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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매운동에 전방위 수사"...'사망 사건' 후 SPC 놓친 기회 셋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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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SPC 본사에서 평택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SPC 본사에서 평택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불매 운동부터 전방위 수사까지.

SPC 계열 SPL 제빵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끼임 사고로 사망한 사건으로 매출 7조원의 SPC그룹이 흔들리고 있다. 사망사고로 촉발된 SPC 불매 운동은 확산일로다. 온라인상에선 ‘#SPC 불매’ 해시태그 운동뿐 아니라 SPC가 편의점에 납품하는 캐릭터 빵과 샌드위치 목록까지 올리는 ‘SPC 찾기 운동’이 벌어졌다.

한때 없어서 못 판다던 포켓몬빵 인기도 주춤하고,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자영업자인 점주들은 불매운동 직격탄을 맞았다. SPC 삼립의 주가는 5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

SNS 상에서 공유되고 있는 SPC 불매 운동 독려 게시물. 트위터 캡처

SNS 상에서 공유되고 있는 SPC 불매 운동 독려 게시물. 트위터 캡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윤석열 대통령이 해당 사고를 두 차례 언급하며 고용노동부와 경찰의 수사 강도도 높아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정확한 사고 경위와 함께 구조적 문제는 없었는지 파악하라” 한 데 이어 20일에도 “경위 파악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후 고용노동부와 경찰은 SPL 본사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경찰 관계자는 “안전 교육 실태부터 각종 매뉴얼까지 살펴보겠다”고 했다.

이처럼 사태가 커진 이유는 여럿이지만, 그중에서도 회사의 무신경함, 조직문화를 거론하는 이들이 있다. 실제 지난 15일 사고 이후 사태 확산을 막을 기회는 몇 차례 있었다.

① 사고 발생 초기 “경위 안 나왔다” 무대책

해당 사고는 토요일이던 지난 15일 오전 6시 15분 즈음 발생했다. 다음날인 16일 오전 사과나 유감 표명 계획이 없는지 묻자 SPC측은 “부검과 경찰 조사를 지켜보고 (대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동료 직원이 자리를 비운 사이 사고가 난 데다 CCTV 사각지대라 사고 경위를 명확히 알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다.

그러나 이미 온라인상에선 사고 소식과 불매 운동이 빠르게 퍼져나가던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이날 SPC그룹이 낸 공식자료는 파리바게뜨가 영국 런던에 진출했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그나마 분위기는 윤 대통령이 해당 사고를 거론하면서 바뀌었다. 대통령 발언이 알려진 뒤인 그날 저녁에야 허영인 SPC 회장은 빈소를 찾았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SPC 본사에서 평택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SPC 본사에서 평택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② “사고 현장서 일 시키나” 내부 반발에도 귀 막아 

사고 다음 날인 16일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SPL지회 SNS에는 사고 장소를 흰 천으로 가려 놓은 사진과 함께 글이 올라왔다. “사망 사고가 있었던 작업장은 오늘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또다시 샌드위치 만드느라 바빴다고 한다. 사고를 목격한 직원들도 쉬는 일 없이 출근시켰다고 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역시 온라인 상으로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사측은 이런 상황에도 작업을 중지시키지 않았다. SPC 관계자는 “해당 공장 면적이 넓고 사고 장소는 분리된 문이 있는 방 안이라 거기만 경찰과 상의해 천으로 가리고 다른 라인은 가동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사측은 17일에야 해당 층 전체 작업을 중단했다.

그러나 SPC가 평소 직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면 더 빠른 조치가 이뤄졌을 거라는 지적이다. 앞서 사측은 노조가 제빵사들에게 연차와 휴식시간을 보장하고 2018년 불법파견의 해결책으로 약속한 사회적 합의안을 이행해야 한다고 투쟁해왔다는 이유로 노조와 거리를 둬왔다.

사고가 발생한 SPL공장 모습. 사진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SPL지회 SNS 캡처

사고가 발생한 SPL공장 모습. 사진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SPL지회 SNS 캡처

③ 빈소를 찾은 수많은 직원은 뭐했나

17일 SPC그룹은 허영인 회장 명의로 낸 사과문에서 “유가족분들의 눈물을 닦아 드리고 슬픔을 딛고 일어서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SPC 관계자는 “직원 여러 명이 빈소에 가서 대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작 유족에게 당시 상황 등을 설명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더 나아가 빵을 만들다 사망한 고인 빈소에 빵 박스를 답례품으로 갖다 둔 무신경은 악화한 여론에 더 불을 지폈다. 또 열악한 ‘12시간 맞교대’ 근무, 허술한 2인 1조 매뉴얼 등 평소 적체돼 있던 조직 문제가 이번에 여실히 드러났다.

결국 허영인 회장은 사망사고 6일 만인 21일 카메라 앞에서 총 일곱 번 고개를 숙이며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사고 다음 날 사고 장소 인근에서 작업이 진행된 점에 대해선 “평소 직원들에게 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제대로 전하지 못한 제 불찰”이라 했고, “3년간 1000억원을 투자해 안전경영 시스템을 강화하겠다” “정확한 사고 원인 파악과 후속 조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도 했다.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SPC 본사에서 SPL 평택공장 산재사망사고 희생자 추모행사가 열렸다. 오유진 기자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SPC 본사에서 SPL 평택공장 산재사망사고 희생자 추모행사가 열렸다. 오유진 기자

“직원 존중 안 드러나…불매운동 안 끝날 듯”

그러나 이같은 대국민 사과로 불매운동 등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다른 불매운동 사례를 봐도 그렇다. 대리점에 제품을 강매한 뒤 불매운동이 일어 매출이 급감했던 남양유업은 이후 발효유 제품 불가리스에 코로나19 예방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 사실까지 알려지며 지난해 역시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당시 회장이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경영권을 자식에게 승계하지 않겠다고까지 했지만 여론은 호전되지 않았고 남양유업은 여전히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날 SPC의 대국민 사과에 대해 “사측이 안전 진단 등을 거론했지만 직원이 사망한 건데 직원들의 고충을 들어 인력 보충이나 공정 위험성 등을 개선하겠다는 내용이 없어 직원을 존중하는 마음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평했다.

이어 “식품회사 직원에 대한 처우는 빵에 대한 이미지와도 연결된다. 이 경우 빵에 건강한 느낌이 들겠나”라며 “이런 보여주기 대책으로는 불매운동이 사라질 것 같지 않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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