하고 있는 트레이더들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7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일하고 있는 트레이더들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시진핑(習近平) 리스크’가 세계 증시를 덮쳤다.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 시가총액이 하루 만에 100조원 넘게 증발했고, 중국과 관련이 깊은 미국 기업의 주가도 급락했다. 지도부를 자신의 측근들로 전진 배치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집권 3기에 대해 시장이 강한 우려를 나타낸 결과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뉴욕에 상장된 65개 중국 기업으로 구성된 ‘나스닥 골든드래곤 차이나 지수’는 전날보다 14.4% 급락하며 지난 2013년 4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하루 만에 시가총액은 734억 달러(약 105조7100억원)가 증발했다. 나스닥 골든드래곤 차이나 지수 주가는 올해 초와 비교해 반토막(약 50% 하락)이 났다.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중국 테크 기업이다. 투자자들이 대거 이들 기업 주식 투매에 나섰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는 장중 19%이상 폭락하다 12.5%로 하락 마감했다. 또 다른 전자상거래 업체인 핀둬둬(拼多多)는 24.6% 급락했다. 바이두(-12.58%)와 징둥(京東)닷컴(-13.02%)도 두 자릿수 하락폭을 보였다.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 빌리빌리도 -16.8%로 급락했다.

중국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산업인 전기차 기업 주가도 하락했다. 리 오토(-17.4%), 니오(-15.7%), 샤오펑(-11.9%)의 주가가 줄줄이 폭락했다.

중국과 관련성이 높은 미국 기업의 주가도 일제히 빠졌다. 미국 카지노 업체인 라스베이거스 샌즈(-10.29%), 윈 리조트(-3.86%), 멜코 리조트&엔터테인먼트(-11.65%)가 일제히 폭락했다. 시 주석의 3연임으로 인해 카지노 업계 규제가 더 심화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몇 년 전부터 중국 본토로부터 흘러들어오는 불법 자금을 통제하기 위해 마카오 카지노 시장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 왔고, 지난해 9월엔 카지노 업체 감독 강화를 담은 카지노 산업법을 공개했다.

지난 24일 홍콩에서 항셍지수 등락이 표시된 스크린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24일 홍콩에서 항셍지수 등락이 표시된 스크린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마카오는 미 라스베이거스의 약 4~6배 규모인 세계 최대 카지노 시장이다. 2019년 기준 라스베이거스샌즈 실적에서 마카오 사업 비중은 약 64%, 윈리조트는 75%를 차지했다. 미국 카지노 기업이 시진핑 리스크에 흔들리는 이유다.

중국 금융시장도 시진핑 리스크에 반응하고 있다. 전날(중국시간 24일) 6.36% 폭락하며 2009년 초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홍콩 항셍지수는 25일에도 하락세로 출발했다. 중국 투자자들이 중심인 상하이 증시와 선전 증시 역시 전날 각각 -2.0%, -1.76% 하락한 데 이어 25일에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환율도 급락 중이다. 24일 위안화 가치는 홍콩 역외시장에서 달러당 7.2552위안으로 2008년 1월 이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중국 신임 최고지도부 7인이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3층 금색대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 입장하고 있다. 서열 순에 따라 시진핑 국가주석을 필두로 리창(총리 예상), 자오러지(전인대 상무위원장 예상), 왕후닝(정협 주석 예상), 차이치(중앙서기처 서기), 딩쉐샹(상무부총리 예상), 리시(중앙기율위 서기) 등이 박수를 치며 들어오고 있다. AFP=연합뉴스

중국 신임 최고지도부 7인이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3층 금색대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 입장하고 있다. 서열 순에 따라 시진핑 국가주석을 필두로 리창(총리 예상), 자오러지(전인대 상무위원장 예상), 왕후닝(정협 주석 예상), 차이치(중앙서기처 서기), 딩쉐샹(상무부총리 예상), 리시(중앙기율위 서기) 등이 박수를 치며 들어오고 있다. AFP=연합뉴스

뉴욕 증시에서 중국 또는 중국 관련 기업과 홍콩 시장의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한 건 시 주석 측근들로 채워진 시진핑 3기 지도부에 대한 우려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23일 중국 공산당은 시 주석의 3연임을 확정하고, 그와 함께 향후 5년 동안 중국을 이끌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6인을 공개했는데, 시 주석의 측근들로 전원 채워졌다. 이로 인해 중국 밖에서는 공고화된 시 주석 1인 체제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결국 이러한 금융시장 혼란은 ‘시진핑 리스크’로 인한 ‘차이나 런(회피)’이란 게 외신들의 분석이다. 시 주석은 지난 2020년부터 공동부유(共同富裕)를 앞세우며 정보통신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왔고, 경제 둔화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코로나19 봉쇄 정책을 유지해 왔다. 집권 3기에 반(反) 시장적 경제정책이 확대될 것이란 우려가 시장에 반영된 셈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시 주석에 집중된 중국 정부의 의사 결정 과정이 중국의 경제성장을 약화시키고 주변 지정학 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시장에 반영됐다”고 평가했다. 윌리엄블레어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비비안 린 매니저도 “이날 매도세는 친기업적이지 않은 시 주석과 그의 충성파로 구성된 중국 지도부 하에서 중국의 향후 경제 정책에 대한 투자자들의 회의감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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